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오르면 뭐하나… 업주가 시급 깎아 받는 돈은 그대로”

2015.03.11 22:12 입력 2015.03.11 23:19 수정

(1) 최저임금은 나에게 □□□□이다

▲ 서빙 알바 20대 대학생
“매달 50만원 덜 줘도 용기 없어 그러려니 해”

▲ 마트 40대 여성노동자
“경력 7년 120만원 벌이 애들 학원비 꿈도 못 꿔”

▲ 위반 사업장 최대 1만곳, 실제 처벌은 6~16건뿐

■ 아직도 못 받는 돈

이수현씨(24·가명)는 서울 대학로 한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2시간, 주 6일 일해 한 달 170만원을 받았다. 주는 대로 받았지만, 최저임금도 안되는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씨는 11일 “청년유니온에 물었더니 시간당 4700원 정도 받고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며 “제대로라면 지금보다 50만원은 더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이씨는 학자금 1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이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 월급 170만원 중 130만원을 저축한다. 기초 생활비와 가끔 짬을 내 만나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을 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통장 잔액을 확인할 때마다 갓 태어난 조카들 얼굴이 눈에 어른거린다고 했다. 이씨는 “최저임금만큼이라도 한 달에 50만원 더 받아서 조카들 옷도 사주고 싶고 부모님 외식도 시켜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사장에게 법으로 정해진 만큼 제대로 시급을 계산해 달라고 따지고는 싶지만 좀처럼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이씨는 “요식업계에서는 알바생들에게 최저임금도 안 쳐주는 데가 워낙 많아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도 그러려니 하며 참고 있다”고 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8월 기준 최저임금 5210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227만명(12.1%)이다. 이씨처럼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8명 중 1명꼴인 셈이다. 공공행정 부문에서 최저임금 미달자가 13만명이나 되는 것은 정부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저임금은 생명줄이다]“최저임금 오르면 뭐하나… 업주가 시급 깎아 받는 돈은 그대로”

■ 7년째 내 월급이자 밥줄

대형마트 수산 코너에서 일하는 이모씨(43)는 6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뒤 가장이 됐다. 이씨가 매일 들고 날라야 하는 냉동 오징어는 남자가 들기에도 무겁다. 이렇게 고된 노동을 하지만 국민연금·건보료 등을 공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월급은 120만원 남짓이다.

이씨는 중·고생인 남매를 학원에 보낼 수 없을 때가 제일 속상하다고 했다. 2008년부터 일을 시작해 경력이 7년이나 됐지만 월급은 최저임금 인상액만큼만 올랐다. 이씨는 “이름 있다고 말하는 학원에 애 둘을 보내면 학원비가 내 월급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저에게 최저임금은 생계수단이자 밥줄”이라며 “애들 학원 정도는 보낼 수 있게 최저임금이 오르면 좋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꺼내는 얘기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찔끔 올라도 편법으로 노동자가 받는 실질임금은 사실상 동결시키는 기업도 있다. 상여금이나 수당을 기본급에 넣어 최저임금에 맞춰버리거나,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실제로 일한 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는 일한 노동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달 일정액의 시간외근로수당을 주거나 기본임금에 수당들을 포함시켜 지급하는 임금산정 방식이다.

2011년부터 라벨(견출지) 생산업체인 레이테크코리아에서 일해온 이필자씨(53)의 현재 월급은 126만원가량이다. 이씨는 팀장 직책수당 10만원, 근속수당 3만원, 식대 10만원을 받는다. 정상적이라면 한 달 최저임금 116만원에 직책·근속수당·식대 23만원이 붙어 139만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가 ‘기본급+근속수당+직책수당 = 최저임금’ 식으로 임금체계를 기형적으로 바꾸는 바람에 월급은 최저임금에 식대만 붙인 126만원이 됐다. 이씨는 “근속수당을 기본급으로 돌린 탓에 오래 일할수록 기본급이 되레 떨어진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간호사·간호조무사·조리원 등은 2012년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은 포괄임금약정에 따라 임금을 줬다고 맞섰다. 울산지법 제2민사부는 지난해 12월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해 포괄임금약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포괄임금약정이라는 방어막이 깨진 후 4~5년 가까이 근무한 노동자들은 1인당 덜 받은 최저임금 100만원 정도를 지급받게 됐다.

■ 통제 밖에 있는 임금

김모씨(22)는 지난해 12월 “최저시급 5210원 보장한다”는 인터넷 구직 공고를 보고 서울 성신여대 인근 커피숍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려니 사장은 “첫달엔 돈을 다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김씨는 시급 5000원이 안되는 돈을 받고 일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2주일 만에 그만뒀다. 사장은 화를 냈고 2주일치 급여로 26만원을 내놓았다. 주휴수당 등을 포함해 계산하면 시급 2600원에 불과한 액수였다. 김씨는 고용노동청에 진정해 차액을 돌려받았지만, 사건은 검찰 고발 없이 마무리됐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많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매듭짓기 일쑤다. 최저임금법 28조는 ‘최저임금 미지급 등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가 사용자의 최저임금 위반 사항을 노동청에 진정해도 차액만 지급받고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영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법처리를 받은 건수는 매년 6~16건에 불과했다. 많을 때는 위반 사업장이 1만곳을 웃돌지만 사법처리 비율은 0.1% 남짓인 셈이다. 김 의원은 “사문화된 처벌 조항을 엄격히 적용해 최저임금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