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주택이 왜 기피대상인가요?

2020.02.01 11:53 입력 2020.02.01 13:37 수정

권도현 기자

권도현 기자

대학생 송준석씨(27)는 서울 서대문구의 학교 근처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산다.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해 여러 집을 거쳤다. 그 노하우로 지난해 4월 이 집을 구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보증금 대출 이자에 월세·관리비까지 한 달에 22만원을 낸다. ‘1000에 50’으로 통하는 대학가 방값에 비하면 감지덕지다. 볕이 들지 않는 건 감수해야 한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애를 먹던 지난해 여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낸 ‘사회주택 건축주들 연희동 88-30’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공급자 중심의 주택 공급 시장을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프로젝트”라는 소개말이 마음에 들었다.

군대를 다녀오니 학과·동아리 생활을 함께하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졌다. 이웃들과 ‘연희동 주민모임’을 만들어 소소한 만남을 이어가던 터였다. “대학생활 초반에 자취방은 자는 공간이고 학교에 공동체가 있었죠.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못 느끼고 지역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어요. 이제 와서 보니 남는 건 제가 사는 이 공간과 지역이더라고요. 혼자 있는 게 생각보다 많이 외롭게 느껴졌어요. 내가 주로 생활하는 이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계에 대한 갈망이 컸죠.”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연희동 청년주택을 준비하는 모임에 꾸준히 나갔다. 예정대로면 지금은 공사가 한창일 시기. 하지만 새 거주공간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었다.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과 어울리는 주택, 주민이 반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지난해 8월 ‘서울시 빈집활용토지임대부 사회주택 공급사업 공모’에 선정돼 연희동에 청년을 위한 주택을 지을 계획이었다. 사회주택은 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주체가 공급하는 주택이다. 지자체는 땅을 저렴하게 빌려주고, 사회적 경제주체가 주택을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해 시세보다 낮게 빌려준다. 협동조합은 빈집을 허물고 1~2인 가구 청년 26명이 살 수 있는 주택을 만들 예정이었다. 서너 가구가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는 형태다. 송씨를 비롯한 연희동 청년주택 입주 희망자들과 협동조합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집의 모습을 상상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만들자는 거였어요. 1층에 들어올 커뮤니티·근린시설을 어떻게 지역주민들과 공유할지도 고민했어요. 연희동 아이들과 함께하는 멘토링캠프를 열면 어떨까, 공방을 운영하면서 하나의 주민센터 역할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송씨는 “청년주택 건설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발단은 ‘오보’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8월 31일 한 매체가 “연희동 ‘핫플’에 퀴어들을 위한 사회주택이 생긴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소득·연령 기준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다는 협동조합 관계자의 말을 성적지향이 입주자 선정 기준인 양 표현했다. 보도 이후 일부 주민들은 사업을 무산해야 한다는 민원을 서대문구청·서울시·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제기했다.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어 ‘성소수자가 입주하면 교육환경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협동조합은 사실이 아닌 보도 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해당 언론사도 기사를 내렸다. 반대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비상대책위를 꾸린 반대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주민들은 ‘빈집도 아닌 곳에 세금이 함부로 쓰였다’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요구하고 있다. 초반에는 오보 때문에 잘못 이해했지만, 사업을 들여다보니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빈집 및 소규모 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1년 이상 사용하거나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빈집으로 본다. 주민들은 연희동 부지가 매입 당시 1년 넘게 비어 있던 집이 아니었다는 점과 26억원인 주택 매입 가격을 문제삼고 있다. 이들은 청년주택 대신 아동 방과 후 보호시설 유치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청년주택 부지, 노도현 기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청년주택 부지, 노도현 기자

“집문서가 있어야만 살 수 있나요”

사업 관계자들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지 매입 당시에는 빈집 매입에 대한 규정이 없어 빈집정책자문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매입했다”고 말했다. SH공사 관계자는 “수익사업이 아닌 만큼 26억원의 가치를 따지기는 어렵다. 주거 약자인 청년들이 이곳을 발판삼아 성장하고 지역에도 기여하는 사업 취지를 알리면서 1층에 주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문서가 있어야만 연희동에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협동조합은 지난해 12월 23일 서대문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이 청년주택 추진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공공주택 반대 사례를 들며 “주택 소유자들은 근거 없는 편견과 집값을 명분으로 특정 시민을 공격하는 횡포를 중단하라”고 외쳤다. 지난 1월 15일에는 국가인권위에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장에게 나이·성적지향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주거권 보장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을 권고해달라”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서대문구는 건축허가를 심의 중이다.

경기 성남에서도 청년층을 위한 행복주택 건설이 지지부진하다. 반대 주민들이 ‘19~39세 청년은 무주택자이며, 타지역 출신이 다수 포함된 대학생·취업준비생입니다. 직장 제한이 없습니다. 신변검증이 되지 않는 불특정 다수’라고 쓴 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소년범 등 아동복지시설 퇴소자가 공공주택 1순위 자격조건’이라는 허위사실도 실렸다. 청년 창업·주거 복합 시설인 인천 ‘창업마을 드림촌’ 역시 주민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해 부산시는 1800가구로 추진하던 행복주택을 1196가구로 줄이기로 했다. 민원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2013년 국토교통부는 서울 목동 유수지에 행복주택 2800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목동 주민들과 양천구는 “이미 고밀도 개발이 이뤄졌고 차량 정체도 심해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정부는 가구수를 축소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양천구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등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국토부는 목동 행복주택 시범지구 지정을 해제했다. 박근혜 정부가 무리하게 공약사업을 추진한 결과라는 지적과 ‘님비(지역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이 동시에 나왔다. 지난해 12월, 6년 전 들끓었던 시범지구 인근에 있는 목동 1~3단지의 용도지역 변경이 확정됐다. 용적률이 높아져 5100가구를 더 지을 수 있게 됐다. 재건축이 탄력을 얻어 주민들이 환영한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회원들이 1월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 없는 주거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회원들이 1월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 없는 주거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반대하면 우회’는 이제 그만

권지웅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는 “소유권자들이 살 주택과 빌려 쓰는 사람들이 살 주택은 같은 주택이지만 행정과 정치에서 다른 기준으로 다뤄진다”고 말한다. “2013년 당시에는 교통난·학급과밀문제를 지적하는 주민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쩌면 우리가 주거권이라는 명분하에 ‘반대하지 마세요’라고만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반대가 있어야하는데 없어요. 재건축 주택은 되고 행복주택은 되지 않는다면 주택이 아닌 ‘사람’에 대한 차별입니다.”(1월 20일 ‘빌려 쓰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 토론회)

청년주택에 살고 있는 이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서대문구 남가좌동 ‘달팽이집 2호’에 사는 김가원씨(26)는 “청년은 누구나 겪는 정체성이다. 반대하는 분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을 테고, 그들이 걱정하는 아이들도 언젠가 청년이 된다. 청년이 반대 이유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고 했다. 송현정씨(33)는 “공공주택 건립을 반대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다는 건 그런 목소리를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반대 주민들과 대토론회든 간담회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간건물을 임대한 달팽이집 2호는 2월 계약 기간 만료로 문을 닫는다. 연희동 청년주택 입주를 희망했던 두 사람은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다.

공간 공유 전문기업 앤스페이스의 정수현 대표는 “공공주택 사업은 적극적인 정책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하는데, 공공기관 자체가 민원에 약한 조직이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관이 협력하는 사회주택 같은 경우 LH나 SH가 소화하기 힘든 권한을 역량 있는 준공공형 민간에 이양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앤스페이스는 2018년 10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사회주택을 짓기 위해 건축허가까지 받았지만 지역 민원에 가로막혀 공사를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홍인옥 도시사회연구소장은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환경이 많이 좋아졌는데도 처음 각인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면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체계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단계”라며 “지금까지는 공공 주도로 진행하다가 반대에 부딪히면 그 지역을 건너뛰는 식으로 우회했다면, 이제는 공공이 시간을 갖고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판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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