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④인물만 남고 ‘정당’은 없는 정치…비례 중심 선거제로 바꿔야

2017.03.20 21:14 입력 2017.03.20 21:17 수정

선거로 세상이 더 나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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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 정치사에 등장한 정당은 120개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에 ‘정당’은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인물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선거용 정당’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정당의 3요소라 할 ‘당원·담론·정책’은 불완전하거나 없었다.

집권 말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 여당은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다음 선거를 위해 유력 후보를 앞세워 신당을 차린다. 여당의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희석된다. 시민들의 정치 불신과 무관심은 커지고, 정치적 동원은 유력 차기 주자의 ‘팬덤’으로만 존재한다. 선거 때마다 시민의 대리인이 아닌 ‘왕’이 뽑히는 이유다. 결국 시민들은 정당을 외면하고 정당 밖 엘리트에 주목하거나 광장으로 나선다. 대의민주주의의 통로인 정당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 위기다.

■ 극복하지 못한 ‘재벌과 분단’

민주주의는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특정한 의견을 가진 시민들의 집합체로서 정당이 시민 다수의 지지를 얻고자 자유롭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정치체제”(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다. 선거를 통해 주권자는 일정 기간 주권을 위임하고 정당은 시민의 요구를 모아 현실화한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의회로 모아내려면 여러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권위주의 시기에 억압됐던 노동·복지·분배 등 사회적 요구들을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직선제 개헌은 이뤘지만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 국가권력과 결탁한 재벌대기업 중심의 사회경제구조와 남북 분단에 의한 적대적 경쟁체제는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진단했다.

민주화 후에도 ‘재벌이 나라를 먹여살린다’는 지배담론은 권위주의 시절과 똑같았다. 서 교수는 “광범위한 노동권의 보장, 표현 및 결사의 자유 등 정치적 시민권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사회경제적 요구가 정당정치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탓에 이념과 정책에서 차이가 적은 정당들끼리의 권력을 향한 극한 대립만 이어졌다.

정당은 특정 인물에 의해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됐다. 1997년 대선까지 각 당의 대선후보는 총재인 대통령에 의해 지명받거나 총재 자신이 차지했다. 대의원이 후보를 뽑는 공식적인 절차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삼권분립은 무시된 채 집권당은 대통령과 종속적 관계에 놓여 있었다. 정당 지도자는 공천권을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 당원 없는 ‘정당의 정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으로 대선 패배 우려가 커지자 국민선거인단을 도입했다. 대선후보 경선 흥행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꾀한 것이다. 사실상 당을 지배하던 대통령이 이전처럼 후보자를 낙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경선 참여의 문을 여는 획기적 조치였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정당 민주화’ 논리가 배경이었다. 당시 민주당 대선 경선에는 184만명이 참여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무현 후보가 이전까지 당내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인제 후보를 누른 뒤 ‘바람’을 이어가며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었다. 이제 국민참여경선은 대학교수 등 당 밖 인사들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 여론조사와 함께 주요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당연한 방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19대 대선에서 ARS, 모바일, PC 등으로 200만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모집해 당원과 일반 국민이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완전 개방형 국민참여경선을 치른다. 심지어 당직 선거에도 국민참여경선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개혁’ 명목으로 시행된 이 같은 조치들이 ‘당원 없는 정당의 정치’를 낳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이번 대선과 마찬가지로 완전 개방형 국민참여경선으로 진행된 18대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선거인단 중 일반 국민 비율이 88.3%를 차지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정당이 유권자의 요구를 더 잘 대표하고자 국민참여경선을 하는 게 아니라 본선 ‘흥행’을 위해 국민을 동원하는 것”이라며 “정당은 이름만 남은 ‘출마자 관리기구’일 뿐 권위 있는 차기 정부인 곳은 아무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 “비례제로 정당정치 강화”

‘인물만 남고 정당은 없는’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단순다수대표제에 기초한 소선거구제를 벗어나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당의 정책 경쟁이 활성화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비례하기 때문에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이 보다 쉬워져 다양한 사회 갈등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제도가 만능은 아니다. 이부하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적 선거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에서 비례대표제 도입의 선결과제로 “정당 공직후보자 추천의 민주화와 공천 과정의 투명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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