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출국 소식에 ‘범죄인 인도 협정’ 화제된 까닭은

2017.11.12 08:08 입력 2017.11.12 09:35 수정

2009년 3월2일부터 6일간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9년 3월2일부터 6일간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등 3개국 순방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며 손을 흔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명박 전 대통령(76)이 12일 두바이를 거쳐 바레인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뜻밖에도 ‘바레인은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된 나라인지’가 궁금증으로 떠올랐는데요. 범죄인 인도는 범죄를 저지른 후 외국으로 도주한 사람을 법률에 따라 다시 한국으로 송환하도록 해당 국가에 요청하는 제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연을 목적으로 2박4일간 방문할 예정인 바레인은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맺어진 나라일까요? 범죄인 인도조약으로 피의자를 송환해온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을 두고 범죄인 인도조약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인지도 알아봤습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되어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씨. 연합뉴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후 체포되어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씨. 연합뉴스

■바레인과는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되지 않아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은 나라는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2017년 법무부 자료를 보면 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은 나라는 총 78개국입니다. 호주를 시작으로 캐나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가장 최근 맺은 아랍에미리트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바레인은 이 78개국에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바레인은 인구 140만 정도의 작은 나라로, 페르시아만의 30여개 섬으로 구성된 도서 국가입니다. 만약 한국인 범죄인이 바레인으로 도주하면 ‘범죄인 인도조약’으로는 신병을 인수하기 힘듭니다. 중동의 인근 국가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와는 조약이 체결돼 있네요.

■바레인과도 수사 협조는 가능

30년전인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의 용의자로 지목된 김현희씨는 바레인으로 도주했습니다. KAL기 폭파사건은 대한항공 858기가 1987년 11월29일 미얀마 해역 상공에서 폭파된 사건인데요. 같은 해 12월1일 공항에서 청산가리를 흡입해 자살하려던 김현희씨를 제지한 경위가 바레인 정부의 수사보고서에 실렸습니다. 당시 바레인 정부는 김현희의 청산가리 앰플 음독 및 건강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들은 2004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현희씨 신병 인도에 관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압송일자는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었다. 수사담당자로서 당연히 신속히 신병을 확보해야 했다. 범죄인 인도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바레인과의 협상이 늦어졌고, 실제 신병인도 날짜도 약속된 것보다 하루 늦춰졌다”고 밝혔습니다.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경우, 체결된 경우에 비해 쉽진 않겠지만 수사 협조와 신병 확보도 가능하리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물론 김현희씨의 경우 사안의 중대성이 크게 고려됐으리라 추정됩니다.

정유라씨 체포까지의 과정.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유라씨 체포까지의 과정.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유라·패터슨도 범죄인 인도로 송환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다 하더라도 범죄인을 국내로 송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 5월31일 한국에 들어온 정유라씨가 대표적입니다. 정유라씨는 지난 1월2일 덴마크 현지에서 경찰에 검거됐고 곧이어 한국 법무부가 긴급인도구속 및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유라씨가 이후 덴마크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고 이에 따라 법원이 구금연장을 하며 덴마크 체류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결국 정유라씨는 체포 144일만에 한국에 송환됐습니다. 정유라씨는 서울 청담고와 이화여대 학사·입시 비리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와 범죄수익 은닉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아더 패터슨도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한국에 송환된 사례입니다. 이 경우 사건 시점으로부터 한국 송환까지 16년이 걸렸습니다. 1997년 4월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한국인 대학생이 흉기에 찔려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흉기소지 및 증거인멸 혐의를 받았던 패터슨은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된 뒤,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했습니다.

지난 1997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학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 아더 패터슨이 2015년 9월23일 새벽 사건발생 16년 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패터슨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법무부 직원들에게 끌려 서울구치소로 이송됐다. 이준헌 기자

지난 1997년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학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 아더 패터슨이 2015년 9월23일 새벽 사건발생 16년 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패터슨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법무부 직원들에게 끌려 서울구치소로 이송됐다. 이준헌 기자

이후 한국 수사 당국은 이 사건을 재수사하며 패터슨을 범인으로 좁혔습니다. 한국 법무부는 2009년 미국 법무부에 패터슨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 경찰에 체포돼 범죄인 인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한국 검찰은 2011년 12월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요.

결국 2012년 미국 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했지만, 패터슨은 인신보호 청원에 재심을 거듭해 2015년 9월23일에야 한국에 송환됐습니다. 범죄인 인도를 요청한 시점으로부터는 6년만입니다. 패터슨은 지난 1월25일 징역 20년이 확정됐습니다.

이밖에 ‘이천 공기총 살인사건’ 피의자 김종만(사건 발생 25년만에 일본서 인도), ‘안양 환전소 살인사건’ 피의자 최세용(사건 발생 10년만에 태국서 최종 인도) 등이 범죄인 인도를 통해 한국으로 송환됐습니다.

해외로 도주한 범죄인이 국내로 인도되는 사례는 최근 몇년간 크게 증가했습니다. 법무부가 밝힌 ‘최근 10년간 송환된 해외도주 범죄자 현황’을 보면, 2007년 15명에서 2016년 55명으로 늘었습니다. 2011년 26명을 기점으로 증가세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러시아·그리스 등으로부터 처음으로 범죄인 인도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출국을 금지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바레인 출국 소식에 ‘범죄인 인도조약’이 언급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오전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68)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64)이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통해 정치공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습니다. 앞서 김관진 전 장관은 사이버사 활동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관련 지시를 받았다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김관진 전 장관을 기소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범 피의자’로 확정할지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게될 지, 피의자가 될지 등은 아직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바레인 출국 일정이 알려진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됐고, 11일 하루만에 3만명 이상이 동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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