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시재생, 재개발과 다른 게 뭐죠?”

2019.01.01 21:38 입력 2019.01.01 22:24 수정

문래동·해방촌 사업지 되자 임대료 오르고 예술가 쫓겨나

“건물주가 하는 일 서울시가 세금 들여 대신 해주는 셈” 비판

김순미 작가가 ‘숲은 살아있다- 쫓겨나는 이웃, 사라지는 마을 멈춰! 젠트리피케이션’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김순미 작가가 ‘숲은 살아있다- 쫓겨나는 이웃, 사라지는 마을 멈춰! 젠트리피케이션’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찬호 기자

서울 영등포구 ‘문래창작촌’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ㄱ씨는 2016년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했다. 주민 참여를 표방한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ㄱ씨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발제하며 도시재생 사업을 도왔다. 2년이 지난 지금 ㄱ씨는 “서울시에서 하는 도시재생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문래동은 도시재생 사업지가 되면서 집값·임대료가 올랐고, 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쫓겨나게 됐다. ㄱ씨는 이 과정을 ‘도시재생 사업→기획부동산 유입→지가상승→새 건물주 등장→임대료 상승→젠트리피케이션’으로 도식화했다. ㄱ씨도 이 순서에 따라 쫓겨났다.

2014년부터 문래창작촌에서 공방 ‘숲’을 운영해 온 김순미 작가 사정도 비슷하다. 김 작가는 19일까지 건물을 비워야 한다. 김 작가는 폐공장을 2000만원을 들여 수리해 공방으로 만들었지만 건물주는 ‘권리금’을 포기하라고 했다. “갈등을 만들어 세입자를 쫓아낸다. 최근 문래창작촌을 떠나는 예술가가 많다”고 했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을 비판하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예술가들은 도시재생의 ‘개발방향’도 비판한다. 서울시는 문래동 공공부지에 ‘제2세종문화회관’이라 불리는 1000석 규모의 콘서트홀 설립을 추진 중이다. 공방 중심의 문래창작촌 예술가들이 콘서트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들은 “도시재생 사업은 결국 ‘토목공사’였다”고 말했다.

용산구 ‘해방촌’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4년부터 해방촌 신흥시장 일대에서 미술 작업을 했던 작가 이륙은 2016년 성북동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2015년 무렵 집값이 급속히 오르더니 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한 연예인이 이 작가의 작업실 앞집을 샀고, 이 집에서 작업실이 보인다는 이유로 작업실마저 전세를 얻으면서 이 작가는 해방촌을 나가게 됐다.

서울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활동가 ㄴ씨는 “‘핫’해지는 공간은 어김없이 도시재생 사업지가 된다”며 “가만히 놔둬도 변화가 생길 지역인데 세금 수백억원을 들여 개선하고 있다. 건물주들이 할 일을 서울시가 대신해주는 셈”이라고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한 생활경제연구소 구본기 소장도 “도시재생 사업지역을 보면 급격한 임대료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어김없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 문제를 알고 있다. 시는 건물주들과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내용의 상생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상생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임대료 문제는 상생협약을 맺고 건물주들이 올리지 않게 유도하는 게 최선”이라면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려는 것이 재산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해 11월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도시재생은 일방적으로 추진된 재개발의 반성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정책”이라고 차별화했다. 하지만 구 소장은 “적어도 재개발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반성·차별화라 할 수 있다”며 “한꺼번에 쫓아내면 ‘재개발’, 한 명씩 쫓아내면 ‘도시재생’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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