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4일 핏줄만이 가족? 가족이 된다는 건…

2021.05.14 00:00 입력 2021.05.14 00:07 수정
김흥일 기자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영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티브로드폭스코리아 제공

영화<그렇게 아버지가 된다>티브로드폭스코리아 제공

■1981년 5월14일 피는 물보다 진했다

아이의 피아노 소리, 웃으며 거실에서 뛰노는 모습에 아버지는 행복에 잠깁니다. 가족애를 느끼며 만족감에 드는 찰나, 전화 한 통이 걸려옵니다. 아이가 뒤바뀌었다는 병원의 연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친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기로 합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문득 자신과는 달리 늘지 않는 아이의 피아노 실력, 닮지 않은 눈매.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줄거리입니다. 영화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0년 전 이날 경향신문은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1981년 5월14일 경향신문

1981년 5월14일 경향신문

아이가 뒤바뀐 건 의정부 성모병원에서였습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바뀐 두 아이의 부모는 5차례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양쪽 부모의 입장이 달랐습니다. 두 아이 중 한 아이의 친부모는 “친딸인줄 알고 난 후에는 떨어져 살 수 없다”고 했고, 다른 아이의 친부모는 “어떻게 기른 아이인데 선뜻 바꿀 수 있느냐”는 입장이었습니다. 엇갈리는 양쪽 부부의 주장은 법정으로 번질 기미까지 보였으나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KBS의 <9시에 만납시다>에 나와 ‘친부모가 친딸을 키운다’는 원칙적 합의를 보았습니다. 더불어 두 부부는 “병원 측도 원만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기사의 제목은 “피는 물보다 진했다”였습니다. 두 가족이 찾은 합의점이 ‘낳은 정’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죠. 당시 혈연 중심의 가족상은 공고했습니다. 지금도 각종 법률에서는 전통적 가족상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민법은 제779조 1항에서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에서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의미는 여전히 혼인과 혈연에 얽매여 있습니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고 있지만, 사회적·제도적 변화는 여전히 느립니다. 얼마 전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공개 했습니다.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고 전했습니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물음표를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아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사유리 가족 합류 소식이 들려오자 청와대 국민청원과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비혼출산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반면, 사유리 가족을 보고 싶다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또 지난달 27일 여성가족부는 2025년까지 가족정책 추진의 근간이 될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습니다.(관련기사▶아빠 성 따르는 원칙·‘혼외자’ 구분 없앤다) 여가부는 모든 가족이 차별 없이 존중받고 정책에서 배제되지 않는 여건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습니다. ‘혼외자’같은 차별적 용어를 각종 법령에서 쓰지 않고 혼인·혈연 테두리 밖에 있는 비혼 동거 가구나 1인 가구도 법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여가부는 “전통적 개념의 가족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가족 내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으나 사회적 여건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5월입니다. 그런데 가족은 무엇일까요? 30년 전 기사처럼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요. 혈연과 혼인 중심의 가족이 ‘건강가족’인 걸까요. 1인 가구, 비혼 출산 등 우리는 언제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영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 이름지어 있습니다. 가족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로 가족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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