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가 흘렀다. 청년 전태일이 뛰어다니던 복개천은 콘크리트를 걷어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며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제 몸을 불살랐던 그의 몸은 거인이 되어 평화시장 앞을 흐르는 청계천을 바라보고 있다. 각혈로 핏덩이를 토해내던 여공들이 일하던 평화시장은 이제 정말 평화를 찾았을까?
“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전태일 동상 앞에서 영화배우 조진웅이 <전태일 평전>을 낭독했다. 그 역시 몸뚱이로 연기하는 노동자였다. 그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의 인간 사랑이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기를 열심히 응원하고 바라겠다”며 노동자와 연대했다. 자신보다 못한 처지의 노동자를 위한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은 6개월 전인 5월13일, 그렇게 시작됐다.
전태일의 목소리는 그 이후 6개월 동안 울려 퍼졌다. 7일이 지난 뒤 전태일 다리를 찾은 경비노동자 김인준씨는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저희를 머슴이 아닌 이웃으로, 함께 아파트를 지키고 가꾸는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다운 노동자의 삶을 꿈꾸는 목소리는 일주일마다 울려 퍼졌다. “우리를 영웅이라고, 전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방호복을 입고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라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목소리로…
코로나19가 심각한 수준으로 재확산됐던 여름에는 캠페인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멈춘 것은 아니었다. 공공서비스노동조합연맹과 서울중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 조합원들은 전태일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다. 서울노동인권복지네트워크와 전태일병원이 될 것을 선언한 녹색병원 의사들은 전태일의 어깨에 주사를 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실직, 휴직, 감봉, 과로 등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주로 노동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그러나 치료약이 없는 이 병원체와 거리를 두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는 결코 평등한 모습이 아니다. 보건의료노동자의 말처럼 “코로나19의 숙주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품고” 노동을 해야 이 사회가 살아 남을 수 있다. 50여년 전 풀빵을 나누어 주던 전태일의 손을 지금 다시 굳게 잡아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