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영국의 육아·교육법은 ‘하늘과 땅’…부모 고생은 ‘도토리 키재기’

2019.11.08 16:26 입력 2019.11.08 16:32 수정
오지영

오지영의 ‘영국 시골살이’

영국도 가을이 완연하다. 굳이 산행이나 단풍놀이를 가지 않아도 사는 곳이 시골이다 보니 오고 가는 길목에서 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비가 왔다 갔다, 해도 떴다 숨었다 변덕인 이 날씨 덕에 한껏 무르익은 단풍 숲 위로 무지개도 자주 떠오른다. 가을 서리와 안개가 내려앉은 이른 아침에는 초원에서 노니는 말과 양들이 더 신비로워 보이고, 하늘을 가르며 떼 지어 이동하는 철새들의 모습에도 한동안 시선을 뺏기기 일쑤다.

매일 아이들과 걷는 학교 길목에도 가을이 왔다. 유난히 참나무가 많아서인지 바람 부는 날에는 도토리 낙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요란하다.

매일 아이들과 걷는 학교 길목에도 가을이 왔다. 유난히 참나무가 많아서인지 바람 부는 날에는 도토리 낙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요란하다.

아이들의 학교에 무심하게 서 있는 700년 된 고목과 학교 골목 아름드리나무들을 대하는 태도도 이 계절에는 달라진다. 곱게 물든 단풍잎 사이에서 너도나도 하강질주하는 도토리 녀석들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유난스러운 날에는 그 탄탄한 ‘도토리 폭격기’에 뇌진탕 우려까지 몰려와 신경은 쫑긋, 손 우산까지 자동으로 받쳐 들게 된다.

애꿎은 가을 도토리 덕에 잊고 살던 그 맛도 떠오른다. 단풍 산행길에 먹으면 가히 부러울 것 없는 그 맛. 바로 도토리묵이다. 상상만으로도 새콤달콤 양념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하지만 도토리묵은 ‘식성은 한국인’이라 웬만한 한국 음식은 다 섭렵한 신랑 조(Joe)에게 의외의 복병 같은 음식이기도 했다. 별수 없이 마주해야 할 때마다 조는 “인간 세상에서 한국인과 마오리족만 도토리를 먹는 거 아니냐?”며 갑자기 외국인 모드로 바뀌곤 했다.

젖병 세척도 분유 타기 방법도
엄청난 차이에 눈이 휘둥그레
걷기 시작하면 절대로 업지 않는데
조카들은 별 탈 없이 잘 크고
성격도 온화하며 체력도 좋아

진흙·풀밭 뒹구는 건 자연스럽고
저녁 7시면 아이들은 자기 방에
그렇지 못한 내가 유별나 보여

그렇다고 그들이 방관자는 아니고
체력과 정신 아껴 아이들과 소통
학교 행사에도 나름대로 적극적
결국 부모는 시공간 초월해 비슷

이 무수히도 많고 실한 열매를 여기서는 정말 아무짝에도 쓰지 않나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의 단짝인 벨라 엄마에게 물어보니 도토리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란다. 도토리의 타닌 성분이 말과 소, 개에게 독이 될 수 있어 가을마다 재빨리 처치해야 할 골칫덩어리라고 오히려 타박이다. 우리에겐 다이어트, 노화방지,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진 착한 먹거리라고 말하니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휘둥그레진다.

도토리 하나 가지고도 이렇게 다른 세상인데 부모의 양육법이 다른 건 어쩌면 당연지사. 나의 작은 눈마저도 휘둥그레지게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7년 전, 한국에서 출산한 8개월 된 첫째 아이를 데리고 성탄절 연휴에 영국 시댁을 방문했을 때다. 조의 형네도 2개월 된 쌍둥이 딸들을 데려왔다. 그 며칠 동안 한 지붕 아래서 나는 색다른 육아 세상을 목격하고 말았다.

동네 놀이터도 도토리 천지다. 첫째 아이는 새싹을 틔우겠다며 도토리를 땅에 묻고, 둘째 아이는 묵직한 알맹이 굴리는 손맛이 좋은지 주머니에 챙겨 넣느라 바쁘다.

동네 놀이터도 도토리 천지다. 첫째 아이는 새싹을 틔우겠다며 도토리를 땅에 묻고, 둘째 아이는 묵직한 알맹이 굴리는 손맛이 좋은지 주머니에 챙겨 넣느라 바쁘다.

일단 젖병 씻기부터 차원이 달랐다. 우리는 젖병세제로 씻어 헹구고 그래도 찜찜하면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건조해서 쓰는 데 반해, 조의 형네는 분말가루 세제를 정량의 물에 희석시킨 통에 더러워진 젖병을 몇 시간 담가 두었다가 그대로 건조시켜 사용한다. 이 세제물 통에는 공갈젖꼭지나 치발기, 장난감 등 세척이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들어간다. 그냥 물로 씻는 것은 오히려 완전 소독에 방해가 된다고 육아수업에서 배웠단다. 지켜보고 있자니 위생상으로는 잘 모르겠고, 편한 것만큼은 신세계급이다. 하루 분유를 5회 이상 먹는 신생아 쌍둥이들이니 일일 합이 10번 이상의 젖병 속 돌려닦기 수고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다음은 분유 타기. 우리는 젖병을 위아래로 세게 흔들면 공기방울이 생겨 아이가 배앓이를 할 수 있다고 하여 좌우로 비비듯 돌려 천천히 분유를 녹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조의 형네는 셰이크 만들 듯 쫙쫙 흔들어서 탄 분유를 먹였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배앓이 얘길 꺼냈더니 금시초문이라는 반응.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가이드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실제로 분유통의 설명서에도 “잘 흔들어 섞어줘라(Give the bottle a good shake)”라고 쓰여 있느니 더 할 말 있겠는가.

그들은 신생아 방의 실내 온도가 섭씨 20도가 넘어가면 매서운 겨울바람이 들어오는 창문도 과감히 열어 젖혔다. 아무래도 못 미더워서 NHS 가이드를 찾아보니 가장 이상적인 실내 온도는 19도란다. 신생아 돌연사 원인 중 하나가 높은 온도라며 한겨울에도 애가 아프거나 열이 있으면 옷을 더 입히지 말라고 명시되어 있기까지 했다. 그 밖에 쌍둥이를 기른 육아 고수 친구에게 전수받았다는 기저귀 교체법은 ‘쌌을 때’가 아닌 규칙적인 시간 간격에 가는 것이고, 아기 배꼽시계보다는 정해 둔 알람시계를 우선시해서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말랐는지 젖었는지 기저귀 들춰보는 수고는 없고 아기가 행여 배고프진 않은지 살피지 않게 된다. 신생아 때부터 따로 재우는 수면훈련을 시키기에 아이가 밤중에 울어도 웬만하면 다독여주지 않는다.

‘저렇게 키우다 혹여 애들이 아프거나 성격이 괴팍해지지 않을까’ 내심 염려스러웠다. 조금이라도 달리하면 큰일 날 것처럼 겁주는 온갖 인터넷 정보와 육아 선배들 조언에 노심초사 육아를 하던 시절의 나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그 쌍둥이 조카들은 별 탈 없이 초등학생이 되었고 둘 다 성격 온화하고 체력도 좋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절대 업어주는 법이 없는 부모 따라 산책하고 조깅하면서 다져진 체력으로 나보다 더 오래 씩씩하게 잘 걷는다. 추운 날씨에도 꽁꽁 싸매지 않기에 웬만한 추위에는 불평 없고 차가운 샌드위치나 소시지, 감자칩도 잘 소화시킨다.

서머타임이 끝나자 이제 날이 금방 어둑해진다. 철새들도 어딘가로 이동하느라 분주한 계절이다.

서머타임이 끝나자 이제 날이 금방 어둑해진다. 철새들도 어딘가로 이동하느라 분주한 계절이다.

이곳에서 얼떨결에 학부모 데뷔를 한 나는 애들 학교에서도 다른 세상을 본다. 심각한 장대비가 아닌 이상 부모들의 우산 대동은 없다. 조금이라도 비 덜 맞히겠다고 정문 가까이 주차하느라 진땀 빼는 나는 유난스러운 엄마다. 아이들이 진흙탕이나 풀밭에서 뒹구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들은 이를 말리기는커녕 방수 우주복과 장화를 신겨주면서 제대로 진흙탕 놀이를 해보라고 등을 떠민다. 아직 아기 티 줄줄 나는 어린아이들도 자신보다 큰 책가방과 운동복 가방, 겉옷 등을 거뜬히 혼자 들고 다니고, 산책길에 갑작스레 소떼, 양떼, 말떼와 맞닥뜨려도 위축되지 않고 가던 길을 잘 간다. 동물들의 발길질에 행여나 다칠까봐 겁내며 애들 손잡고 멀리 돌아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영국 시골 지천에 깔린 깻잎 모양의 쐐기풀 네틀(Stinging Nettle)을 조심하라고 입이 닳도록 당부하는 사람도 나뿐이다. 반바지 입힌 애들 데리고 온 부모마저 잔소리 한마디 없다. 풀숲에서 놀자면 어쩔 수 없이 친숙해져야 하는 식물이라 생각하는 걸까. 굳이 조심시키는 일 없고 풀에 쏘이면 그때 가서 ‘해독풀(Dock leaf) 찾아 삼만 리 놀이’를 한다. 아이 때 자주 걸리는 수두와 감기 등도 예방접종 없이 치르고 가는 게 자연스럽다고 믿는 부모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수두 예방접종을 했다고 했더니 “그런 접종도 있느냐”며 신기해한다. 심지어 사전예방 개념의 구충제도 여기선 찾아볼 수가 없다.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보통 저녁 7시, 그 이후로는 부모의 휴식시간이다. 그 시간에 잠들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올라가도록 훈련받는다. 아이들 잠들 때까지 옆에 끼고 누워 있는 나는 졸지에 ‘자신을 위한 저녁생활을 포기’한 엄마가 된다. 이 꿀 같은 저녁 시간에 부모들은 펍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심야영화를 보거나, 다른 취미 활동을 즐긴다. 아이들 생일파티나 소풍도 샌드위치나 간단한 과자면 해결되는 분위기이기에 새벽부터 팔 걷어붙이고 김밥 싸는 우리 엄마들의 노고는 상상조차 못한다. 그렇다고 손발 편하게 사는 서양 부모라는 이미지는 갖지 말라. 체력과 정신을 아껴야 가능한 아이들과의 대화에 더 열심인 부모들이 많으니까. 학교 등굣길에 부모들은 아이들 눈높이로 대화하느라 새우등처럼 굽힌 모습이고, 사소한 것에도 ‘잘했네, 대단하네, 예쁘네’ 등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학교 행사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적극적이다. 엄마들은 학교 행사만 있다 치면 각자의 기량을 한껏 보여준다. 케이크도 종류별로 구워 판매하고 본인의 말을 끌고 나와 아이들 라이딩 체험을 시켜주고,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아 그 수익금은 학교 시설 개선비로 보탠다. 범학교적 목표인 ‘독서 습관 기르기’에 맞춰 아이들의 독서 파트너로도 활동한다. 부모들은 매주 하루씩 학교 도서관을 자발적으로 방문해 아이들이 소리 내어 읽는 독서를 지켜봐주고, 독서장에 애정 넘치는 칭찬 메시지를 남긴다.

댄스파티, 필름 나이트, 크리스마스 등 주요 학교 축제도 부모들의 십시일반 참여로 진행된다. 티켓 판매부터 파티 DJ, 영화 상영사, 산타와 엘프, 사진가, 행사 물품 관리사까지 학부모들이 자체적으로 역할을 맡아 해결한다. 여기에 전교생과 부모는 물론 미취학 동생들 이름까지 다 익혀 둬야 하는(누구 엄마, 누구 동생이라고 부르는 건 실례기에) 지능까지 필요하나니. 그러고 보면 우리네 육아, 교육법과는 천지차이지만 부모 고생에 있어선 여기나 거기나 도긴개긴이다. 이 계절에 이 표현도 좋겠다. 가을 도토리 키 재기라고!



[다른 삶]한국과 영국의 육아·교육법은 ‘하늘과 땅’…부모 고생은 ‘도토리 키재기’


▶필자 오지영

영국 유학생활 후 서울에서 12년간 홍보인으로 일했다. ‘직장맘’으로 쫓기듯 살다가 2017년 영국 이민자가 되어 ‘외국인 전업주부’ 타이틀을 달았다. 남부 햄프셔주의 시골에 살면서 남편(사진 왼쪽)과 함께 개조한 소박한 캠퍼밴으로 구석구석을 여행 중이다. 딸 둘 밥 안 굶기고 ‘인생 취미’ 하나 만드는 게 현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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