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위조, ‘간판’ 중시 풍토가 ‘인생 성형’ 부추겨

2007.07.20 03:11

학력위조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신정아 동국대 교수(35)에 이어 KBS 라디오 ‘굿모닝 팝스’를 7년째 진행 중인 유명 영어강사 이지영씨(38)의 학력 역시 위조된 것으로 19일 드러났다. 그간 영국 브라이튼대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의 학력은 고졸이었다. 인기 만화가 이현세씨도 최근 출간한 골프만화 ‘버디’ 3권에서 자신의 학력이 대학중퇴가 아니라 고졸임을 털어놨다.

학벌위조,  ‘간판’ 중시 풍토가  ‘인생 성형’ 부추겨

신정아 사태 이후 ‘학력위조 커밍아웃’이 줄을 잇는 상황이다.

학력 위조는 실력보다 간판이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19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카운슬러인 노혜진씨의 학력도 부풀려져 있음이 확인됐다. ‘부자들의 습관을 훔쳐라’ ‘1등 아이 성격 부모가 만든다’ 등 심리상담 서적을 출간하며 화제를 모았던 노씨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도쿄대학교와 연세대 대학원 교환학생과정을 수료하고 보스턴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소개해왔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이에 대해 노씨는 “도쿄대와 연세대 대학원에 등록해 학교를 다녔으나 졸업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스턴대 철학 박사 학위와 관련해서도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노씨는 최근까지 지자체 등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학력위조로 물의를 빚은 저명인사는 한 둘이 아니다. 학력위조 사기극을 벌인 대표적인 인물은 황인태씨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CNN 기자와 마젤란펀드 펀드매니저를 지냈다며 방송 패널로 맹활약한 그의 경력은 확인결과 모두 거짓이었다. 자신의 저서에 거짓경력을 줄줄 늘어놨지만 그의 화려한 이력에 눈이 멀었고 누구도 검증을 하지 못했다. 황씨는 학창시절 그를 본 적이 없다는 대학동문들의 제보로 2002년 결국 덜미를 잡혔다.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은 지난해 자신의 최종 학력을 ‘미국 퍼시픽웨스턴대 정치학 석사’로 기재해 물의를 빚었다. 이 대학은 미국에서 정규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소위 ‘학위남발 학교’로 유명하다. 당시 인천지방경찰청은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 33명을 적발해 8명을 입건했다.

17대 총선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상락 전 의원 역시 초등학교 졸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고교졸업으로 후보 등록서류에 허위기재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장상 총리서리는 2002년 청문회를 앞두고 ‘프린스턴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했다가 결국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다.

또 2004년 손해보험협회 오상현 회장은 한양대 1학년 제적생이지만 한양대 졸업이라고 학력을 기재했다가 결국 여론에 밀려 사퇴한 바 있다.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오른 박금성씨는 목포해양고를 졸업했지만 목포고라고 학력을 기재한 사실이 적발돼 사흘 만에 청장자리에서 물러났다.

교육계에서의 학력위조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올해 초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졸업생을 사칭한 학원 강사 20여명을 적발했고 지난 13일 서울경찰청은 비인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현직 대학교수 등 60여명을 입건했다.

학력위조의 근본 원인은 우리사회의 간판 중시 문화다. 하지만 학력위조사태를 바라보는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 역시 학벌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칼럼니스트 하재근씨는 “신정아씨의 학력위조가 이렇게 문제가 된 것도 실력 때문이 아니라 ‘간판’이었다”며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선후배만 잘 챙긴다면 장수할 수 있는 것이 한국사회”라고 꼬집었다.

학벌없는사회 홍세화 공동대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수직화된 대학서열화 구조를 깨지 않는 이상 학벌사회를 타파할 수 없다”며 “대학입시와 취직 이후엔 국민 대부분이 자기계발을 안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학벌사회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김준일·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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