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씨, 깔끔한 이혼이란 없습니다…모두 상처받고 패배한 이혼이네요”

2020.05.09 06:00 입력 2020.05.15 11:23 수정

이혼 전문 변호사가 본 JTBC 화제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

“선우씨, 깔끔한 이혼이란 없습니다…모두 상처받고 패배한 이혼이네요”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는 이혼을 잘한 걸까, 잘못한 걸까. 아니 ‘잘한 이혼’이 존재하기는 할까. <부부의 세계>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혼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을 낳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인증 제1호 가사전문변호사이자 이혼·상속 전문 로펌 ‘신세계로’를 이끌고 있는 조인섭 변호사(45)에게 대신 물어봤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조 변호사는 지선우가 원했던 “그 자식(불륜 배우자)만 내 인생에서 깨끗이 도려내는” 이혼이란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죠. 이혼 후에도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성장해도 결혼할 때까지는 인연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 변호사는 최근 이혼 사건의 실제를 다룬 <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조인섭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로펌 ‘신세계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혼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숙고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부분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조인섭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로펌 ‘신세계로’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 변호사는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혼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숙고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 부분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혼 조정에서는 승·패자 없어
서로 심한 상처 주지 않고
재산 분할을 적절히 마치고
이혼 후에도 자녀 만난다면
상대적으로 ‘성공한 이혼’

-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승자인가요, 패자인가요.

“재산 측면에서만 보면 1차전에서는 이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흘러가는 맥락에 비춰보면, 결국 모두가 상처 받고 모두가 패배한 이혼으로 보이네요.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감정이 순화된 상태에서 이혼을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 후에도 앙금이 가시지 않지요. 결국 상처는 아이에게 돌아갑니다.”

- 모두 승자가 되는 이혼도 있습니까.

“이혼 조정 자리에선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다만 상대적으로 ‘성공한 이혼’이 존재한다면 당사자 간에 심한 상처를 주지 않고, 재산 분할을 적절히 마치고, 이혼 후에도 자녀를 계속 만나며 좋은 관계를 맺는 경우겠지요.”

이따금씩 예외가 있기는 하다. 드물지만 ‘쿨하게’ 몸만 나가는 배우자도 있다. 이런 의뢰인에게는 변호사들이 묻는다고 한다. “정말 이러셔도 되겠어요? 나중에 후회 안 하시겠어요?”

- 여성(엄마) 입장에서는 자녀 양육권이 최대 이슈일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드라마 <화양연화>에선 여주인공이 변호사 남편과 이혼하며 양육권을 갖는 대가로 위자료와 양육비를 포기한 걸로 나옵니다.

“드라마는 조금 옛날 이야기 같네요. 요즘 양육권 문제에선 엄마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여성 의뢰인들도 똑똑해져서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옵니다. 심지어 남성들도 알고 있고요. 다만 위자료·양육비를 포기하면 이혼 과정이 빨리 끝날 수는 있어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이혼할 때 일단 양육비를 포기했다 해도 나중에 별도의 소송을 통해 다시 청구할 수 있습니다.”

- 다시 <부부의 세계> 얘기입니다. 지선우가 아들을 위험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나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제될 수 있나요.

“실제 이런 일이 있다면 이혼 소송에서 엄청나게 불리해집니다. 아이를 협박한 것에 가까우니까요.”

- 양육권을 결정할 때 자녀 의사는 얼마나 반영됩니까.

“13세 이상 자녀 의사는 거의 절대적으로 반영됩니다. 아이가 원하는 쪽이 학대 가해자라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요. 하지만 8세 이하의 아이들 의사는 진정한 의사라고 보지 않아요. 어린아이들은 키워주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 이혼 과정은 물론 그 이후에도 자녀들을 위해선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대다수 부부가 아이 앞에서 직접 상대방을 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말로 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끼게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이유이지요.”

-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아이가 아빠를 만나는 걸 꺼립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미워도 결국 아이의 부모잖아요. 내 아이를 굳이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아이들은 (같이 살지 않는) 부모가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으면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반항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 자녀가 만나기 싫어할 수도 있지 않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아이는 자신의 양육자에게 ‘충성’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아빠 만나는 걸 엄마가 싫어하니까’ 식으로 생각하는 거죠. 면접 교섭 시간을 조금씩 차근차근 늘려가는 방법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한 나절, 그다음엔 1박2일 식으로…. 심리적 트라우마가 있다면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고요.”

- 재산분할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 후 형성된 재산은 무조건 50%를 받을 수 있다는….

“그 재산이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합니다. 결혼 후 부부가 돈을 벌어 구입한 재산은 50%에 가깝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부 중 한쪽이 결혼하면서 가지고 온 재산이라면 사정이 달라지지요. 다만 이 경우도 혼인기간이 2년을 넘으면 적은 비율이라도 분할해줍니다.”

남편 바람 알고도 숨긴 지인들
손해배상 인정될 가능성 낮아
코로나 이후 늘어난 이혼 상담

‘같은 공간, 오래 함께’ 영향 커

-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는 주변 지인들이 남편의 바람을 알고도 숨긴 데 깊은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런 지인들이 있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혼인 파탄에 직접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라면 제3자에게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상간남·상간녀, 시부모, 장인·장모 등이죠. 하지만 주변 지인들이 숨긴 것이 혼인 파탄의 직접적 책임으로 인정될까요. (손배 소송을 낸다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봅니다.”

조 변호사의 책 <이제 나를 위해 헤어져요>에는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한 대목이 등장한다. ‘강아지 면접 교섭권’이다. 아내가 이혼을 원한다며 반려견을 데리고 친정으로 간 경우였다. 남편은 이혼도 원하지 않지만, 특히 이혼 과정에서 반려견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걸 고통스러워했다. 이혼 조정을 맡은 판사는 “한 달에 세 번 주말에 강아지를 ‘면접 교섭’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 반려동물 양육권이나 면접 교섭권이 법률이나 판례로 보장된 것은 아니지요.

“미국에서는 반려동물 양육권·면접 교섭권과 관련된 판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한국의 법체계에선 동물이 ‘물건’으로 간주됩니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지요.”

- 상담 오는 모든 이들에게 이혼 절차에 들어가라고 권하지는 않을 텐데요.

“저는 이혼을 권하지 않습니다. ‘변호사님, 이혼을 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선택은 당사자가 하시는 겁니다’라고 답하지요. 남들이 보기에 ‘도대체 왜 저러고 사나’ 싶어도, 각자 자신의 삶이 있는 것이니 참견할 수 없습니다. 반면 ‘왜 저런 사소한 일로 이혼하나’ 싶어도 당사자는 도저히 못 견디니까 이혼을 택하는 것이고요. 다만 정말 사소한 사안으로 찾아온 분에게는 ‘부부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합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안 줘서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 ‘이혼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까요’ 여쭤봅니다. 같이 사는데도 생활비를 안 준 남편이 헤어진 뒤 줄 가능성은 낮으니까요. 이혼하며 친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은 괜찮습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냉정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 변호사 14명을 둔 이혼 전문 로펌의 대표변호사도 진지하게 이혼을 고려해본 적이 있는지.

“결혼생활 하면서 이혼을 한 번도 생각 안 해보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이혼 전문 변호사들끼리 만나면 ‘그래, 너 이혼한다면 변론은 내가 맡아줄게’ 농담을 주고받지요.”

- 책에서 ‘결혼은 선택이지만 이혼은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누구나 축복해주는 과정이고, 이혼은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결혼할 때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안 하잖아요. 하지만 이혼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경제적 문제가 없다 해도 사회적 시선만으로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니까요.”

- 지금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왜 이혼을 원하는지 깊이 생각해보고, 이혼 후의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숙고해보셨으면 합니다. 특히 경제적 부분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모든 부분을 다 고민했음에도 이혼을 선택한다면 그때는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혼전문 변호사가 해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와 이혼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상담 횟수에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이혼 상담이 조금 늘었습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견뎌온 사람들이 코로나19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오래 함께 있게 되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며 찾아옵니다. 상대방이 너무 싫어 헤어져야겠다는 사람은 지방에서도 옵니다.”

변호사는 억울하고 화난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감정노동자다. 이혼전문 변호사는 감정노동의 강도가 더욱 심하다. 의뢰인들이 고통받은 이야기를 하고 또 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사람인 만큼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조 변호사는 “변호사가 짜증을 내면, 의뢰인은 더 짜증 낸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할까. 그의 해답은 16년째 수련 중인 태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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