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진실 못 밝힌 채 졸업시킬 순 없어요”…단원고 ‘눈물의 방학식’

2016.01.10 22:19 입력 2016.01.12 09:13 수정
안산 | 김형규 기자

희생 학생·교사들 대신 유족·시민 참석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호명된 학생을 대신해 자리에 앉아 있던 유가족이 손을 들거나 “네” 하고 대답하며 일어섰다. 왼쪽 가슴에는 학생들의 사진과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교실을 천천히 돌며 한 명 한 명을 꼭 끌어안았다.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눈물 섞인 인사가 나지막이 오갔다.
 
1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에선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62명의 학생과 교사들의 졸업식을 대신한 ‘겨울방학식’이 열렸다. ‘세월호 304 잊지 않을게’ ‘리멤버 0416’ 등 세월호 관련 시민모임이 준비한 행사다.
 
방학식은 오후 4시16분 시작됐다. 단원고 3층 2학년 3반(명예 3학년 3반) 교실에서 이 반 담임이었던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54)가 교탁 앞에 섰다. 김씨는 딸을 대신해 담임 역할을 맡았다. 고 유예은양을 대신해 방학식에 참석한 예은양의 할머니는 김씨가 예은양 이름을 부르자 “우리 예은이 좀 보내주세요.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돼…”라며 오열했다. 3반 학생 26명의 이름이 불리는 동안 교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b>딸 대신 선생님이 된 아버지</b> 세월호 관련 시민모임이 1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위해 연 ‘겨울방학식’에서 참사 당시 2학년 3반 담임이던 고 김초원 교사를 대신해 담임교사로 나선 아버지 김성욱씨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딸 대신 선생님이 된 아버지 세월호 관련 시민모임이 1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들을 위해 연 ‘겨울방학식’에서 참사 당시 2학년 3반 담임이던 고 김초원 교사를 대신해 담임교사로 나선 아버지 김성욱씨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날 겨울방학식에는 전국에서 모인 시민 300여명이 참석했다. 단원고 2~3층에 자리잡은 10개의 교실과 2학년 교무실은 물론 교실 복도까지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학교 1층 입구에 놓인 ‘휴일 방문자 목록’의 이름들은 나이와 성별이 제각각이었다. 방문 목적을 적는 칸에는 ‘애도’, ‘추모’, ‘위로’, ‘잊지 않을게’ 등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지난해 6월부터 경남 진주에서 매월 한 차례 세월호 관련 촛불집회를 열고 있는 이정옥씨(46)는 진주 세월호 모임 회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안산을 찾았다. 이씨는 “오늘 온 사람은 대부분 부모들”이라며 “아이들이 공부하던 곳을 꼭 한번 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평택에 사는 김혜영씨(40)는 11살 딸, 6살 아들과 함께 단원고를 찾았다. 김씨는 “아이들이 어리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왔다. 우리가 함께 언니, 오빠들을 기억해주자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이들도 많았다. 중학교 교사인 구병일씨(35)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유족들께 알려드리고 싶었다”며 이날 방학식 담임교사 역할을 자원했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제자인 임정규씨(29)는 카메라를 들고 단원고를 찾았다. 임씨는 “참사 이후 성금 모금 등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다”며 “오늘 행사 모습을 찍어 페이스북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12일 열릴 예정인 단원고 졸업식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모임인 ‘4·16가족협의회’는 지난 5일 ‘단원고 졸업식을 앞두고 드리는 말씀’을 통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희생자)만 먼저 졸업시킬 수 없다”며 학교에서 제안한 ‘명예졸업식’ 참석을 거부했다. 현재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과 조은화·허다윤양, 양승진·고창석 교사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다.

유족들은 경기도교육청이 단원고 안에 보존된 2학년 교실 10개와 교무실 1개를 학교 밖 추모공간으로 옮기자는 제안도 반대하고 있다. 현재 교실들은 참사의 교훈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4·16교실’ 혹은 ‘기억교실’이라는 이름으로 보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유족들은 “희생자 수습과 진상규명이 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교실을 없애는 것은 세월호 참사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천안에서 온 직장인 이유리씨(25)는 “세월호 참사의 모순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바로 교실인데 왜 이 공간을 없애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학식 마지막 순서로 시민들은 학교 1층 로비에서 마지막으로 종례를 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권지인 ‘리멤버 0416’ 대표는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고 유가족들이 비로소 가족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할 수 있을 때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안산 ‘세월호 참사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해 희생자 영전에 헌화했다.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는 “세월호 문제를 다시 돌아보고 한번 더 기억할 수 있도록 이런 자리를 만들어줘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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