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웹툰업계에서 사용하는 각종 계약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업계 표준으로 남아 있다. 특히 매절계약은 그 자체로 여전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유사한 형태의 또 다른 계약으로 파생됐다. 이른바 MG(Minimum Guarantee)제라고 불리는 최소수입 보장 계약이다. 여기에 새로운 업계 관행처럼 정착 중인 창작자와 제작사 간의 공동저작권 개념이 붙으면 사실상 수위 낮춘 매절계약이다.
매절계약이 저작권의 통째 양도에 가깝다면 MG제+공동저작권 개념은 저작권의 부분 양도 형태다. 두 가지 계약 모두 창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있느냐를 고려한 계약이 아니다. 여전히 업계는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복잡한 계약 형태와 그 위험성,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기는 어렵다. ‘나의 아이디어로 내가 그렸다면 당연히 나만의 창작물 아니냐’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부분으로 쪼개서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부터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현직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훈(이하 ‘김’), 조은(이하 ‘조’) 작가를 지난 3월 29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김 작가 작업실에서 만났다. 이들이 매일 그리고 있는 작품은 해당 계약의 적용을 받고 있다. 업계에 만연한 계약의 문제와 대안을 물었다.
-만화, 웹툰 업계의 ‘매절계약’ 관련해서 논란이 끊이질 않는데.
김 “신인 작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처참할 정도다. 웹툰의 경우 1회당 90만원에 매절계약을 맺고 제작사가 모든 권리를 가져간다. 신인 작가들은 계약 관련 정보가 없다 보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이들이 공정 계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종의 사각지대가 됐다.”
조 “매절계약을 할 때 평균선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도장을 찍으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가 없다. 작가들끼리 ‘나는 이만큼 받았으니 너도 이만큼 받아야 해’라는 식으로 알려주기도 어렵다. 작품에 따라 작가의 가치가 다르게 평가받기 때문이다. 결국 정보 공유가 가장 어려운 신인 작가들부터 피해를 입는다.”
*매절계약 : 출판사가 저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 그 이후 저작물을 이용해 얻은 추가 수익을 모두 독점하는 계약 형태
*인세계약 : 출판사가 저작물이 팔리는 수량에 따라 합의한 인세비율로 수익을 지급하는 계약 형태
-매절계약이 인세계약보다 더 높은 수입을 가져다준다는 반론도 있다.
김 “매절계약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말도 안 되게 작품 가치를 낮춰 계약을 유도하는 것이 문제다. <구름빵> 사례처럼 작품 성공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돈을 주고 이후 발생한 모든 수익을 다 가져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겠나. 지금처럼 포괄적이고 영구적이면 안 된다.”
조 “매절계약이 나름대로 존재가치가 있다는 부분에는 동의한다. 나 역시 매절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에는 장기적 수익을 바라보고,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단기적으로 많은 수익이 필요한 상황에서 매절계약에 동의하는 대신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최대한 올리고 시작했다. 매절계약이 장기적으로 회사가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는 것은 맞는데, 반대로 회사도 그만큼 수익을 내기 위해 홍보도 하고 영업도 한다. 즉 돈은 회사가 많이 가져가지만 작가 입장에서도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매절계약이 필요악이라도 이것만큼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있나.
조 “저작권을 전부 양도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MG를 높이고 RS(Revenue Share)라고 부르는 수익배분을 낮추는 방식 등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이 방식으로 하면, 저작권 전부 혹은 일부를 지킬 수 있다. 매절계약을 하면 굿즈, 포스터 등의 상품이나 수출로 수익이 창출돼도 저작권이 전부 회사에 있기 때문에 분배가 불가능하다. 작가가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저작권을 일부라도 소유하고 있다가 수익을 제대로 분배해주지 않으면 생산활동에 동의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수익활동을 해야 하는 회사는 매출에 대한 RS를 주는 방식으로 협상을 할 것이다. 저작권을 다 줘버리면 작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김 “결국 저작권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상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매절계약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상을 벌었다면 원작자와 공유하는 방식이 있을지 당사자 참여 연구가 필요하다.”
-저작권을 지분 형태로 나눈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것인가.
김 “제작사들이 작가와 계약을 할 때 RS 비율을 결정하는데 이미 이 비율을 저작권 비율로 쓰고 있다. 창작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한 방어가 전혀 안 된다. 최근에 저작권 지분을 양도하는 기존 유형과 별개로 공동저작자로 지정해달라는 신유형이 등장하고 있다. RS대로 저작권 지분을 나누는 게 필수가 아닌데 자꾸 그런 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유도하는 것은 창작 동력, 생태계를 갉아먹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 “계약을 할 때 회사가 저작권 지분을 갖는 것이 요즘 웹툰 계약의 전형적인 형태가 됐다. 작품 창작에 관여하지 않고 홍보, 유통, 영업만으로 처음부터 지분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또 회사가 중심이 돼 웹툰 제작을 기획하고 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경우도 있다. ‘우리와 이 작품 한번 하자’는 식으로 섭외를 한다. 이 경우에도 회사는 저작권 지분을 나눠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작가 스스로 회사를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때 카카오페이지 웹툰은 개인보다 제작사 차원에서 계약을 맺을 때 홍보를 많이 해준다는 말이 있었다. 작가 홀로 모든 작품을 만들었더라도 회사를 끼고 카카오페이지에 들어가야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이때도 회사와의 계약은 무조건 저작권을 5:5로 나눠 갖는다. 우리가 카카오에 꽂아주니 저작권 50%는 가져가겠다는 식이다.”
-저작권을 나눠 가지면 수익분배는 어떻게 되나. 공정하다 할 수 있나.
김 “한국 웹툰 시장의 구조는 플랫폼-제작사-창작자의 구조다. 이를 순차적으로 갑-을-병이라고 해보자. 병은 갑과 을의 계약 내용을 알 수 없다. 이들이 공개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는 작가들인데 계약에선 병의 위치에 있다. 웹툰 시장의 성장을 이끈 작가들이 만화 시장이 되살아났다는 것에 안도하며 본인들의 가치,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 했다.”
조 “정보의 한계로 촉발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제작사가 웹소설 업체의 작품을 산 뒤 작가들을 모아 웹툰을 만든다고 해보자. 글 작가가 있고, 그림 작가도 있고, 편집 등을 담당하는 직원도 있을 텐데 이들이 한꺼번에 모여서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따로 계약서를 쓴다. 글 작가는 얼마를 받고, 그림 작가는 얼마를 받는지 서로 모른다. 심지어 제작사가 웹소설을 얼마에 샀는지조차 작가에게 알려줄 의무가 없다. 웹툰 제작에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순수익을 분배한다고 할 때, 애초에 비용을 모르는데 수익이 정당한지를 어떻게 알겠나.”
-정산 관련 데이터를 갖고 있는 플랫폼에 직접 물어볼 수 있지 않나.
조 “플랫폼은 계약을 맺은 제작사에는 정산서를 공개하지만, 창작자에게까지 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정산서는 수익을 투명하게 관리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작가의 실적이자 앞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빅데이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제작사에 정산서 공개를 요청해도 원본을 보여주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 자기가 사용하는 형식에 정산 내역을 옮겨써서 보여준다. 이게 플랫폼이 제공한 원본과 맞는지 확인할 길도 없고, 심지어 수치의 합이 틀린 경우도 발견되면서 신뢰가 더욱 떨어진다. 그렇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싸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명확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느낌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플랫폼이 제공한 정산서 원본을 본 적조차 없다는 말인가.
김 “애초에 요청을 안 했다. 안 줄 것을 알면서 이야기를 해서 불편해지느니 그냥 둬 버린 것이다. 대신 조회 수 등으로 대략 짐작은 한다. 대부분의 작가가 마감을 하고 나면 곧바로 다음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작사와 문제가 생기면 그걸 버틸 여력이 없다. 그래서 좀처럼 싸우질 못한다.”
조 “작품을 시작할 때 저작권을 나눠 가진 이상 작가는 무슨 일이 생겨도 해당 제작사와 일을 해야만 한다. 제작사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법정 공방을 벌인다고 해도 개인인 작가가 법무팀을 갖추고 있는 회사를 상대로 이기기 어렵다.”
-애초에 계약이 불공정해 보이면 안 할 수도 있지 않나.
김 “만화만 했던 사람들이라서 경험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회사가 이들의 취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마감에 쫓기며 심신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누군가 내 작품의 캐릭터들을 홍보도 해주고, 상품도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일단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안을 고려한 신중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말 최악의 경우 마감 중에 제작사에서 연락이 와서 ‘작가님 빨리 서명하셔야 해요’라고 하는 사례도 있다. 19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추세는 누구에게든 극악의 계약서를 던져주고, 반발하면 고쳐주고, 안 하면 그대로 계약 해버리는 것이라고 느낄 정도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어렵다. 계약서에 비밀유지조항 같은 것을 넣는다. 특히 신인 작가들의 경우, 변호사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 계약이 공정한지 물어봐도 안 되는 줄 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대로 된 표준계약서가 있다면 도움이 될까.
조 “표준계약서가 있다면 불공정 계약을 알아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표준계약서와 본인의 계약을 비교해보고 상담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불공정한 계약서를 작성한 작가가 이를 바로잡고 공정한 계약으로 나아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당한 대우에 익숙해진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긴다. 이때 표준계약서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드는 회사와 일을 하고 있어 저작권을 나누는 것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작가가 수익 정산 등과 관련한 정보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표준계약서에 포함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김 “표준계약서와 관련해서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만약 독소조항을 품은 채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면 일부 악질 제작사가 작가들을 착취한 뒤 독소조항을 인용해 정당화할 수도 있다. 지금 만화가협회나 여러 단체가 표준계약서에 저작권 지분을 작가와 제작사가 나눌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이 들어가는 일을 막으려는 것도 같은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