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⑥시민주도 개헌 - 광장의 이상·가치 담아 법 앞에 평등한 ‘사람’으로

2017.03.27 21:58 입력 2017.03.27 21: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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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밝힌 말이다. 지금까지 법은 권력자의 도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헌재의 선고문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촛불 시민’들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헌법 1조2항), 누구라도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휘둘러선 안된다는 헌법에 새겨진 ‘사회적 약속’을 100일 넘는 투쟁을 통해 확인했다. 이제 시민들은 새 사회를 여는 힘은 자신들의 손에 있으며 ‘헌법’이 그 무기임을 자각했다.

■ 탄력받는 ‘시민주도 개헌’

헌법은 사회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를 담아야 하며 ‘힘의 원천’인 시민들의 합의가 토대가 돼야 한다. 그러나 1948년 헌법 제정 후 지금까지 9차례 개정되는 동안 시민은 늘 ‘객체’였다. 개헌은 주로 독재자나 정치인의 권력구조 개편 도구로 이용됐다. 이승만 정권 연장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1954년),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한 7차 헌법개정(유신헌법·1972년) 등 민주화 이전 개헌이 대표적이다.

민주화를 이뤄낸 1987년 개헌에서도 시민은 없었다. 여야 의원으로 구성된 ‘8인 회의’가 4개월 만에 개헌안을 만든 것이다. 대통령 직선제 등 핵심 요구는 포함됐지만, 개헌을 통해 ‘새 사회’를 논의하길 바랐던 시민들의 소망은 좌절됐다.

이 때문에 최근 시민사회에서는 광장의 힘을 정치권이 ‘흡수’해 버린 87년 사례를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단 헌법 자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본부에서 지난해 3월 만든 <손바닥 헌법책>은 촛불 집회 이후 관심이 꾸준히 늘어 현재 15만부 이상 배포된 상태다.

헌법에 대한 시민 인식은 성숙했지만, 정치권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15일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원내대표들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대선일에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기습적으로 합의한 것이 단적이다. 집권이 어려운 정당들이 뭉쳐 ‘계산기’를 두드린 개헌 합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시민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국민은 아무 관심도 없는 정부형태, 권력구조를 고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치인들에 의한,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개헌”(임지봉 서강대 교수)이라는 것이다. 나라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시민이 만드는 헌법운동본부, 대화문화아카데미 등 시민단체는 “그동안 개헌엔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가 없었다”며 개헌특위에 시민참여를 요구했다. 참여연대 역시 대선 후 개헌을 목표로 ‘기본권 강화와 시민참여, 직접 민주주의’에 중점을 둔 개헌안 작성을 준비하고 있다.

■ 국민에서 ‘사람’으로…권리의 확장

‘시민 주도 개헌’에선 정치인들의 관심사인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리 확장’이 논의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화문화아카데미는 2011년 복지와 평등, 생명존중 등을 강조한 ‘새 헌법’을 발표한 바 있다. 새 헌법은 우선 ‘국민’에 한정된 기본권의 주체를 ‘모든 사람’으로 넓혀 잡았다. 국민만 법 앞에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또 사형제 폐지를 명시했고, 차별 금지의 영역을 현행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서 ‘종족, 인종, 연령, 출신 지역, 성적 취향’으로 확대했다. ‘누구도 양심에 반하여 집총병역을 강제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해 양심적 병역거부가 가능하도록 했다.

새 헌법 작성에 참여했던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시민이 국가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생활의 조건이 되길 바라고 새 헌법을 만들었다”며 “국가란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불편을 알아차리고 먼저 다가서는 존재여야 한다”고 새 헌법 정신을 설명했다.

시민 주도 개헌의 방법론으로는 아일랜드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아일랜드에서는 무작위 추첨한 시민 99명과 의장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법적기구로 만들어 새 헌법에 담을 이슈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굳이 외국 사례를 따르지 않더라도 각 당의 지역조직, 각 지역 시민단체, 지방의회가 주축이 돼 개헌에 대한 시민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라도 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정치권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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