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비장애인 디자이너들 함께 일하는 소셜 스타트업 ‘키뮤스튜디오’
서울 성수동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 2층에 위치한 키뮤스튜디오 사무실 입구에는 노란 스마일 아이콘이 그려진 포스터가 붙어 있다.
흔한 그림 같지만 가까이서 보니 ‘다른 점’이 눈에 들어왔다. 스마일의 검은 눈동자가 위아래로 엇갈려 있었다. “아주 작은 차이인데, 특별하죠?” 남장원 키뮤스튜디오 대표(39)가 물었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 상징 이미지로 쓰고 있어요.”
키뮤스튜디오는 디자인 창작물을 활용해 아트 상품과 굿즈를 선보이는 소셜임팩트(사회적 가치 추구) 기업이다. 환경, 난민, 인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는 총 8명으로 6명이 발달장애인이다. 대표와 이사를 포함해 전 직원(17명) 중 장애인 노동자 비율이 35%에 이른다. 키뮤스튜디오 구성원들은 발달장애 디자이너들을 ‘특별한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업무를 나눠 맡는다. 개인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게 특징이다. 덕분에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장기를 살려 개성을 담아낼 수 있다.
특별한 디자이너들은 주 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4시간 일한다. 이날은 6명의 디자이너가 회사에 출근했다. 작업실에 놓인 3m 크기의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은 색색의 마커펜을 앞에 두고 그림 그리기에 한창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을 권하고 있지만, 회사 출근을 선호한다고 했다. “어휴, 그림이 정말 좋네요.” 사진기자가 이태규 디자이너의 그림을 보고 한마디하자 테이블 반대편에 있던 서준원 디자이너가 자신의 그림을 들고 다가왔다. 미술 지도를 담당하는 김은숙 연구원(29)이 웃으며 속삭였다. “준원님이 질투가 좀 많으세요.”
사회적 가치 추구 ‘키덜트 뮤지엄’
환경·인권…디자인으로 풀어내
디자이너 8명 중 6명 발달장애인
복잡한 사물도 단순하게 재창조
저마다의 특장점 뽐내는 능력자들
디자이너들은 저마다 특장점이 분명했다. 김수연 디자이너는 사물을 단순화시켜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 어떤 복잡한 모양의 사물이라도 김 디자이너를 통하면 개성 있으면서도 단순화된 형태의 그림으로 재탄생한다고 했다. 서준원 디자이너는 ‘작업실 반장’으로 통했다. 한 번 자리에 앉으면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탓에 작업량이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반대로 채이서 디자이너는 작업 속도는 느려도 반듯한 선에 디테일이 살아 있는 그림을 완성시키는 데 재능이 있다고 했다. 재택근무 중이던 송병헌 디자이너는 수준 높은 드로잉 실력으로 창의적인 디자인 소스를 개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인재라고 했다.
오전 작업을 끝낸 이 디자이너가 가방에서 우유갑과 색종이를 꺼냈다. 작업 시작 전 녹차라테와 200㎖ 우유 두 갑을 마시는 것이 ‘루틴’인 그는 휴식을 취할 땐 잘 씻어 말린 우유갑에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했다. 다른 디자이너들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엔 복도를 산책하거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12시 됐어요.” 정태현 디자이너가 점심시간을 알렸다. 디자이너들과 동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리 두기 수칙을 준수하면서도 짝을 이뤄 함께 식사하는 것이 키뮤스튜디오만의 문화라고 했다.
■ 낯섦을 특별함으로…차별 아닌 다양성을 발달시키다
남 대표가 특별한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꿈꾼 건 2008년 서울 강남구 발달장애 전문복지관인 충현복지관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면서다. “미술 전공자라 직업 재활팀에서 미술교육을 담당했어요. 그렇게 시작해 코로나19로 수업이 중단된 지난해까지 복지관에서 미술교육을 했죠. 사실 이렇게 그리는 그림은 전문 직업교육이라기보단 ‘케어(돌봄)’ 차원에서 하는 활동에 가깝거든요. 남다른 색감, 감성으로 그려진 훌륭한 작품인데 버려지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이들의 작품이 세상에 보여질 수 있게 해보자.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느꼈죠.”
남 대표는 2012년부터 광고 회사를 운영하며 발달장애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매년 개최했다. 키덜트 뮤지엄(kidult museum)의 약자인 ‘키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전시를 본 한 패션기업이 작품을 디자인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직원이 400여명쯤 되는 회사인데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하지 않아 부담금을 납부하고 있더라고요. 작품이 마음에 들면 디자이너로 직접 고용해보시면 어떻겠냐고 해서 처음엔 세 명의 디자이너가 패션회사에 먼저 취업했어요. 원화를 디지털 형태로 변환하고 수정·보완하는 작업은 저희가 대신하는 조건으로요.”
현장에서 함께하는 비장애 연구원
돌발행동 때는 두렵기도 했지만
함께 생활하며 성격·특수성 이해
경험하면서 ‘작은 차이’ 극복 가능
고용이 ‘해결책’ 될 수 있다고 생각
2018년 키뮤스튜디오를 설립하며 이들 디자이너를 “모셔왔다”고 했다. “법인 설립을 하면서 보호자와 디자이너들께 이직 제안을 했어요. 정식 이직 절차를 거친 거죠. 이분들의 빈자리는 저희가 고용 연계를 통해 메워드렸고요.” 충현복지관과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복지관 내 충현비전대학에 키뮤디자인학과를 만들었다. 학비는 전액 무료로, 3년의 커리큘럼을 통해 디자이너를 교육·양성한다. 도예를 전공한 송인호 작가가 운영을 주도한다. 2019년 배출된 첫 졸업생 3명 모두 키뮤스튜디오의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남 대표는 “처음부터 특별한 디자이너들과 함께할 목적으로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정직원 채용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태규 디자이너와의 인연은 충현복지관에서 시작돼 10년이 넘었다.
키뮤스튜디오엔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없다. 전문 디자이너와 동료 간의 협업이 존재할 뿐이다. 상품을 홍보할 때나 전시회를 열 때도 ‘발달장애’라는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런 원칙은 남 대표와 친구 공승규씨와의 오랜 관계에서 나왔다. “누나들끼리 친구라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어요. 선천성 소아마비가 있는 친구인데, 스키도 타러 가고 당구도 치고 수영도 함께하는 사이죠. 내기를 하면 서로 절대 봐주지 않아요. 수영장에선 제가 친구를 업고 이동할 때도 있고 휠체어를 밀어주기도 하지만,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에요. 이 친구와 놀기 위해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특별한 디자이너분들과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이분들이 그린 원화가 너무 좋아서 같이 일을 하는 것이지, 저희가 돕는 게 아니니까요.”
공씨는 키뮤스튜디오의 첫 투자자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본사에서 근무하는 공씨는 키뮤스튜디오가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장거리를 날아와 통역을 맡을 만큼 열성적인 지원자다. “스튜디오 설립을 앞두고 처음으로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승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장애는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장애인이 아닌 척은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는 보일 수 있으면 좋겠어’라고요. 저희 디자이너들이 장애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냥 멋진 디자이너로 먼저 보이길 바라요. 사람들이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응대하겠지만, 장애를 마케팅으로 쓰지는 말자 했죠. 히스토리를 먼저 들으면 열이면 열, 저희에게 ‘좋은 일 한다’고 해요. 배경설명을 먼저 하지 않으면 오히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질문이 더 많은데 말이에요.”
■ 보이지 않는 두려움? ‘고용’으로 넘는다
“발달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키뮤스튜디오의 비장애인 입사 지원자들이 반드시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일단 취업을 하면 디자이너분들과 함께 밥 먹고 어울리는 게 일상이 되거든요.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일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사소해 보이지만 밥시간을 엄수하는 건 우리 회사에서 매우 중요해요. 냄새에 민감해서 밥을 혼자 먹는 분도 있지만, 강박행동의 일종으로 시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는 분도 있거든요. 유연한 근무시간이나 협업을 위주로 하는 작업 시스템도 발달장애의 특수성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진 거예요.”
남 대표는 이러한 체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비장애인 직원들의 역할도 컸다고 말한다. “MZ세대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커요. 디자인을 해도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하죠. 디자인이란 게 결국은 예쁘게 포장을 해주는 일이거든요.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거죠. ‘핑크 빙하’나 ‘방귀 뀌는 소’처럼 기후변화와 관련된 디자인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특별한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시스템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의 작업 현장엔 김은숙 연구원이 늘 함께했다. 미술을 전공한 김 연구원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다. 디자이너들의 생활지도나 돌발행동에 대한 대응도 김 연구원의 업무에 포함된다. 김 연구원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미술교육과 사회복지를 겸하는 일을 찾던 차에 회사 비전과 지향점이 같다고 느껴 입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볼 수 있는 일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저도 디자이너분들이 돌발행동을 할 때 낯설고 두려웠어요. 같이 생활하며 각자의 성격과 특수성을 이해하게 됐고, 이제는 비장애인 동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요. 엘리베이터 줄을 무시하고 타려 하거나, 공용 컵을 마음대로 쓰는 일이 벌어지긴 해요. 건물 관리인분께 조심해달라는 주의를 받기도 해요. 그런 불편함을 느끼며 우리가 장애인 동료와 어떻게 어울리고 맞춰가야 하는지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일터에 더 많은 장애인이 보여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요.”
남 대표는 장애인 고용에 있어 더 많은 기업이 고민보단 ‘고(Go)’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들 비슷한 고민이 있어요. 직고용에 따른 공간 제공, 사회복지사 고용, 복지 지원 등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거죠. 패션회사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면, 연계고용제도를 통해서 저희가 교육이나 복지 부분을 책임지고 지원하려 해요. 저희끼리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라고 하는데, 이 두려움은 결국은 경험하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용이 어쩌면 해결책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