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노조 와해’ 2심 법원의 모순

2020.08.16 21:31 입력 2020.08.16 21:41 수정

“전산시스템 통해 일한 협력업체는 독립 기업”…서비스업 기술 변화를 불법파견 무죄 증거로

“삼성 매뉴얼대로 업무 수행
원청 계약 해지되면 폐업…
실질적으로 삼성 지휘·명령”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판결을 두고 제조업 사건을 판단하던 낡은 기준으로 서비스업의 불법파견을 판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이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할 새 기준을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지난 10일 1심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법인과 박상범 전 대표에게 유죄로 인정됐던 불법파견 혐의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16일 이 사건의 2심 판결문을 보면, 1·2심은 같은 대법원 판례를 두고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1·2심이 든 판례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서 근무하던 오지환씨 등 7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2015년 2월 파견근로임을 인정받아 승소했던 사건이다. 1·2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기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협력업체가 삼성전자서비스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등 기준에 따라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했다.

1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전산시스템을 통해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수리기사들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제공한 전산시스템을 통해 수리 업무를 배당받고 사건 처리 결과를 입력하고, 삼성전자서비스 기술 담당자들이 작성한 전산시스템상 수리 매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이다. 1심은 “협력업체 사장이 관여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서비스 물량 대부분(98%)을 협력업체가 처리하고 있는 점, 협력업체 사장 70%가 삼성전자서비스 임직원 출신인 점 등을 보면 협력업체는 삼성전자서비스의 하부조직처럼 운영되고 있다고 봤다. 특히 1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가 설립된 협력사를 계약기간이 만료되지도 않았는데도 폐업시킨 점을 보면 협력업체는 독자적인 결정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다고 봤다.

2심은 오히려 전산시스템을 근거로 ‘상당한 지휘·명령’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지휘·명령이 ‘자동적으로’ 이뤄졌으므로 삼성전자서비스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과 협력업체 수리기사들이 같은 공간에 근무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협력업체는 독립적 기업조직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2심이 제조업의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던 낡은 기준으로 서비스업을 판단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당수 기업들이 구두로 지휘·명령하던 방식을 전자화했는데, 이러한 기술 변화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김기덕 변호사는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은 누가 실질적으로 지시했는지에 달렸다”며 “삼성전자서비스는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지시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하청이 같은 장소에서 일했는지를 따진 것에 대해서도 김 변호사는 “자동차 제조공정에서 원청 노동자가 앞바퀴를 조립하고 하청 노동자가 뒷바퀴를 조립할 때는 장소를 따질 필요가 있지만 서비스업에서는 같은 장소 근무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2심이 1심과 같이 기획폐업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는 등 삼성전자서비스를 부당노동행위 주체인 ‘사용자’로 인정하고도 협력업체가 독립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변호사는 “협력업체가 LG전자 등 다른 회사의 물량을 처리했다면 독립성이 있다고 보는 게 맞지만 협력업체는 원청과의 계약이 해지되면 폐업해야 하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진다. 삼성전자서비스 등과 함께 기소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등과 검찰 모두 상고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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