희망버스 1년 김진숙의 소회 “한진중 약속 어기면 다시 싸워야죠”

2012.06.07 21:33 입력 2012.06.07 23:09 수정
부산 | 글·사진 이영경 기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52·사진)이 땅을 밟은 지 7개월이 돼 간다.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을 보냈으니 아직은 허공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 김 지도위원은 “내려온 직후 땅멀미가 심해 쓰러지고 계속 토했는데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며 웃었다.

오는 11일 1차 희망버스가 영도조선소를 찾은 지 1년이 된다. 지난 1일 김 지도위원을 민주노총 부산지역 본부에서 만났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직후 쉴 틈 없는 강연 일정을 소화하던 김 위원은 그날도 창원에서 강의를 한 후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고공 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 위원은 내려왔지만 후유증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해고자에 대한 재고용 시한인 11월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회사 사정을 핑계로 순환휴직을 실시하는 사측을 지켜보는 김 위원은 답답한 심정이다. 김 위원은 재고용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싸워야지. 답이 있나”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사태에 대해서는 “현장 노동자들의 상처가 깊다”며 “국회 의석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치를 가능하게 한 노동자 대중의 기반이 무너지게 둬선 안된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1년 김진숙의 소회 “한진중 약속 어기면 다시 싸워야죠”

▲ “통진당 계파정치 하는 분들 지지 노동자들 눈물을 보라”

- 크레인에서 내려온 후 어떻게 지냈나.

“하루도 제대로 못 쉬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 후 일이 3배가 늘었다. 트위터와 크레인 위에서만 봤던 희망버스 승객들을 직접 만나고 전국 투쟁사업장으로 강연을 다녔다. 서울·대전·대구·광주 등을 옮겨다니다 보니 일주일씩 집에 못 들어갈 때도 많다. 최근에는 ‘한민족유럽연대’와 독일 금속노조 초청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함께 독일에 다녀왔다. 간호사나 광부로 유럽에 이민 간 분들이 모인 ‘한민족유럽연대’의 몇 분은 크레인 밑에 직접 오시기도 했다. 직접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 희망버스가 처음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어떤가.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그런 식의 연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309일 동안 힘들었지만 얻은 게 훨씬 많다. 그동안 인간에 대한 예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동운동을 한다고 했지만 늘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살았다. 그런데 희망버스를 탄 분들의 간절함과 애틋함을 보면서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배우 김여진씨가 그렇게 울고 애틋해 하는 걸 이해를 잘 못했다. 그런데 조남호 회장 앞에 무릎이라도 꿇겠다고 하는 모습에서 ‘저 마음이 어떤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 운동의 관점도 바뀌었나.

“노동운동이 그동안 대중화되고 규모화됐을지는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진정성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그것을 비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막연하게 진정성·역동성을 이야기해왔는데 희망버스를 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한 상은 섰다.”

- 내려오자마자 회사가 85호 크레인을 철거했다.

“회사로서는 치가 떨렸던 것 같다. 외국을 보면 전쟁을 했던 장소나 건물 같은 경우 다시 상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결의로 상징적으로 남겨놓는다. 85호 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죽었고 309일 장기간 투쟁이 이어진 장소다. 회사가 상징적 장소로 남겨놨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어떻게 지내나.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부산역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만나곤 했다. 다들 지방으로 돈 벌러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지낸다. 그런데도 회사가 해결하려는 모습을 안 보이고 있다. 수주를 안 받고 자재를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빼가고 있다. 또 휴업을 미끼로 복수노조에 가입하면 휴업을 안 시키겠다며 노동조합을 깨기 위한 공작을 벌이고 있다.”

-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정치의 위기론’이 대두됐다. 트위터에 ‘종파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운동의 정파는 그동안 있어왔지만 계파정치를 하려니까 문제가 된다. 그분들한테 간곡하게 현장을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부탁하고 열심히 뛰어왔던 노동자들이 주민들 보기가 부끄러워 이사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운다. 현장 조합원들의 상처가 깊다. 심지어 회사 관리자들도 ‘너희들도 똑같네’라고 비아냥거린다. 노동자들을 지탱했던 힘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 민주노총의 ‘조건부 지지철회’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고육책이고 차선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도 저에게 민주노총마저 지지를 철회하면 되돌릴 수 없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새롭게 당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있어 전면적 지지 철회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진상조사위에서 부실을 인정했다. 문제를 대립이 아닌, 해결하는 쪽으로 풀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이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여기서 발목이 잡혀 있어 답답하다. 쌍용차를 비롯한 노동계의 절박한 현안, 복수노조·정리해고법 등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 쌍용자동차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 이후 사회연대의 모습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에 대한 탄압이 심했다. 벌금 폭탄과 재판…. 그런 부담이 개인에게 떨어지니 힘들어진다. 나는 쌍용차 동지들을 보면 곤란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희망버스를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희망버스의 흐름이 집중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나 정치권이 손 놓고 있는 상황도 안타깝다. 언제까지 자본이 저지른 횡포를 시민들이 다 떠안아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 앞으로 계획은.

“여름휴가는 캄보디아로 다녀오려고 한다. 후원하고 있는 아이(콩다니)를 3년 만에 만나러 간다. 한 사람에 대해 구체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돌본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각별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11월에는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의 복직을 지켜봐야 한다. 그게 올해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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