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한 ‘여성의 자존감 상승’은 사회적 공정성을 높인다

2019.06.01 06:00 입력 2019.06.01 06:01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영화 ‘걸캅스’ 손익분기점 돌파 의의

지난 5월27일 관객 15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 <걸캅스>의 흥행은 <걸캅스> 개별 작품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앞으로 올 여성 서사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하는 여성 관객들의 지지도 큰 의미를 갖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5월27일 관객 15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 <걸캅스>의 흥행은 <걸캅스> 개별 작품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앞으로 올 여성 서사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하는 여성 관객들의 지지도 큰 의미를 갖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걸캅스>가 지난 5월27일, 관객 15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영화 개봉 전부터 벌어진 포털 영화 코너에서의 별점 테러, 작품성 비하, ‘영혼 보내기’에 대한 비난 등을 극복하고 이룬 성취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번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 없던 180만명을 기준 삼아 영화가 실제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고 주장하거나(현실 부정형), 그렇게 여성 관객들이 열심히 홍보하고 밀어줬음에도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 자체가 여성 서사의 시장성 부족을 증명한다거나(폄하형), 소위 ‘영혼 보내기’로 만들어낸 손익분기점 돌파는 불공정 행위라고 비판하는(침소봉대형) 일부 남성들의 목소리가 잡음처럼 끼어들고 있다.

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자신의 주요 부위를 자르겠다고 호언장담한 이가 있을 정도로, 어떤 이들은 마치 <걸캅스>의 성공 가능성이 자신들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도 되는 듯 행동한다. 아마도 이것은 지난 <캡틴 마블> 개봉 당시에도 벌어졌던, 여성 서사라는 이름으로 총칭될 작품들에 대한 남성 관객들의 성차별적인 태도에 기인할 것이다.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던 영화
그러나, 150만 관객을 넘겼다
여성 관객들은 크게 만족했다

여성 서사, 더 많이 필요하지만
남성 중심 서사에 막혀있다

상영관엔 못 가나 예매했던
‘영혼 보내기’를 되새겨 보자

문화를 시장 논리로 보지 말자
그래야 다양한 영화가 나온다

즉 그 근거 없는 거부감 자체에 이미 여성혐오적인 맥락이 깔려 있다. 이번엔 그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다. <캡틴 마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딱히 그들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보단 <걸캅스>의 150만 관객 성취가 왜 대단하고 중요한지, 그리고 시장 안에서 이런 영화들의 비율이 보장되는 게 왜 정당한 것인지 이야기하겠다.

1. 왜 시장 안에서 <걸캅스> 같은 여성 서사가 필요한가

이미 150만명이 넘는 관객의 높은 호응 속에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에 대해 그 필요를 논증하는 건 선후가 뒤바뀐 일 같기도 하다. 해당 소비자들, 특히 여성 관객들이 크게 만족했다는 것이 이미 이 작품의 존재 이유 상당 부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여성 관객들에 대한 임파워먼트(empowerment) 제공이 왜 사회 전체적 관점에서도 정당화되는지 부연하겠다. 거칠게 요약해 자존감은 사회적 기본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주관적인 ‘기분’의 영역이 아니다.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완전히 협력적인 사회 구성원인 시민으로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으로서의 기본재 중 하나로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들”을 말한다. 이것은 시민들이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가령 영화 속 어린 조지혜(이레)는 박미영(라미란)의 활약을 보고 자신도 경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최근 대림동 취객 사건에서의 여성 경찰 대응에 대한 보도와 남성들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사회에서 여성 경찰의 행동은 너무 쉽게 미숙한 것으로 해석되고 그것이 여성이라는 성별 전체의 문제로 규정된다(물론 경찰 외 직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차별적 문화는 단순히 ‘기분’의 차원을 넘어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고 그 선택에 대한 자기 존중을 가질 기반을 제거한다. 즉 기본재가 차별적으로 배분된다. 그렇다면 여성 경찰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걸캅스>의 서사와 이를 통한 자존감 상승은, 단순히 여성들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공정의 수준을 좀 더 높이는 것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

[위근우의 리플레이]영화를 통한 ‘여성의 자존감 상승’은 사회적 공정성을 높인다

2. <걸캅스>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왜 중요한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자존감을 높일 문화적 기반으로서 여성 서사는 더 많이 필요하다. 문제는 시장에서 그것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 서사는 종종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내도 남성 주인공의 문제로 이야기되지 않지만 여성 서사는 수익이 안 나는 즉시 여성의 문제로 치환된다. 궁극적으론 이런 차별적 기준 자체를 바꿔야겠지만, 이러한 기준 안에서 <걸캅스>의 흥행은 <걸캅스> 개별 작품만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수많은 여성 관객들은 해당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도 소비하지만, 또한 앞으로도 여성 주인공이 주도하는 액션 코미디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도 소비한다.

<미쓰백>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걸캅스>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앞으로 올 여성 서사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을 기대하며.

영화관에 가지 못하는 대신 좌석을 예매해 논란이 됐던 ‘영혼 보내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내야 한다. 시장 공정성을 교란할 정도로 ‘영혼’이 집계 관객 수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혼 보내기’는 유독 여성 서사 및 비블록버스터에 엄혹한 시장에서, 해당 장르의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소비력을 입증하고 관람을 독려하고 작품에 대한 호응을 가시화하는 소비자 연대 운동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1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성 서사의 향유를 평등한 시민의 문화적 권리로 인정한다면, <걸캅스> 손익분기점 돌파와 ‘영혼 보내기’ 운동은 그 권리를 관객들이 스스로 획득하려 한 행동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3. 돈 버는 게 목적인 영화 시장에서 왜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하는가

역시 얼마 전 손익분기점을 넘긴 <나의 특별한 형제>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장에 나온 영화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스크린상한제의 당위를 역설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 대한 포털 베스트 댓글에선 ‘한국 영화 좌석 점유율이 20%에 불과한데 극장은 땅 파서 장사하냐’ ‘마블이 강압적으로 보라고 해서 흥행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시장 경쟁력이 부족한 작품은 밀려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가 주를 이뤘다. 이러한 논리 아래선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해도 굳이 여성 서사를 또 제작하기보단 1000만 관객이 예상되는 작품을 만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를 오직 시장 논리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당연한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바로 그 시장이 왜곡되지 않기 위해서도 다양성은 필요하다.

당장 한 영화가 스크린을 독과점한다면, 나머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 관람할 자유가 크게 제한된다. 한 영화를 보기 위해 투입해야 할 시간적·정신적 자원이 다른 영화를 볼 때보다 커진다면 그것은 공정한 시장이라 보기 어렵다. 원하는 걸 보는 게 제한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그러하며, 그 때문에 수익에서의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작품 입장에서도 그렇다. 영화를 상품으로만 본다 해도, 소비자는 더 나은 상품보단 접근하기 편한 상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 쉽다. <걸캅스>나 <나의 특별한 형제>에 충분한 관이 보장된다면 1000만 관객이 들 수 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해당 작품들이 좀 더 많은 관을 보장받고 더 나은 스코어를 기록한다고 해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지 못하거나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관객들이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영화관으로 달려갈 때 <걸캅스>의 관객들은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가는 걸 걱정하며 달려가는 게 현실이다. 자칫 소비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다(위에서 말한 ‘영혼 보내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한 번 더 정당화된다). 스크린상한제를 통한 작품의 다양성 보장은 시장의 왜곡 없는 작동을 위해서도 요구되어야 한다. <걸캅스>와 <나의 특별한 형제> 같은 작품이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또 반대로 이런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도 다시 시도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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