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정한 지방자치…법대로는 자치 제한

2017.04.04 22:24 입력 2017.04.04 22:27 수정
권순재 기자

자율 없는 지방자치

조직 개편도 정책 변경도 ‘대통령령’ 안에서만…지자체, 할 수 있는 게 없다

[대선 3대 의제-③지방분권]법이 정한 지방자치…법대로는 자치 제한

경기 시흥시는 지난해 4월 전국 최초로 보건소에 체육행정 등을 통합한 ‘건강도시추진본부’를 신설했다. 보건소 명칭을 건강도시추진본부로 바꿔 진료기능 위주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보건소에 체육진흥과·건강도시과 등 건강 관련 부서를 넣어 시흥시 대표 정책인 ‘건강도시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흥시는 7개월 만에 명칭을 다시 보건소로 바꿨다. 보건소 명칭을 바꿔선 안된다는 행정자치부의 해석 때문이다. 시흥시 관계자는 “시흥시는 보건소의 기능 및 업무가 ‘건강친화적인 지역사회 여건의 조성’이라고 규정한 지역보건법 제11조 제1항 등에 따라 보건소의 기능을 유지한 명칭 변경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며 “행자부는 ‘건강도시추진본부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 보건소가 직속기관이 아닌 하나의 국(본부)으로 승격돼 행정기관 정원에 관한 규정에 어긋난다’고 해석했다”고 밝혔다.

<b>정부에 ‘통제당하는’ 지자체 정책</b> 지난해 서울시가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서울도서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왼쪽 사진). 같은 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정부 입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미취업 청년에게 청년활동지원금(청년수당) 50만원을 지급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기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대해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정부에 ‘통제당하는’ 지자체 정책 지난해 서울시가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서울도서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왼쪽 사진). 같은 날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벽에 정부 입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시는 미취업 청년에게 청년활동지원금(청년수당) 50만원을 지급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기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에 대해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했지만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조직·정원·조례 등을 통제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행정을 펴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스스로 공무원의 정원과 조직을 결정할 권한인 자치조직권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지자체가 행정기구를 만들거나 공무원 정원을 변경하려면 법령의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법 제112조(행정기구와 공무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조례로 정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령인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구와 정원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인구 수에 따라 지자체의 실·국·본부 수 등을 정하고 있다. 인구 120만명 이상 구를 설치한 시는 7~9개의 실·국을 둘 수 있다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구와 정원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실장·국장·본부장 등의 직급 기준과 정원까지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가 조직 인사 등에서 지역별 상황에 맞는 자율성을 발휘할 여지가 부족한 것이다.

신규 복지사업 등도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서울시의 청년활동지원금(청년수당) 지급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미취업 청년 2831명에게 취업활동을 위한 청년수당 5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최대 6개월간 지급하기로 했던 청년수당은 첫 달을 끝으로 중단됐다. 보건복지부가 해당 정책이 청년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는 등 사회보장기본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직권취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협의 및 조정) 제2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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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자율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문제는 자치입법권의 제한이다. 지방의회가 제정한 조례는 법령의 범위를 벗어나선 안된다. 지방자치법 제22조에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단서에는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방의회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법률에서 ‘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벌칙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중앙정부가 사실상 조례의 범위와 실행력을 약화시켜 놓은 셈이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헌법은 지방자치 부활 이전인 1987년에 개정돼 지방자치 관련 조항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한 제117조, ‘지자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한 제118조밖에 없다”며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국가’란 것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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