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누구에게나 7%의 확률로 터진다는 ‘폭탄’이 내게 터졌다

2019.11.15 16:40 입력 2019.11.15 22:04 수정
이대한

이대한의 ‘연구실 가는 길’

이곳 에번스턴에 첫눈이 내리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첫 주말, 갑작스러운 맹장염으로 응급 수술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일주일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곳 에번스턴에 첫눈이 내리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첫 주말, 갑작스러운 맹장염으로 응급 수술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일주일을 보내며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가족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아파왔고
자정 무렵 오한이 들어 깨었다

11월의 첫 번째 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식사 시간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콕콕 쑤시며 아프기 시작했다. 꽤 강렬한 복통이어서 순간적으로 ‘맹장염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통증은 오른쪽 아랫배가 아닌 명치 부근에서 느껴졌다. 일반적인 소화불량이라는 짐작으로 급체 때 요긴하게 효과를 보았던 양배추 환을 한 알 먹고, 뜨끈하게 데운 찜질기 위에 배를 깔고 누워 고통을 달래 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었다.

자정 무렵 갑자기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한 오한이 들고 복통의 강도도 훨씬 강해져 있었다. 강도뿐만 아니라 통증이 느껴지는 위치도 달라져 있었다. 잠들기 전에는 전혀 통증이 없던 오른쪽 아랫배로 통증이 옮겨가 있었다. 맹장염(정확하게는 급성 충수돌기염) 증상에 대해 알고 있던 아내의 지시를 따라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내렸더니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통증의 진전부터 오한까지, 맹장염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맹장염을 방치했다가는 충수돌기가 터져 복막염으로 번지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익히 들어왔던지라 빨리 응급실을 방문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문제는 어떻게 응급실을 갈 것인가였다. 스스로 운전을 할 만한 상태는 아니었고, 갓 돌이 지난 아이를 홀로 두고 아내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친구의 차로 응급실행
응급실은 너무 평온하기만 했다
다만, 구급차로 온 환자가 우선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또 너무 늦은 한밤중이었다. 결국 우버를 불러서 가겠다고 하자, 아내가 친구 지해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지해는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다행히도 지해가 연락을 받았고, 정말 고맙게도 흔쾌히 차를 갖고 집 앞으로 바로 와주겠다고 했다. 급한 대로 휴대폰 충전기만 챙겨 밖으로 나오니 지해뿐만 아니라 지해의 아내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의 차를 타고 도착한 응급실 대기실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대기 중인 사람들이 몇 되지 않았고, 다들 조용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였다. 나도 그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접수를 하고 얌전하게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고맙고 미안하게도 한밤중에 달려나와 준 친구 내외도 대기실을 떠나지 않고 함께 머물러주었다.

대기 환자가 별로 없기에 금방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30분이 훌쩍 지나도록 대기실 내 누구도 호출되지 않았다.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대기실의 공기 속에서 통증은 점점 더 분명해져만 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접수대의 직원에게 언제쯤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얼마 전 구급차가 들어와 응급팀이 모두 그 상황을 처리 중인 것 같다”면서 “만약 진료를 진행하더라도 접수순이 아니라 상태의 심각성에 따라 진료를 받게 될 것”이라는 차가운 답변만 돌아왔다.

자리로 돌아와 ‘심각한 상황일 땐 무조건 구급차를 타고 와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고, 주변을 훑어보며 ‘나는 이 중에서 몇 번째로 심각할까’ 하는 추정도 해보는 와중에 다행히 내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다. 간호사의 간단한 문진이 끝나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또 10여분을 더 기다리니 드디어 응급실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병원에 도착한 지 거의 한 시간 만에 들어선 응급실은 넓고 쾌적하고 평화로웠다. 나를 제외하곤 응급환자는 보이지 않았고, 의료진도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할 일을 하거나 평온한 표정과 걸음걸이로 복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폐에 구멍이 생겨 응급수술을 받고 밤을 새운, 아비규환 그 자체였던 서울의 응급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일단 응급실 내부로 들어오고 나니 느리지만 순조롭게 절차들이 진행됐다. 먼저 응급실 병실을 배정받아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침상과 침상이 커튼으로 구분되는 한국의 응급실과 달리 커다란 응급실 안에 여러 개의 개인 병실들이 있었고, 나는 1인실과 다름없는 병실 한 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얼마 후 간호사가 소변과 혈액 샘플을 채취해갔고, 처음으로 의사에게 진찰도 받았다. 곧이어 방사선 검사실에서 복부 컴퓨터단층촬영(CT)까지 완료했다.

검사 결과는 예감대로 ‘맹장염’
집도의가 바뀔 뻔했으나,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하루 만에 귀가 후 1주일 ‘안정’

한 시간 정도 지나 오늘 당직을 맡은 수술 의사 ‘Dr. X’가 들어와 CT 결과를 설명해주었다. 맹장염이 맞고, 다행히 초기라서 어렵지 않은 수술이 될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응급환자가 많지 않아 새벽 4시 정도에 수술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일정도 통보해주었다.

맹장염 확진을 받고 수술을 두어 시간 앞둔 채로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평범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홀로 병실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니. 미국에서의 지난 3년여 동안 한 번도 아파서 병원을 찾은 적이 없는데, 갑자기 응급실에 오게 되고 수술까지 받게 되다니. 인간은 삶을 계획하려 하지만, 짓궂은 인생은 수많은 변수들로 그 계획을 훼방 놓기 일쑤구나.

한편으론 마음 한 구석에서 불안과 공포가 자꾸만 올라왔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을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팔로잉하던 한 트위터리안이 미국에서 맹장 수술을 받으러 들어간다는 트윗을 남기고, 다음날 그의 딸이 그의 부고를 올린 일이 있었다. 당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후로 올라온 트윗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사건 이후로 맹장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맹장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참고로 미국에서 1년에 의료 과실로 사망하는 사람이 무려 25만명에 달하며, 이는 심혈관 질환과 암에 이은 세 번째 사망원인에 해당할 정도라는 논문이 2016년 발표되기도 했다).

수술 시간이 임박하여 수술 대기실로 내려갔을 때, 나의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의료진이 나에게 “Dr. Y에게 수술받는 것 맞죠?”라고 확인을 받으려 했는데, ‘Dr. Y’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이름은 ‘Dr. X’였기에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집도의가 바뀐 것 같으며 다시 수술 동의 서류에 사인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필이면 이날은 서머타임(daylight saving time)이 끝나면서 새벽 동안 시간이 한 시간 거꾸로 흐르는 날이었는데, 아마 그 탓에 혼선이 생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얼마 뒤 ‘Dr. X’가 아닌 ‘Dr. Y’가 수술 대기실로 들어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웠던 ‘Dr. X’에 비해 ‘Dr. Y’는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근거 없는 첫인상일 뿐이었고, 나는 그저 집도의가 바뀐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의료진이 부산스러워졌다.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더니 얼마 후 믿음직한 ‘Dr. X’가 수술 대기실로 들어왔다. 다행히도 다시 집도의가 원래 계획대로 ‘Dr. X’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평정심을 되찾은 나는 곧이어 수술실로 실려갔고, 그곳에서 기억을 잃었다.

마취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무사히 병실에 누워 있었다. 수술이 잘 끝난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허락한 딱 만 하루 동안 몸을 추스른 후 퇴원을 했고, 의사의 권고대로 연구실에 1주일 동안 병가를 내고 휴식을 취했다.

발병 확률이 7%라는 맹장염
그래도 불운한 시간대는 피했다
도움받을 친구도 있었고
응급실은 한가했고
좋은 의사에 보험도 있었다

어차피 행운과 불운이 겹친다면
행운에 불운이 겹치기보다는
불운 중 행운이 많았으면 한다

그러고 보면 맹장염은 참 묘한 질환이다. 발병 확률이 7% 정도로 상당히 높다. 일단 발병하면 현재로선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발병 후 신속하게 수술하지 않으면 복막염으로 번져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7% 확률로 터지는 충수라는 폭탄을 몸에 심은 채로 태어난다. 폭탄이 터지면 통증과 수술과 회복을 차례로 거치는 1주일 동안 미리 계획한 삶은 초토화된다. 그 폭탄이 터질지 안 터질지, 언제 터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친구의 지인은 수능 전날 그 폭탄이 터져 재수를 했다고 한다. 이 세상 어딘가엔 그 폭탄이 자신의 결혼식, 혹은 가족의 장례식 전에 터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구름 위에서 혹은 바다 위에서 터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게 심어진 폭탄은 불운하게도 7%의 확률을 뚫고 끝내 터지고 말았지만, 다행히도 불운한 시기에 터지진 않았다. 게다가 불운 중에도 도와줄 친구가 있었고, 마침 응급실이 한가했고,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보험이 있었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무사히 응급 상황을 지나왔다. 어차피 인생이 통제할 수 없는 불운과 행운으로 뒤범벅되어 있다면, 행운에 불운이 겹치기보다는 불운에 행운이 겹치는 일이, 행운에 불운이 뒤따르기보다는 불운에 행운이 뒤따르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맹장염 수술처럼.

▶필자 이대한

[다른 삶]토요일 저녁, 누구에게나 7%의 확률로 터진다는 ‘폭탄’이 내게 터졌다


벌레 유전학자. 예쁜꼬마선충(노벨상도 여럿 배출한, 이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벌레다)이라는 작은 벌레를 연구하며 청춘과 박사학위를 맞바꿨다. 연구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은 청년이었지만, 박사가 되었음에도 생명과 생물학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박사후연구원(포닥) 생활을 시작했다. 태평양 건너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에서 여전히 벌레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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