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애국’을 말하다

종북·국보법을 논하는 그들…전문가 분석

2013.02.01 16:43 입력 2013.02.01 17:07 수정

“우리나라가 지금 위기입니다. 북한은 중국의 괴뢰정부가 되고, 우리는 중국의 식민지가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애국심으로 단결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세대갈등이 너무 심합니다. 양극화도 심하고 서로 절대 양보를 안 해요. 이러면 위기가 온다고 봅니다.”

“천안함 터지고 별 감흥은 없었어요. 연평도부터 감이 오더라구요. 연평도 이후 종북카페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에서 천안함 관련해 북한을 추종하고 나서니 화가 치밀었어요. 우리 국민들이 많이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더욱 반북, 반공투사로 간 것이죠.”

지난달 19일 ‘대한애국청소년연합’(대청연) 발족식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천안함 침몰·연평도 포격 사건이 애국심에 눈뜨게 된 계기였다고 털어놨다. 자발적으로 해외 누리꾼들의 혐한 게시물에 대응하고, 북한 추종 인터넷 게시물을 찾아 국정원에 신고한다. 행사 내내 파워포인트로 대형 태극기 화면을 띄워놓고, 사회자는 한복을 입고 올 정도로 국가상징물과 전통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 이 같은 ‘10대들의 애국열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터넷 카페 ‘대한민국애국청소년연합’ 회원 24명은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강의실을 빌려 오프라인 조직 출범을 선언했다.

인터넷 카페 ‘대한민국애국청소년연합’ 회원 24명은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강의실을 빌려 오프라인 조직 출범을 선언했다.

애국과 안보는 중요한 정치적 주제…지나친 동일시와 활용 방식의 문제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애국과 안보도 중요한 정치의 주제이다. 애국을 논하는 것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중요한데, 2차대전의 책임 여파로 ‘애국’이란 단어를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 때문에 ‘헌정적 애국심’(constitutional patriotism)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려 고민했다”며 “우리는 국가라는 체제 속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살고 있는 만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다만 문제는 애국 자체가 아니라, 나와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국가의 범주를 끝없이 과거로 확장하고, 이 모든 과거를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건국의 아버지’라는 이유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작업 등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젊은층들의 대외 인식이 1930년대 일본 젊은층의 인식과 ‘유사점’은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1920년대 중반 장개석(장제스)이 부상하면서 일본 내에서 중국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다. 하지만 과장된 위기의식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1920년대 말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과 과장된 대외위기의식이 태동하는 상황에서, ‘애국’을 선동하는 청년 장교들이 나타나면서 군국주의가 형성됐다”며 “(이 장교와 추종세력들도)‘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아니라 애국’이라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군국주의 파시즘과 유사한 정치적 운동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박 교수는 “애국주의적 열기가 실제 정치로 연결되려면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외부 소요가 일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젊은층의 분위기를 이용하려는 혹은 이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정치지도자가 나타나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청연’ 회원들은 대부분 현재를 ‘애국과 단결이 필요한 국가적 위기상황’이고 인식했지만 기성 정치권이 자신들을 동원하려는 것은 경계했다. 문천상씨(20)는 “청소년 카페는 선거철 이용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성인이 된 기존 회원들의 지위를 어떻게 처리할 지’를 두고 격론을 벌이다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임원진은 청소년으로 제한한다’는 아이디어가 지지를 받았다.

“지켜보자”…헌법적 가치와 다원주의를 존중 여부가 관건

이날 모임에 참석한 10대들은 대부분 ‘일간베스트(일베)사이트’로 상징되는 극우적 분위기에는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행사 직전 사회자는 다소 지나친 농담에 대해 “일베스타일로 가지 맙시다”고 말했고, ‘좌빨, 노운지’ 등의 비하적 용어는 사용하지 않도록 향후 언어교육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다. 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지식을 일베를 통해 알게 됐다는 회원도 있었다.

‘종북’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가 일치했다. ‘코리아오브미라클’(17)은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북한 인권 문제는 명백한 잘못인데 여기에 침묵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라고 말했다. 무엇이 종북인지는 불분명했다. 일부는 ‘민주통합당도 종북’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국가보안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더 논할 가치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보화와 뉴미디어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정치적 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가 앞당겨지고, 동일 세대 간 광폭의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일 정치성향을 지닌 청소년들이 단순히 인터넷에서 활동을 한다고 언론 등에서 극우, 파시즘 등을 거론하며 침소봉대 하는 대신 실제적 영향력과 내용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극좌와 극우를 모두 포함해 극단주의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헌법적 기본권과 민주적 원리, 정치적 다원주의를 긍정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젊은층들의 대북위기의식은 지속적으로 높은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의 ‘2012 통일의식조사발표’에 따르면 2005년에는 20대들의 53.2%만이 향후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했다. 이 수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이후인 2011년 가장 높았던 86.1%를 거쳐 지난해에는 74.9%를 기록했다. 위기의식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전체 평균(68.9%)은 물론 50대 이상의 응답(67.4%)보다도 높았다. 10대들의 인식은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청연’ 회원들의 성향을 10대 전체의 성향으로 확대해석해 ‘새로운 세대론’이 나오는 것을 경계했다. 전 교수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들 또래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처럼 보여도 주로 남자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며 “‘연평도 세대론’ 등 쉽게 ‘세대’란 용어를 쓰면 핵심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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