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틴맘’과 ‘복학왕’ 논란···‘표현의 자유’가 아닌 ‘표현의 한계’

2019.05.18 06:00 입력 2019.05.18 11:18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임신한 10대·청각장애 여성을 정형화한 웹툰 ‘틴맘’과 ‘복학왕’

웹툰 <틴맘>

웹툰 <틴맘>

네이버는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지난 5월4일 네이버 웹툰은 10대 임신을 다룬 태국 웹툰 <틴맘>을 공개했다가 1화부터 독자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라는, 여성 당사자들에게 매우 민감한 이슈를 다루지만, 정작 주인공의 신체는 남성 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섹슈얼하게 대상화됐다. 남자 친구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주인공 혼자 임신 문제를 책임지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임신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강화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네이버 측은 전자의 문제에 대해 장면을 수정했고, 후자에 대해선 “주인공의 주체적인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이례적으로 1화 공개 일주일 뒤 2~4화를 한꺼번에 공개했다. 1화에 대한 비판이 작품 일부만 보고 내린 지엽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4화까지 본 지금 더더욱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틴맘>을 어떤 의미로든 자신의 임신과 출산을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로 볼 수 없으며 네이버는 비판의 핵심이 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한 주인공
‘스스로 해결해야…내 일이니까’
해맑게 직진, 이게 주체적인 걸까
혀 짧은 소리 내는 청각장애인
현실을 너무 폭력적으로 그려내

<틴맘> 1화에서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한 윤하늘은 ‘스스로 해결해야 해. 내 일이니까’라고 독백한다. 이것이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일까. 2화 초반 임신 7주에서 3일째 정도 된 그가 걱정하는 것은 ‘동네에서 산전 검사 받으면 친척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즉 임신에 대한 그의 고민이란 출산이라는 선택지를 기본값으로 놓은 상태에서의 고민이다.

과거, 역시 10대 임신이란 소재를 다뤘던 다음 웹툰 <아이가 필요해> 역시 아이의 생명에 대한 산모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한계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주인공 시윤은 작품 내내 자신이 아이를 낳는 게 좋을지 낳으면 사랑할 자신이 있을지 고민하고 그 숙고 끝에 출산을 결심한다. 주체적 선택이란 하나의 선택지를 의심 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틴맘>의 하늘은 3화에선 “무섭지만 제 선택이니까”, 4화에선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이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이나 독백을 할 뿐, 정작 그 ‘많은 고민’의 구체적 과정은 조금도 그려내지 않는다. 그러니 <틴맘>에 대한 여성 독자들의 비판과 별점 깎기에 대해 ‘이것이야말로 여성들이 말하던 Girls can do anything인데 왜 불편해하느냐’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댓글들(아마도 남성 독자들이 썼을 확률이 매우 높은)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지적이다. 말 그대로 ‘Girls can do anything’이 되기 위해선 임신 중지 역시 얼마든지 가능한 선택지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길을 상상하지 못하는 주체적 선택이란 허구적 개념일 뿐이다. 사회적 통념에 의해 임신 중지라는 한쪽 선택지가 억압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 이곳 2019년 5월 한국에 해당 작품을 굳이 들여와 한국 이름과 배경으로 현지화하는 네이버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지난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바 있다. 이제야 비로소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에 있어 여성이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할 권리, 그리고 그 각각의 선택에 대한 사회적 조력의 문제에 대해 논의할 최소한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동시대적 맥락 안에서 <틴맘>에서 그려지는 마냥 해맑게 출산을 향해 직진하는 여성 주인공의 모습은 다분히 반동적이다. 3, 4화에 하늘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타투이스트 제인, 간호사 새롬의 모습 역시 그래서 여성 간 연대로 보기 어렵다. 그들은 여성 캐릭터로 형상화됐지만 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구체적 고민을 나누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시선 안에서 하늘은 마냥 무해하고 해맑고 귀여운 이미지로 소비될 뿐이다. 이 관점 안에서 임신은 다분히 ‘모에’화된다. 즉 1화에서 제기됐던 성애적인 이미지는 어느 정도 수정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틴맘>은 10대 여성 혹은 여체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소비하며, 이에 대한 알리바이를 위해 다른 여성 어른 캐릭터의 시선으로 우회한 것뿐이다. 이것은 주체적 여성들의 연대라기보다는 남성들이 상상하는 무해하고 보기 좋은 여성 이미지를 조합한 것일 뿐이다. 심지어 주인공의 임신은 캐릭터의 귀여움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이용된다. 이것은 옳고 그르기 이전에 얄팍하며, 얄팍하기 때문에 결국 그르다.

전혀 다른 장르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틴맘> 논란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불거진 네이버 웹툰 <복학왕>의 여성 청각장애인 묘사 문제를 함께 연결해 볼 필요가 있는 건 그래서다. <복학왕> 최근 에피소드에서 청각장애인 여성이 소위 ‘혀 짧은’ 소리로 말하고 심지어 독백하는 장면이 문제가 되었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한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청각장애인 희화화로 논란이 된 웹툰 <복학왕>의 해당 장면. 이후 작가는 수정본을 게재했다.

청각장애인 희화화로 논란이 된 웹툰 <복학왕>의 해당 장면. 이후 작가는 수정본을 게재했다.

플랫폼으로서 네이버의 당연한 책임과 별개로, 여기엔 서로 다른 장르를 가로지르는 공통의 문제가 있다. <틴맘>이 그림체부터 내용까지 어린 여성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로 점철된 작품이라면, <복학왕>은 거친 그림체로 역시 거친 현실에 대한 핍진한 묘사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임신한 10대 여성과 청각장애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선 놀라울 정도로 납작하고 정형화된 형태로 구현한다. 전자가 여성에 대한 ‘모에’화라는 장르적 문법을 주제와 상관없이 무비판적으로 활용한다면, 후자는 현실에 대한 묘사라는 미명 아래 약자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반성 없는 관습은, 그리고 반성 없는 현실 인식은 결국 기득권의 관점만을 남겨 놓는다. 네이버 웹툰 최고 인기작인 <외모지상주의>가 과거 지방 학생을 희화화해서 비판 받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상력의 자리엔 욕망·편견뿐
표현의 자유가 정말 필요한 땐
사회적 통념·부당함·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노력할 때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웹툰 ‘틴맘’과 ‘복학왕’ 논란···‘표현의 자유’가 아닌 ‘표현의 한계’

표현의 자유라는 당위로 <틴맘>과 <복학왕>을 옹호하는 것이 틀린 건 아니지만 궁색한 건 그래서다. 왜 우리는 유독 창작물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가. 적어도 창작 영역에서는 사회의 통념에 도전하기 위해서,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해서, 상상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틴맘>과 <복학왕>에서 여성과 약자를 납작하게 그려낸 남성 기득권의 시선 어디에 도전이 있고 상상이 있고 발칙함이 있는가. 당장 사회 곳곳과 뉴스 사회면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남성들의 욕망과 약자에 대한 편견이,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까지 지켜내야 할 창작의 고유 영역일까. 우리가 기대하던 만화적 상상력이란 것이 이토록 보잘것없는 건 아닐 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헬레나의 음모와 그에 맞서는 카산드라의 지략 대결로 그려낸 <카산드라>, <심청전>의 심청과 장 승상 부인의 관계를 여성 연대적이면서 섹슈얼한 관계로 상상해낸 <그녀의 심청> 등과 비교해 보라. <틴맘>과 <복학왕>의 그 ‘표현’이란 얼마나 빈약한가. 반성적 성찰은 창작의 영역을 협소하게 하기보단 오히려 더 넓고 풍부하게 만든다. 하여 이것은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부디 네이버가 그건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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