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월호 참사 청문회 다섯 장면

2015.12.21 13:07 입력 2015.12.22 17:16 수정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1차 청문회가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렸습니다. 여야가 합의해 제정한 ‘세월호 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열린 청문회입니다. 특조위원들은 34명의 증인과 참고인을 두고 참사 초기 정부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유족들에게 이번 청문회는 어땠을까요? 다시 슬픔과 분노에 빠졌습니다. 증인 대부분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5명의 여당 추천 위원들은 청문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중 2명은 총선 출마 준비에 나섰습니다. 애초 수사권·기소권이 없는 청문회였기 때문일까요? 여야 합의로 연 청문회인데도 국회는 내부 규정을 내세우며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런 청문회 자리였지만 가족들은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된 자리였다”며 제2차, 제3차 청문회가 열려 더 심도 깊은 조사를 하길 바랐습니다.

1차 청문회를 다섯 가지 주제로 되짚어봅니다.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 앞 사고 해상에 도착한 한 실종자 가족이 빠른 유속으로 구조작업이 지연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 앞 사고 해상에 도착한 한 실종자 가족이 빠른 유속으로 구조작업이 지연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왜 시민단체 건물에서 청문회를?

이번 청문회가 열린 장소는 서울 중구에 있는 YWCA회관 4층 대강당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을 규명하려는 청문회가 시민단체 건물에서 열린 거죠. 시민사회의 바람을 반영하기 위해 애초에 정한 장소라면 그리 문제될 것도 없죠. 하지만 애초 특조위는 청문회 장소를 국회에 잡으려고 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제정한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청문회인 데다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남긴 참사였던만큼 ‘민의’를 반영한다는 국회에서 청문회를 여는 건 당연해보였습니다.

특조위는 지난 10월 국회 사무처에 협조 공문을 보냈습니다. 국회의 ‘청문회 전문 회의장’인 제3회의장을 청문회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한 것입니다. 제3회의장은 국무총리 등 고위직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국회 사무처는 청문회 장소로 회의장을 내어주는 데 부정적인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1차 요청 때 공식 답변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특조위는 야당의 제안 형식을 빌어 다시 국회 사무처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2차 요청이었죠. 그나마 ‘야당’이 끼어 답변이라도 한 걸까요? 국회 사무처는 11월 국회가 주관하는 국제회의 같은 공식행사 등에만 회의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내규를 들어 특조위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특조위는 YWCA회관 4층 대강당을 빌려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공간 사용료를 지불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가 304명인데 방청석은 150석뿐이었습니다. 유족들과 취재진이 모인 방청석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비좁아 보였습니다. 유족들은 방청을 위해 오전 6시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2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여야가 특별법으로 합의했고,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희생당한 아이들을 위한 청문회인데 당연히 국회에서 열렸어야 했다”며 “하지만 여야 모두 책임지지 않고 가족들 편에서 싸워주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YMCA라는 시민의 공간에서 청문회가 열린 것은 시민들이 함께 힘을 합칠 때 참사 진상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세월호 청문회 사흘째인 지난 16일 서울 명동 YWCA 청문회장에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증언하는 모습을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세월호 청문회 사흘째인 지난 16일 서울 명동 YWCA 청문회장에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증언하는 모습을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다. | 서성일 기자

내년 특조위의 예산은 기대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앞서 지난 2일 특조위 예산 61억원이 정부안 대로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이는 당초 특조위가 요구한 189억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액수입니다. ‘세월호 선체 정밀조사’ 예산은 전액 삭감됐습니다.

2차 청문회 개최 여부는 미정입니다.


증인들 “기억 안 난다”

청문회 첫날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관계자 1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부실한 구조활동을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도 수의 차림으로 참석했습니다.

해경의 사고 초기대응에 대한 특조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지만, 증인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조형곤 전 목포해양서 상황담당관은 세월호와의 교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언론보도를 통해 알지 않았으냐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습니다. 유연식 전 서해해경청 상황담당관도 “당시 상황실을 (내가) 총괄한 게 아니다. 각자 파악해야 할 임무만 파악했다”고 했습니다.

서울 명동 YWCA에서 지난 14일 열린 청문회 첫날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명동 YWCA에서 지난 14일 열린 청문회 첫날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이재두 목포해경 3009함장은 ‘김문홍 목포서장이 123정에 어떤 식으로 구조하라는 지시를 옆에서 들은 적 있느냐’는 물음에 “전화 녹취록에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김경일 전 123정장은 ‘현장 도착 전까지 목포서장이 지시한 게 있느냐’는 물음에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와 초기 교신 시도를 하지 않아 초동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김석균 전 청장은 “구조인력 출동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세월호와 해경 간 교신이 안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엔 몰랐다”고 했습니다.

참사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은 참사 13일째였던 지난해 4월28일 “현장에서 ‘승객은 전원 퇴선하라’는 방송을 했다”며 기자회견을 했지만 이후 검찰 조사에서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청문회 둘째날 김석균 전 해경청장은 ‘증인이 기자회견을 지시했나’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퇴선방송이 거짓임을 알았느냐는 추궁에는 “제가 구체적인 사안을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23정이 퇴선방송을 했다’는 보고가 거짓이라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얘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사진 왼쪽 맨 뒤)은 “500명이 넘는 잠수사가 구조 중”이라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박근혜 대통령과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과 얘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사진 왼쪽 맨 뒤)은 “500명이 넘는 잠수사가 구조 중”이라고 말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청문회 마지막 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당시 해경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사고 당일과 다음날인 17일까지 30여 명의 잠수사만 구조에 투입됐다고 기재돼 있었는데도 17일 저녁 (진도체육관에서) 해경청장과 대통령은 500명이 넘는 잠수사가 구조 중이라며 가족들에게 허위 사실을 알렸다. 잘못된 정보임을 알았을 텐데도 입을 닫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에 “실제 구조에 투입된 인원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 전체를 합산해 발표하면서 과장이 된 것 같다. 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라면서도 “제가 묵인했다기보다 해경청장 얘기를 동원세력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석균 전 청장은 한술 더 떠 “투입이라는 의미는 동원(을 뜻한다)”며 “투입이 직접 잠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정혜숙씨는 “‘잘못했습니다’ 한 마디를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지…”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또 “참사 다음날 울분에 찬 가족들을 앞에 두고 틀린 내용을 발표했던 해경 수뇌부와 대통령까지, 문책 당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진도 해상 사고현장을 찾아 해경들을 격려하고 있다.  | 진도=청와대사진기자단

세월호 참사 이틀째인 지난해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진도 해상 사고현장을 찾아 해경들을 격려하고 있다. | 진도=청와대사진기자단


여당 추천 위원 ‘전원 불참’

청문회가 열린 사흘 내내 이헌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 추천 위원 5명은 청문회에 불참했습니다. 이헌 부위원장을 제외한 이들은 지난달 23일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포함한 청와대의 대응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자 집단 퇴장하며 사퇴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특조위원 신분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요즘 뭐하고 지낼까요. 황전원·석동원 위원은 지난 15일 각각 경남 김해시 선관위와 부산 사하구 선관위에 내년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습니다.

황전원 세월호 특조위원이 지난 12월15일 오전 김해시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 뉴스타파 갈무리

황전원 세월호 특조위원이 지난 12월15일 오전 김해시 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걸어나오고 있다. | 뉴스타파 갈무리

고영주 위원은 청문회 기간 내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실에 출근해 업무를 봤습니다. 그는 <뉴스타파>에 “대통령 7시간에 대해 조사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다시 특조위원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니 청문회에도 나설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차기환 위원도 청문회 기간 동안 자신이 수임한 재판에서 변론하고 KBS 이사회에 참석하는 등의 일정을 보냈습니다.

특조위 출범 후 여당 추천 위원들의 행동은 ‘특조위 무력화’에 초점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해양수산부 ‘세월호 특조위 관련 현안 대응방안’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특조위의 청와대 조사를 막기 위해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을 활용하는 등 시나리오를 마련한 정황이 나타납니다. 문건은 “BH(청와대) 조사 관련 사항은 적극 대응한다”며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의결과정상 문제를 지속 제기하고 필요 시 여당 추천 위원 전원 사퇴의사를 표명한다”고 했습니다. 또 “여당 추천 위원이 전원 사퇴하더라도 특조위 구성상 의결에 영향을 끼치긴 어려우나, 위원회 구성 및 의사결정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함을 집중 부각한다”는 후속조치까지 제시돼 있습니다. 문건은 국회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여당 위원들이 공개적으로 특조위에 소위 회의록을 요청하고 비정상적·편향적 위원회 운영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다”고 명시했습니다. 문건 내용 대로 조직적으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움직인 겁니다.

세월호 청문회 첫날인 지난 14일 유가족들이 사고 당시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세월호 청문회 첫날인 지난 14일 유가족들이 사고 당시 영상을 보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세월호 희생자 동혁 군의 아버지 김영래씨는 2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청문회 자리에 있었으면 그나마 (이번 청문회에서) 밝혀진 일부 진실도 밝혀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여당 추천 위원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나타냈습니다.


세월호 의인의 자해

세월호 참사 때 20여명의 학생들을 구한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50)는 청문회 첫날 방청석을 지켰습니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김동수씨는 방청 도중 “솔직히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자리에서 일어나 흉기로 자해를 했습니다. 김진 특조위원이 해경과 세월호 승무원들의 공모 의혹을 제기하며 ‘왜 (조타수와) 같이 123정으로 옮겨타지 않았느냐’고 박상욱 전 123정 승조원에게 질문하자 박씨가 “123정이 조류에 밀린 것 같다”고 답한 직후였습니다. 다행히 김동수씨는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김동수씨와 함께 분노했습니다.

정혜숙씨는 “(김동수씨의 극단적인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한다”며 “오히려 참사에 책임이 없고 아이들을 구조하려 했던 민간잠수사들이 청문회에서 증언하며 ‘미안하다’고 하고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고 미안했다”고 말했습니다.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연합뉴스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 |연합뉴스


아들 숨진 모습 공개한 아버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는 청문회 마지막 날 참고인으로 출석해 목포해양경찰청으로부터 건네받은 아들의 수습 당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그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해야 할지 많이 망설였다. 가족분들 중에서도 아이들을 안 본 사람이 있을 것”이라며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는데 저는 아직까지도 가슴에 묻을 수가 없다. 동수를 처음 봤을 때 목포해양경찰청에서 들고 온 사진을 위원님들이 한번 보시고 저희 가족들이 아이들을 묻을 수 있도록 해달라. 끝까지 진실 규명 부탁드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청문회 마지막날인 지난 16일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가 아들의 수습 당시 사진을 공개한 뒤 눈물 흘리고 있다.

청문회 마지막날인 지난 16일 고 정동수 학생의 아버지 정성욱씨가 아들의 수습 당시 사진을 공개한 뒤 눈물 흘리고 있다.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유가족들과 특조위원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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