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세에 독립…스웨덴 고교 졸업식이 이토록 호화스러운 이유

2020.06.19 16:10 입력 2020.06.19 16:33 수정
나승위

나승위의 ‘라곰 배우기’

올해는 내게 감회가 새롭다. 내 인생을 쥐락펴락해왔던 쌍둥이 아들들이 만 18세가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아직 한참 어린 아들들이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홀로 질’ 때가 온 것이다. 아, 믿기지 않는다!

고요한 스웨덴에서 보기 드물게 소란스러운 행사, 바로 고교 졸업식이다. 부모를 떠나 성인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화려한 졸업 파티, 거리 행진 등이 펼쳐진다. 사진 속 주인공은 필자 친구 오사의 딸 루이자(아래 왼쪽). 코로나19가 없던 작년 모습이다.

고요한 스웨덴에서 보기 드물게 소란스러운 행사, 바로 고교 졸업식이다. 부모를 떠나 성인으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화려한 졸업 파티, 거리 행진 등이 펼쳐진다. 사진 속 주인공은 필자 친구 오사의 딸 루이자(아래 왼쪽). 코로나19가 없던 작년 모습이다.

내가 믿든 말든 6월, 졸업의 때가 왔다. 스웨덴에서 고등학교 졸업은 도시 전체가 들썩거릴 만큼 전통적으로 아주 거창한 행사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부모들은 6월에 있을 ‘단 하루’의 졸업행사를 겨울부터 준비한다. 가장 먼저 ‘학생모(Studentmossa)’라 불리는 값비싼 졸업모자를 맞춘다. 졸업생의 이름이 새겨진 졸업모자는 졸업의 상징이라 비싸도 살 수밖에 없다. 가격이 20만원을 호가한다. 행진을 위해 트럭도 예약하고, 졸업식 날 저녁 화려한 파티도 계획한다. 밀가루나 날달걀 세례를 받고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탕수육을 시켜 먹는 한국 고등학교 졸업식과는 차원이 다른 호화로움이다.

20만원 호가하는 졸업모자에
행진용 트럭·화려한 파티까지
‘부모를 떠난다’는 의미이기에
더 특별하고 떠들썩하게 보내

학비 무료에 정부 생활금 지원
‘독립적인 삶’ 의지 강한 나라

스웨덴의 졸업식 날 하루 풍경은 이러하다. 아침에 남학생은 정장에 모자, 여학생은 흰색 원피스에 모자를 쓰고, 같은 반 친구들끼리 정원 넓은 집에 모여 샴페인을 곁들인 아침식사 파티를 한다. 그 뒤 학교에 가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오로지 문을 박차고 달려 나오기 위함이다. ‘달려나감(Utspringet)’이라 부르는 이 의식은 ‘독립적인 성인’으로서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의미가 있다. 번데기가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그런 순간이랄까! 이때 부모와 친지들은 운동장에서 꽃다발과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붙인 팻말을 들고 기다리다가 성충이 되어 날아오는 자녀를 격한 감동으로 맞이한다. 달려나감 의식을 통해 성인으로 거듭난 졸업생들은 운동장에 마련된 무대 위에 올라 한참을 뛰고 노래를 부른다.

다음엔 겨울부터 예약해 둔 트럭을 타고 도시를 누비며 어마어마하게 소란스러운 거리행진을 한다. 트럭 위에서 비싼 샴페인을 콜라 먹듯 마시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뿌리기도 한다. 귀청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며 나팔도 분다. 스웨덴에 와서 처음 이 광경을 접했을 때, 한적하고 고요한 스웨덴에서 이게 웬 난리인가 싶었다. 학교마다 졸업식 날이 다르니 6월 중 2주 정도는 이런 소란함을 각오해야 한다.

이렇게 트럭으로 도시 곳곳을 누빈 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오래전부터 계획한 화려한 졸업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작년에 내 친구 오사는 딸 루이자의 졸업행사를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지 모른다. 루이자와 인연이 있는 가까운 친지 25명을 초대했고, 출장요리에 음악 디제이까지 섭외했다. 파티 도중에 오사는 이제 성인이 된 딸에게 감동적인 편지를 낭독했고, ‘푸짐한 선물’을 들고 온 손님들 또한 모두 한마디씩 덕담을 해주었다. 오사는 이 행사에 자그마치 30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며 딸이 한 명이어서 다행이란 말을 했다. 친지와의 파티가 끝나면 밤늦게 친구들과의 파티가 또 있다. 가정에 따라 행사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용히 보내는 졸업생은 없다.

쌍둥이 아들들의 졸업을 앞두고 나도 뭔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여기서 가족이라고 해야 달랑 우리 식구뿐이니, 나는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한국사람들을 초대할 생각을 했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반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웠다. 모두 들뜬 마음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모든 계획을 무산시켜 버렸다. 트럭 행진은 금지되었고, 50인 이상 모임은 금지라 졸업식도 모든 졸업생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반별로 시간에 따라 나뉘어 진행되었다. 졸업식에 참석하는 가족의 수도 졸업생 한 명당 2명으로 제한되었다. 졸업식에 참석한 부모들은 ‘물리적 거리 두기’를 위해 모두 땅바닥의 표시대로 띄엄띄엄 서 있었으나, 코로나19가 졸업생들의 흥분까지 잠재우진 못했다. 그들은 모두 서로 엉켜 붙어있었다.

스웨덴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대단하게 치르는 이유는 졸업이 그만큼 큰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부모의 그늘에서 산다는 점에서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스웨덴에서 고등학교 졸업은 ‘부모를 떠난다’는 걸 의미한다.

부모에겐 18세 이상 성년이 된 자녀를 부양할 책임이 없다. 이는 부모도 알고, 자녀도 안다. 더러 성년이 된 자녀에게 방값을 요구하는 부모도 있다. 이웃집 형이나 사촌누나가 부모에게 방값을 내거나 독립해 나가 사는 걸 어려서부터 봐왔으니, 스웨덴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자신들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루이자가 졸업식 날 친지들로부터 받은 ‘푸짐한 선물’은 대부분 혼자 나가서 살 때 필요한 물건들로, 결혼 선물과 유사하다고 했다.

스웨덴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젊은이들이 일찍 부모를 떠나는 나라이다. 부모 집을 떠나는 젊은이들의 평균 연령이 유럽은 26세인데, 스웨덴은 18.5세이다. 스웨덴에 유독 독립의 기운이 이렇게 충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72년, 올로프 팔메 총리와 일군의 사회민주주의 정치가들이 스웨덴의 미래를 위해 혁명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 선언문의 제목은 ‘미래의 가족(Familjen i Framtid)’이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로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낡은 전통적인 가족구조에서 벗어나자!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자녀로부터 노부모를, 부모로부터 청소년을 자유롭게 하자! 사회 구성원이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적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자! 삶의 한 단계 도약을 이루어내자!”

지금 봐도 대단히 혁명적인 선언문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독립과 자유는 경제적인 자립에서 비롯되므로 정부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과 아이들은 복지를 늘려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학교교육도 평등에 입각해서 독립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이렇게 국가의 도움으로 개개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모두가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독립적인 존재가 됐다.

사실 노부모를 부양하고 아이들의 양육비를 부담하고 의료비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삶을 살기 어렵다. 노부모는 부담스럽고, 수입의 많은 부분이 양육비로 나간다면 아이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맘에 들게 키우려 할 것이다. 심지어 결혼하는 자녀에게 경제적인 도움까지 주어야 한다면 부모는 자녀의 인생을 간섭하려 들 것이고, 자녀는 경제적인 도움은 받을망정 자신의 인생을 간섭하려는 부모에게 반발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래서야 가족의 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가족 간의 전통적인 의존관계를 해체하고, “사회구성원이 모두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선언문까지 발표했으니, 정부가 새내기 성인이 된 고등학교 졸업생의 홀로서기에 정책적으로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정규 대학생이 되면 무조건 자립이 가능하다. 정부로부터 4주에 기본금 3292크로나와 학자금 대출로 7568크로나, 도합 1만860크로나를 받을 수 있다. 기본금은 거저 주는 돈이고, 대출금은 학교 졸업 후 6개월 이후부터 최장 25년 동안 0.16% 이자율로 갚으면 된다. 1만860크로나는 약 140만원인데, 이 정도면 부모 도움 없이 한 달 살 수 있다. 학비가 무료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지 않을 경우엔 직업을 구한다. 스웨덴 고등학교에는 18개의 국정 학습프로그램이 있는데, 학교마다 몇몇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중 6개는 대학 진학을 위한 이른바 인문계열, 나머지 12개는 실업계열 프로그램이다. 실업계열 프로그램에는 음악, 요리, 건축, 예술, 공예, 호텔경영 등 분야가 다양하고 실습의 기회도 주어진다. 졸업 후에는 원하는 분야에서 견습생으로 일할 수 있는데, 이때도 국가는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젊은이에게 실습지원금을 지급하며 응원하고 격려한다.

루이자는 가수가 꿈이라 음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꿈이 바뀌어 올가을 대학에 들어가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할 예정이다. 대학만 들어가면 바로 집을 나가 독립하리라 벼르고 있다.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바로 부모의 집을 총알같이 튀어나가는 것은 아니다. 1년 정도 공백 기간을 갖고 해외 여행이나 오지 탐험 등 다양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국가가 이런 경우까지 지원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비용을 벌고, 부족한 부분은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 부모의 지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갚겠다’고 말하거나 ‘돈 벌어 갚으라’는 소리를 들을 테니, 비공식 대출이라 할 것이다. 이런 태도는 부모의 재력과 크게 상관이 없다. 부모가 유산으로 물려주기 전까지 부모의 돈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님 돈을 참 편하게 생각했었는데….

어려서부터 평등과 독립을 배우며 성장한 스웨덴 청소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이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부모와도 평등하고,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부모들이 흔히 “너 잘되라고… 너 위해서…”라며 퍼붓는 강압적 잔소리를 여기선 결코 들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친구처럼 담백해 보인다.

1972년 ‘미래의 가족’이라는 혁명적 비전의 선언문이 발표되기 전에는 스웨덴 사람들도 가족끼리 서로 간섭하며 살았을까? 정부가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어떤 정책을 견지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까지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스웨덴 사람들은 정말 ‘독립적인 삶’에 대한 의지가 무척 강하다.

부모님께 오랜 세월 많은 부분을 의존하며 살아온 내겐 참 감탄스러운 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의 이 감탄에 한 친구는 “독립은 외로움의 다른 말이야”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해 보니 독립과 외로움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난 독립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스웨덴 시스템이 좋아. 외로움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혁명적 비전’은 무엇이어야 할까? 스웨덴의 비전은 무엇이고 또 한국의 비전은 무엇이어야 할까?

스웨덴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아이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홀로 져야 할 때’가 왔음을 믿어야 할 것 같다. 그들이 집을 나가 살면서 내게 돈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면!

▶필자 나승위

[다른 삶]18.5세에 독립…스웨덴 고교 졸업식이 이토록 호화스러운 이유


갑자기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찾은 남편 따라 아들 셋을 데리고 남부 도시 말뫼에 왔다. 처음엔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뭘 하며 사나 했는데, 지금은 제법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스웨덴을 한국에 소개하는 두 권의 책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와 <스웨덴 일기>를 썼고, 곧 비빔밥 파는 도시락 가게를 열어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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