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으로도 대체 못할 돌봄노동…‘우리 안의 홀대’가 문제

2020.02.12 06:00 입력 2020.02.12 10:51 수정

⑤ 사라지지 않을 노동

[녹아내리는 노동]로봇으로도 대체 못할 돌봄노동…‘우리 안의 홀대’가 문제 이미지 크게 보기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살림과 돌봄 영역의 일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인간 노동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예측이다. 인간에게 어려운 것이 기계에는 쉽고, 인간에게 쉬운 것이 오히려 기계에는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을 육체와 감정 노동이 두루 섞인 돌봄만큼 잘 보여주는 영역도 없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해 돌봄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8년 ‘포용적 노동시장과 성평등을 위한 돌봄 대응’ 보고서에서 “유압식 로봇팔, 로봇청소기 등의 기술이 인간의 돌봄을 긍정적 방식으로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돌봄은 완전 자동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돌봄노동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노동의 미래에서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대표적 유급 돌봄노동 직종인 간병과 재가요양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가 이 노동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들여다봤다. 사회는 여성들이 가족을 돌보고 갖은 비정형의 일을 하며 평생 쌓은 숙련을 가장 값싼 비용으로 쓰면서 유지된다. 종사자와 전문가들은 이 노동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 공급을 민간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공공이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시급 3750원, 간병노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우려되던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간병노동자들을 만났다. 18년째 이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는 문명순씨(63)는 미로 같은 지하 공간을 헤치고 기자를 안내하며 “우리는 병원의 유령 같은 존재”라고 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한쪽에 여행용 가방이 나란히 줄세워져 있었다. 주 6일 밤낮을 꼬박 병원에서 보내는 간병인들이 일주일치 짐을 싸들고 와 놓아둔 것이다. 간병인들은 병상 옆 접이식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끼니는 대개 일주일치로 얼려둔 주먹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밑반찬을 곁들여 해결한다.

마스크를 쓰고 모인 간병인들 사이에선 전염병이 화제였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고 했다. 병원 내 감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간병인들이 병을 옮긴다’는 소문이 돌아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환자를 밀착해 돌보는 간병인들은 상시로 전염 가능성에 노출된다. 실제로 옴, 간염, 결핵 등을 진단받고 일을 쉬며 치료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근로기준법 적용 못 받는 간병인
환자에 감염돼도 산재 해당 안돼
환자 따라 이 병원 저 병원 전전
폭언·성추행·임금체불에 무방비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쳐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면 산재보험으로 간병 급여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간병인은 일을 하다 다쳐도 산재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가사사용인’으로 구분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등에 고용된 일부를 제외하면, 간병인 대부분이 환자 또는 보호자와 구두로 기한을 정해 일하고, 이들로부터 일당을 받는다. 환자를 따라 이 병원 저 병원 옮겨다니기도 하고, 퇴원하면 집까지 따라가 간병하기도 한다. 서울대병원은 간병인 알선업체 세 곳과 협약을 맺고 인력을 제공받을 뿐, 간병인 안전은 책임지지 않는다. 환자나 보호자의 폭언, 성추행, 임금체불 등 문제가 발생해도 간병인들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이유다.

요양보호사가 장기요양보험제도 안에서 일한다면, 간병인 일은 사적 관계에 기반한 비공식 노동이다. 알선업체 중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소개하는 곳도 있지만, 법상으로 따로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며 받는 임금은 일당 9만~10만원, 시급으로 치면 3750원이다. 문씨는 간병인들이 이런 저임금을 견디는 이유는 “요양보호사 일로는 월 200만원 이상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경향신문이 만난 간병인 5명은 ‘가정에 소득이 있는 사람이 본인 외에 또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 ‘없음’을 써냈다. 문씨 말대로 이들은 모두 “생계형 가장”인 셈이다.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의 1주일치 짐.

서울대병원 간병인들의 1주일치 짐.

■ 내면화된 ‘자기노동 평가절하’

가치 인정 못 받는 여성 돌봄노동
‘보조 소득 위한 것’ 통념서 비롯
노동자 스스로도 평가절하
그나마 제도권 안 요양보호사도
원치 않는 단시간 노동·저임금

여성의 돌봄노동은 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까. 국미애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2018년 ‘서울시 사회서비스 종사자 근로조건 개선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여성 노동은 보조소득을 위한 것이라는 통념이 여성의 온전한 노동권 확보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념은 워낙 뿌리 깊어 여성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국 연구위원은 1년 이상 일한 재가 여성 요양보호사 3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 가까이가 실제로는 생계를 주로 책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가족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버는 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물었더니, ‘본인’이 48.5%로 ‘배우자’(47.2%)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 질문을 바꿔 ‘주된 생계부양자’를 물었을 때는 다수의 기혼 여성이 배우자보다 소득이 높은데도 ‘남편’을 지목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요양보호사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제도권 노동자’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다. 특히 돌봄 대상자 집에 직접 찾아가는 방문요양사들은 원치 않는 단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설문조사 결과 월급제(70.1%)로 하루 7시간 이상(51.3%)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다수였지만 노동시간은 월 92시간으로 요양시설 노동자의 절반에 그친다.

제도 도입 당시 1회 4시간으로 책정된 요양서비스 제공 시간은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자 2017년 3등급 이하 이용자는 3시간으로 줄었다. 오승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부장은 “목욕, 배설부터 식사, 청소, 세탁, 은행업무, 장보기까지 사실상 집에서 여성이 하던 모든 일이 포괄적으로 업무로 책정된 상황에서, 노동시간이 줄면 업무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다. 업무 일부를 거절했다가 이용자가 아예 서비스 요청을 거부하면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급 단위로 급여를 받는 요양보호사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단시간 노동만 배정하는 악질적인 민간센터도 있다.

■ ‘좋은 돌봄’이 가능하려면

전문가들은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익에 좌우되지 않는 공적 주체가 돌봄인력을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정부가 서비스를 빨리 안착시키기 위해 민간 재가방문요양센터 같은 서비스 제공 기관을 우후죽순처럼 늘린 결과 기관들은 이익만 좇고 요양보호사 처우는 더 열악해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부정수급 기관을 적발하는 수준 이상의 개입을 하기 어렵다.

서울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민수연씨(왼쪽)·김혜미씨·장애인활동지원사 김정남씨(오른쪽).

서울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민수연씨(왼쪽)·김혜미씨·장애인활동지원사 김정남씨(오른쪽).

서울시, 지자체 첫 종합재가센터
고용안정·현장 위협 줄어들어
전문가 “공적 주체가 관리해야”

공공이 요양보호사를 직접 채용하면 어떨까.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종합재가센터 5곳에 요양보호사를 고용해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호텔에서 일하다 아이를 키우며 경력이 단절됐던 김혜미씨(44)는 2년 전 시작한 요양보호사 일이 “적성에 맞다”고 했다. 돌보던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러 요양원을 따로 방문할 정도로 치매 노인들과 정겹게 지냈다고 했다. 민수연씨(52)도 비슷한 경우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다 요양보호사가 되겠다 하니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지만 현장에서 노인들과 정서적 유대를 쌓으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설립된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소속으로 월급제로 일한다. 고용 안정성 외에도 큰 차이는 업무 현장에서 위협을 덜 느낀다는 점이다. 알코올 중독, 중증 정신질환, 성추행·폭행 이력이 있는 돌봄 대상자를 방문할 때 2~3명이 팀을 이뤄 나가기 때문이다. 김혜미씨는 “문 열고 방에 들어가면 이불이 분변과 오물로 뒤덮여 있고, 찬장을 열면 바퀴벌레가 쏟아진다. 민간센터에서 서비스 제공을 거부당한 돌봄 대상자가 우리에게 배치되지만, 기관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업무를 조율해 주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했다.

로봇이 일자리를 없애지 않을까 걱정하기 전, 엄연히 존재하고 앞으로 수요가 더 늘어날 이들의 노동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 “노동의 미래를 얘기할 때, 유·무급 돌봄노동의 질을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현재 노동력의 건강과 교육을 책임지며, 늘어나는 고령자를 돌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ILO)

■ 민간 사업자 이해관계 조정 못해 꼬여버린 ‘돌봄의 공공화’

보육·요양 등 인력 직접고용 골자
문 대통령 공약 ‘사회서비스공단’
보육단체·보수 야당 반발로 주춤
일부 지자체 시범사업에 머물러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내건 공약이다. 요양·보육 등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의 공공성 강화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돌봄의 질을 높이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정권이 출범한 지 3년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 그 약속의 이행은 요원해 보인다. 어린이집 원장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 보수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법안 통과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구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 예산으로 시범사업에 착수했지만 국회 입법 없이 지속될지 미지수다.

이 공약은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재활사, 의료인력 등 사회서비스 제공 인력 34만명을 광역자치단체별로 설립한 사회서비스공단에서 직접 고용함으로써 일자리의 양과 질을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청와대 사회수석인 김연명 중앙대 교수 등 사회복지 학자들이 사회서비스를 망라해 설계했다. 임기 초 국정과제로 채택됐고, 일자리위원회가 2022년까지 17개 광역자치단체에 사회서비스 관리 주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민간 이해관계자들이 반발하며 애초 취지가 퇴색했다. 보육단체 등의 민간 단체장들은 공기업 성격의 기관이 만들어져 민간어린이집 운영을 침해할 것을 우려했다. 이들은 처우가 더 열악한 요양 분야의 돌봄과 보육교사의 노동이 동급으로 묶이게 될 가능성에도 불만을 표했다. 보건복지부는 ‘공단’이란 이름 대신 ‘진흥원’을 대안으로 제시했고, 결국 명칭은 사회서비스원으로 결정됐다. 사업 범위는 민간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신규 설립 국공립어린이집, 신규 요양 수급자에만 관여하는 쪽으로 축소됐다. 또 일자리의 양보다 질의 개선에 우선 집중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 지역으로 서울·경남·대구·경기를 선정하고 예산 59억7000만원을 책정했다. 하지만 야당 반대로 ‘사회서비스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해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5개 구에 200여명의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등 종합재가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국회 입법이 없는 상황에서 현 박원순 시장 임기 종료 후 사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이 공약이 표류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이 민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보육계는 어린이집 원장들이 청와대를 찾아가기도 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여기에 복지부의 소극적 태도까지 겹쳐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 정무부시장 재직 시 서울사회서비스원 출범에 관여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 간사는 “현재 요양보호센터 직원들을 전부 사회서비스원에서 고용해 공기업 직원신분을 만들어주고 기관장들은 월급쟁이 센터장으로 했어야 한다”며 “노동의 미래에서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의제이지만 전 사회적 논의로 올리지 못했다. 시민들은 현 정부가 기득권과 강하게 싸워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해관계자들의 강한 반발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남인순 의원실 관계자는 “‘공약의 후퇴’라는 지적은 달게 받겠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을 반영한 법안이라도 통과되면 민간시장에만 의존해온 사회서비스가 공공에서 하는 모델이 생겨나고, 이 분야의 일자리 처우가 개선되는 기초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미랑·손제민 기자 rang@kyunghyang.com>

[녹아내리는 노동]로봇으로도 대체 못할 돌봄노동…‘우리 안의 홀대’가 문제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