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①노동법 날치기·비정규직법·쌍용차 사건…정권은 바뀌어도 노동권은 ‘제자리걸음’

2017.02.19 22:24 입력 2017.02.19 23:05 수정

노동정책의 역사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노동자들의 외침은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재봉틀을 돌리던 지하 작업장, 영도 조선소의 35m 높이 크레인, 평택 자동차 공장의 지붕을 타고 거리로 흘렀다. 민주화가 절차적 시민권의 일부 성장은 가져왔어도 노동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노동의 권리·복지를 뒤로 미루는 역대 정권의 낮은 ‘노동 정치’ 인식 때문이었다. 여야의 정권교체는 있었어도 노동에 대한 ‘정치의 교체’는 없었다.

■ 민주노조는 분투, 정부는 억압

노태우 정부는 절차적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탄생한 첫 정부임에도 높아진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모태로 1990년 설립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극심하게 억압했다. 대대적인 탄압으로 노조 간부 대부분은 구속되거나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다만 민주화 이후 성장한 노동자 세력의 끊임없는 요구로 주 48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은 44시간으로 감축됐다.

첫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는 억압적 노동 정책의 종말을 기대했던 바람을 배반했다. 세계화 열풍에 휩쓸려 노동자 복지는 뒷전으로 밀렸다. 1995년 창립한 민주노총을 여전히 비합법 조직으로 두고 대화하지 않았다. 1996년엔 사업자의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한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가 민주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노동자 총파업을 불렀다. 정권이 몰락하는 시작이었다. 곧이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사태,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두 정부

김대중 정부는 고용 한파와 함께 문을 열었다. 국외 자본의 고용시장 유연화 요구는 쉬운 해고를 바라던 국내 기업들의 이익과 맞아떨어졌다. 정부는 발맞춰 1998년 파견법을 제정했다. 우체국 집배원 과로사 역시 이 시기 노동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우정 부문 공무원 4000여명을 감축하고,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으로 채웠다. 비정규직인 상시위탁 집배원 3년차인 정길호씨(34·가명)는 주말 근무와 평일 잔업을 합쳐 주 100시간 이상 일한다. 전담하는 집만 4200가구다. 정씨는 “일을 시작하고 한 달 만에 14㎏이 빠졌다. 점심은 10분 내 먹거나 아예 먹지 못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니 조카 돌잔치 같은 가족행사는 참여하지 못했다”고 했다. 정씨의 월급은 기본급 100만원대 초반에 수당을 합쳐 180만원 선이다.

노무현 정부는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0시간까지 감축했다. 노동 악법으로 꼽히던 노조 활동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과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역시 성과로 꼽힌다. 그러나 2007년부터 실시된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근무한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큰 논란을 불렀다. 노동 양극화는 심화됐고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 대우’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 ‘반노동’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는 기업엔 각종 친화책을 펴면서도 노조에는 법치주의를 내세웠다. 쌍용자동차 노조원 진압에서 보여준 강경 대응은 노동 탄압의 서막이었다. 당시 경찰은 노조원들에게 테이저건을 사용했고, 헬기를 통해 최루액을 뿌렸다. 기업은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손해배상청구로 답했다. 한진중공업의 한 노동자는 회사의 거액 손배 요구에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이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첫해 민주노총에 경찰력을 투입했다. 2016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불법·폭력 시위 혐의로 구속됐다.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은 300일 넘는 혼수상태 끝에 사망했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화 이후 가장 ‘반노동’적으로 평가받는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노동 정책에 관한 비판적 고찰’(2014)에서 “대자본의 이해관계에 철저히 복무하며 노동 측에 대해서는 1997년 이후 그 어떤 정권보다도 적대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