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④‘공정’의 이름으로 유권자 입 막는 선거법

2017.03.20 21:14 입력 2017.03.20 21:18 수정

집회·연설 금지…“국정농단 책임자 심판” 외쳐도 제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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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선고가 이뤄진 후 광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6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평화롭게, 민주적으로 목소리를 낸 시민들이 최종적 승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헌재의 탄핵 선고 시점부터 시민들은 ‘책임자 처벌’ ‘탄핵 반대 정당 규탄’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선거 이전 상당기간 특정 후보·정당의 지지 혹은 반대 표현을 제재하는 현행 공직선거법(선거법) 조항 때문이다.

탄핵이 결정된 순간부터 대통령 보궐선거 기간에 들어가기에 이 기간 게시된 표현들은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다(선거법 90조). 또 선거기간 동안 선거 관련 각종 집회·연설 등을 막는 선거법(101조 등)으로부터 촛불집회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선거와 관련된 ‘표현의 자유’보단 ‘공정’을 강조하는 현행 선거법은 ‘유권자의 입을 막는 법’으로 꾸준히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제1공화국 시절부터 금권·부정선거로 몸살을 알아온 탓에 굵직한 선거법 개정 국면마다 표현의 자유 신장보단 ‘매표(買票)’ 행위 등 선거부정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진행돼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항쟁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범시민단체의 낙선·낙천 운동에 대한 불허는 헌재에서 합헌 결정이 났다.

이처럼 선거 기간 중 유권자의 의사 표현을 제한하는 선거법으로 인해 유권자들의 ‘알 권리’는 침해받는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 연대체인 ‘2016총선시민네트워크(2016총선넷)’는 홈페이지에 후보들 프로필과 정책·발언 등을 함께 싣고 ‘베스트 정책 10’ ‘워스트 후보 10’ 등을 선정했다. 이를 주도한 안진걸 총선넷 공동운영위원장 등 22명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총선넷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사회를 위축시키고 정당한 유권자운동에 흠집을 내려는 정치적 수사”라며 검찰의 기소를 비판했다.

당장 오는 4월15일로 예정된 세월호 참사 3주기 집회 때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다. 지난 6일 참여연대 등이 연 선거법 개정 관련 기자회견에 따르면 “국정농단 책임자들, 이번 선거에서 심판하자” “탄핵 반대한 ××당에 투표의 힘을 보여주자” 등의 표현도 과거 선거법 제재 사례를 고려하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거철마다 언론이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을 내고 시민들의 기상천외한 후보 당선·낙선 퍼포먼스가 열리는 미국이나, 독일 같은 외국 사례와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유권자의 표현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선거법을 고치려는 시도는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등은 지난해 6월 유권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지만 해당 법안은 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비례민주주의연대 하승수 대표는 “광장에 모인 목소리로 인해 탄핵이 된 건데, 정작 탄핵되고 나서 광장에서 목소리를 못 내게 된 상황”이라며 “(선거법상)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범위가 너무 넓어, 어느 때보다도 시민에 의한 정치적 흐름이 필요한 시기인데 내가 바라는 정책이나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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