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41년 전 ‘사라진 이들’은 어디에...

2021.05.18 00:00 입력 2021.05.18 00:03 수정

[기타뉴스][오래 전 ‘이날’] ‘사라진 441명’은 어디에...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11년 5월 18일 사라진 441명은 어디 묻혔나

10년 전인 2011년 5월 18일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사라진 441명은 어디 묻혔나, 5·18 행불자 유족들의 아픔’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게재된 이 기사는 계엄군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행방불명자들이 441명에 달하지만 시신을 찾아 안장하려는 유족들의 바람이 이뤄지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 31주년 하루전인 17일 광주 5.18민주묘지에 한  유족이 남편의 묘소를 찾아 비석을 닦아주며 슬픔을 달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

5.18민주화운동 31주년 하루전인 17일 광주 5.18민주묘지에 한 유족이 남편의 묘소를 찾아 비석을 닦아주며 슬픔을 달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

17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 오른쪽 맨 위 모퉁이에 자리한 행방불명자 76명의 묘지. 이날도 비석만 덩그러니 세워진 묘지엔 유가족 100여명이 모여 조촐한 제사를 지냈다.

그래도 이들 76명은 ‘확실한 보증인’ 등이 있어 ‘5·18 유공자’로 인정되면서 가족들의 아픔이 절반으로 줄어든 사례다. 그러나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은 365명이 더 있다. 이들 441명은 모두 당시 계엄군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불자 유족들의 바람은 시신을 찾아 5·18묘지에 안장하는 것이지만,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증인’을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계엄군 진압작전 기록 등도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수만 5·18유족회 회장은 “당시 계엄군으로 나섰던 분들이 암매장 등에 대한 양심선언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5·18 보상심사도 허술하게 이뤄져 유가족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보상심사는 1990년 이후 6차례 이뤄져 모두 5252명이 유공자로 인정됐다. 그러나 아직도 360명이 재심사를 요청해놓고 있다. 당시 20살이던 손모씨(84년 5월 사망)는 당시 계엄군의 구타로 머리를 다친 뒤 치료를 받다 숨졌다. 하지만 심사위원회가 서류기록을 잘못 이해하면서 탈락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박모씨(41)는 집 수색을 온 계엄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정신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나중에 이름을 바꾼 것이 서류상 혼란을 일으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5·18기념일을 하루 앞둔 이날 밤 광주시내 곳곳에서는 ‘5월 영령’을 기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져 추모분위기가 고조됐다. 오후 7시부터 열린 ‘5·18 전야제’에서는 ‘기억’ ‘관심’ ‘부활’을 주제로 각종 문화행사가 열렸다. 18일에는 ‘제3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다. 참석자들은 2년 동안 부르지 않았던 5·18 추모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한다.

[오래 전 ‘이날’] 5월 18일 41년 전 ‘사라진 이들’은 어디에...

이 기사가 게재된 지 10년이 지난 현재 정부가 인정한 5·18 행불자는 7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정부로부터 5·18 행불자로 인정받은 84명 가운데 6명이 이장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계엄군에 사살된 뒤 사라진 시민들의 시신 55구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난 12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광주봉쇄작전(외곽차단) 과정에서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민간인 시신 55구의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조사위는 당시 광주에 출동한 3공수와 7공수, 11공수 부대원을 상대로 면담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시 광주 도심에서 진압작전을 폈던 공수부대들은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 외곽으로 이동해 사흘 뒤인 5월 24일까지 봉쇄작전을 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조사위는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양쪽의 호남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에서 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가 최소 13차례 이상 차량을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위가 추적 중인 사라진 시신은 5·18 당시 행방불명된 시민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광주 곳곳에서 11번의 암매장 시신 발굴이 이뤄졌지만 아직 시신을 찾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조사위는 5·18 학살 책임자로 전두환씨와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 등 신군부 핵심 인사 37명을 선정해 6월부터 면담조사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남아있는 유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어둠 속에 묻혀있는 진실을 규명해내기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가 5·18을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이번 조사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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