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청소노동자 “감정노동 맞죠?”

2019.07.25 06:00 입력 2019.07.25 06:01 수정

밤엔 찜통이라 괴롭고…승객 무시해 서럽고…노숙인 폭행에 아프고

<b>항의 감수하며 남자화장실 청소</b> 청소노동자가 지하철 역사의 남자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지하철 청소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이라 남자화장실을 청소할 때 항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항의 감수하며 남자화장실 청소 청소노동자가 지하철 역사의 남자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지하철 청소노동자는 대부분 여성이라 남자화장실을 청소할 때 항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지하철 5호선 화곡역에서 ‘야간반’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ㄱ씨(65)의 몸은 밤마다 땀으로 흠뻑 젖는다. 옷에 밴 땀을 손으로 짜낼 정도다. 역사 에어컨은 지하철 운행이 끝나면 멈춘다. 목에 두른 얼음팩은 금방 녹아버린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 더위는 극에 달한다. 물청소할 때 승객이 들어오면 위험해 유리문을 닫고 작업한다. 습기와 땀으로 옷이 몸에 달라붙는다. ㄱ씨는 “남들은 밤에 그나마 시원하다는데, 역사는 밤에 제일 덥다”고 말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더위와 추위에 시달린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2018년 발표한 ‘청소·경비 직종 근무형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울지하철 1~4호선 청소노동자 399명 중 215명(53.9%), 5~8호선 청소노동자 298명 중 116명(38.9%)이 ‘일하면서 높거나 낮은 온도에 노출된다’고 답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2일, 15일, 16일 사흘에 걸쳐 서울지하철 1~8호선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만났다. 더위뿐 아니라 지하철 이용 승객의 욕설, 폭행, 성추행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ㄴ씨(59)가 일하는 1호선 시청역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다. 서울광장에서 주말마다 시민사회단체 집회가 열린다. 아무 곳에나 소변을 보고 침을 뱉는 사람도 있다. ㄴ씨는 “요즘 보수단체가 많이 온다. 화장실 벽 사방에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같은 낙서가 적힌 걸 보면 ‘저걸 언제 다 지우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며 “괜히 시비가 붙을까 두려워 제지도 못한다”고 했다.

ㄷ씨(64)가 일하는 2호선 삼성역은 2018년 기준 매일 8만5276명의 승객이 오가는 곳이다. 끊임없이 쓰레기가 쌓인다. 서울교통공사는 청소노동자 인원을 유동 인구가 아니라 역사 면적에 따라 결정한다. 1322㎡(400평)당 여성 노동자 1명이다. 이용객 수에 따라 인원을 늘리기도 하지만 후순위 고려 사항이다.

삼성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는 오전 6시 이후 ‘오전반’과 ‘오후반’이 각각 2명이고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인 ‘야간반’이 3명이다. 2~3명이 삼성역의 대합실 1곳, 승강장 1곳, 남녀 화장실 2곳을 맡는 셈이다.

청소노동자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청소하고 있다. 이들은 대합실, 승강장 등 지하철 역사 전반을 청소한다.<br />우철훈 선임기자

청소노동자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청소하고 있다. 이들은 대합실, 승강장 등 지하철 역사 전반을 청소한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하철역 이용객에게 모욕당하기도 한다. 한 이용객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청소노동자 오세순씨(58)에게 “냄새가 난다.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했다. 당황한 오씨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도 이용객이 먼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면서 타지 못했다. 오씨는 “손님이 싫어하는 티를 내면 속상한 마음이 든다”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5호선 까치산역에서 일하는 ㄹ씨(63)는 남자화장실 청소를 하다 항의를 받았다. 소변을 보던 남성이 “남자화장실에 왜 여자가 들어오느냐”며 화를 냈다. 까치산역 청소노동자는 모두 여성이다. 지하철 운행 시간에도 수시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 ㄹ씨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남성을 피했다. ㄹ씨는 “괜히 말대답했다가 더 큰 시비가 붙으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면서 “그럴 때는 ‘참을 인’자를 열 번 마음에 쓴다는 생각으로 참는다”고 말했다. 1호선 서울역에서 일하는 ㅁ씨(64)는 지난 6월 한 노숙인에게 대뜸 뺨을 맞았다. 노숙인이 비상문을 열고 청소도구를 싣는 클린카트를 옮기는 ㅁ씨를 도와줬다. 감사 인사를 하자 노숙인이 ㅁ씨의 뺨을 때렸다. 경찰 조사까지 끝났지만 ㅁ씨는 아직도 노숙인이 자신을 때린 이유를 모른다.

‘청소·경비 직종 근무형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1~4호선 청소노동자 399명 중 143명(35.8%), 5~8호선 청소노동자 중 299명 중 109명(36.5%)이 ‘화가 난 고객이나 손님 응대’를 노동자 안전·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성범죄를 걱정한다. ㅂ씨는 지난해 12월 한 역사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바닥 청소를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한 남성이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지난 5월 법원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사업주에 대해 고객의 폭언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건강장해 관련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이 그중 하나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자회사가 노동자를 관리한다. 본사 개입은 제한적”이라며 “(열악한 노동 환경과 폭력 등) 문제가 제기된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콜센터 상담원, 아파트 경비원, 주차요원처럼 청소노동자도 손님과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있어 감정노동자로 볼 수 있다”면서 “임금이나 복지 개선에 그치지 말고 노동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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