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수당이란 수당은 대부분 최저임금에 포함됐다.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에 들어가는 항목이 다르니 너무 복잡하다. 생산직 노동자 중 임금명세서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서 일하는 정종훈씨(39)는 지난 18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금속노조 르노코리아자동차지회 정책실장을 맡고 있어 노동 관련 사안에 밝은 편이지만 그에게도 임금명세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투성이다. 정씨는 “노조 정책실장인 나조차도 며칠간 각 잡고 앉아 공부해야 임금 구성이 조금 눈에 들어온다”며 “동료들에게 설명하면서도 헷갈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르노코리아 노동자 임금 중 최저임금으로 계산되는 항목에 포함되는 수당은 말 그대로 “백화점”이다. 자기계발비, 라인 수당, 안전환경 수당, 기술자격 수당, 고객관리 수당, 관리자 수당, 교대 수당, 가족수당, 중식대 보조, 문화생활비, 개인연금(회사지원분) 등 다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다.
2019년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확대되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전에는 최저임금에 기본급과 직책수당 등 일부 수당만 포함됐다.
2018년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잇따르자 국회는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매월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주는 임금’은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최저임금에 포함되도록 했다. 상여금, 식비·교통비 등 현금성 복리후생비도 매월 지급만 하면 최저임금 항목으로 간주했다.
르노코리아 노사는 2019년 임금협약에서 공헌수당을 신설했다. 변동 상여금(PI) 200% 중 50%를 떼어오고 여기에 회사 재원으로 마련한 10%를 합한 60%를 매월 5%씩 12개월간 공헌 수당으로 지급한다. 정씨는 “상여금 중 일부를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된다. 해가 바뀌어 법정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본급을 올리는 대신 상여금 중 일부를 최저임금 인상분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통상임금
기본급 인상 대신 상여금,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에 넣는 방식으로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할 수 있게 되자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지는 일이 벌어졌다. 통상임금은 소정 근로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정기·일률·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으로, 연장·야간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의 산정 기준이 된다. 르노코리아 노동자들의 올해 통상시급을 보면 최저시급 9620원보다 낮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2001년에 입사한 노동자 A씨의 통상시급은 9581원, 2006년에 입사한 B씨의 통상시급은 8734원, 2010년에 입사한 C씨의 통상시급은 8703원이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하청업체에서도 통상임금이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한국지엠 2차 하청업체 노동자 김태훈씨(32)의 임금명세서를 보면,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통상시급은 8000원으로 고정돼 있다.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아진 것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구성 항목이 늘어난 데다 사용자들이 상여금 지급 시 ‘재직자 조건’을 붙여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분기 혹은 격월에 한 번씩 주던 상여금을 매월 주는 것으로 바꾸면 상여금이 최저임금 계산 시 포함돼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된다. 아울러 기업은 월말 기준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상여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단다. ‘재직자 조건’이 있으면 임금의 고정성이 없다고 간주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장근로 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일 벌어져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우선 노동자들이 연장근로를 할 때 기본임금을 적게 받는 일이 벌어진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연장근로를 시킬 때 금전적 부담이 완화되고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용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이전엔 연장·야간근로수당(통상임금의 150%)의 100%와 50%를 구분해 가산수당 50%는 최저임금에 미달한 통상임금으로 지급해도 됐지만 100%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2019년 12월 기존 행정해석을 폐기하고 연장·야간근로에 대한 기본임금(100%)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통상임금 기준으로 지급해도 최저임금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통상임금은 최저임금과 별개의 개념이며 최저임금법은 연장근로에 대한 임금 및 가산수당의 수준에 대해선 규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엠 하청 노동자 김태훈씨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처음 개편될 때 현장 작업자들은 그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해를 못 했다”며 “요즘 공장에서 잔업·특근이 많은데 연장근로수당은 최저임금보다 1620원 낮은 통상시급 8000원을 기준으로 낮게 나오니깐 완전 ‘꼼수’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정부가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더 오래 일 시키면서 임금은 더 적게 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꼴”이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최저임금법 위반은 아니라고 하니 작업자들은 그냥 체념하게 됐다”며 “근본적으로 복잡한 임금체계는 사용자들이 어떻게든 뭔가 빼먹으려는 의도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 임금체계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사용자가 통상임금을 최저임금보다 낮게 정해 각종 수당을 과소지급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최저임금과 통상임금 산정기준을 일치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20년 발의되기도 했다.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을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되도록 해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간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왜곡된 임금체계를 바로잡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현장에서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막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연장·야간노동에 통상임금 150%를 지급하라는 근로기준법 취지는 노동자 건강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연장·야간노동 수당 산정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근로기준법 취지가 훼손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이 최소한 최저임금보다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최저임금 산입범위 정상화” 요구
노동계는 올해 최저임금 제도개선을 위한 7개 요구안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를 담았다. 양대 노총은 지난 4일 내년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됐다”며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 안정이라는 최저임금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이 적용된 2019년 이후 최저임금 영향률(새로 적용될 최저임금으로 직접적 영향을 받는 노동자 비율)은 하락 추세다. 2020년 이후 전년 대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를 거듭하면서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조사 기준 영향률은 2019년 18.3%에서 올해 6.5%까지 낮아졌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무력화된 사례가 잦았던 것도 영향률 하락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최저임금의 목적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노동자 생활 안정을 꾀하는 것인데 산입범위 확대로 유해환경 수당, 라인 수당 등 각종 수당이 최저임금에 포함됐다”며 “최저생활 보장과 유해환경 수당이 무슨 관계가 있나. 최저생활 보장은 보장대로 하면서 노동자가 유해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면 추가로 수당을 주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매월 준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수당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