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방법 알려주니, 노숙인들 새 삶의 힘 얻었대요”

2014.01.26 21:27 입력 2014.01.27 19:59 수정

연세대 로스쿨 교수·학생들 ‘따뜻한 무료 법률상담’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손창완 교수(41)는 대학원생 박기태(32), 김규희(32)씨와 함께 2012년 11월부터 1년 넘게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법률자문을 해오고 있다. 손 교수는 한 달에 두 번 노숙인들을 만난다.

지난 23일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지하 식당에서 만난 손 교수는 노숙인 ㄱ씨(43)에게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검은 점퍼에 모자를 푹 눌러쓴 ㄱ씨는 손에 두툼한 서류뭉치를 든 채 2주에 한 번 열리는 무료 법률상담을 찾아왔다고 했다. ㄱ씨의 사연은 기구했다. 30대 중반이던 2005년 ㄱ씨는 홍대 앞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홀어머니와 함께 보증금 500만원짜리 월세방 생활에서 벗어날 거란 소박한 꿈을 품었다. 포장마차는 ㄱ씨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길바닥 ‘일수 대출’이 눈에 띄었다. 그가 처음 빌린 돈은 불과 500만원. 선이자를 떼고 100일 동안 매일 6만원씩 갚는, 연리 80%짜리였다. 일수를 일수로 메우다보니 돈 빌린 곳만 10군데가 넘었고 원금을 다 갚았는데도 이자가 원금만큼 불어나 있었다. 하루 30만원 매출에 갚아야 할 일수 이자는 100만원이나 됐다. 새벽에 집까지 찾아와 협박을 일삼던 사채업자들을 버티다 못한 ㄱ씨는 어머니를 친척집에 맡기고 노숙을 시작했다. 그사이 ‘중추성 폐질환’을 얻어 응급실을 여러 번 오갔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손창완 교수(왼쪽)와 대학원생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을 상대로 법률상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손창완 교수(왼쪽)와 대학원생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을 상대로 법률상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올해 들어 ㄱ씨는 노숙을 청산하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손 교수에게 법률상담을 받으러 왔다. 손 교수는 서류를 먼저 챙겼다. 예전 통장과 확인증, 차용증 등을 살펴본 손 교수는 “빚을 갚으려 노력했다는 증거가 있어 파산 신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우선 법원과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채무 현황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손 교수는 다음 상담 때 서류를 챙겨오면 신청서를 작성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손 교수는 로스쿨 입학 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박씨의 제안으로 2012년 11월부터 로스쿨 내 ‘공익법률지원센터’의 노숙인 법률상담이 시작됐다고 했다. 무료 법률상담을 하는 노숙인은 한 달 평균 10명 정도. ㄱ씨처럼 파산·면책 신청이나 명의 도용으로 생긴 대포폰, 대포차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상담에 나선 20여명의 학생들은 노숙인이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는 일까지 돕고 있다.

손 교수는 “학생들이 전문적인 내용까지는 상담하지 못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법률가의 공적 책무를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파산 신청에 드는 변호사 비용이 300만~400만원에 이른다는 얘길 듣고 여러 번 포기했는데 오늘 용기를 얻고 간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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