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성평등위원회 졸속 폐지 논란…대학가 ‘페미니즘 백래시’ 현실로

2021.11.03 11:00 입력 2021.11.03 11:17 수정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일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총여학생회 대안기구가 폐지되는 건 중앙대가 처음이다. 한수빈 기자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에서 2일 성평등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규탄 공동행동에 참가한 재학생 등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총여학생회 대안기구가 폐지되는 건 중앙대가 처음이다. 한수빈 기자

“이건 ‘젠더 갈등’이 아니라 ‘젠더 폭력’이다.”

지난 2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에 있는 중앙대학교에서 총학생회 산하 성평등위원회(성평위)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성평위는 2014년 중앙대학교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뒤 총학생회 산하에 설치된 대안기구다. 집회를 주최한 ‘대학 내 백래시 규탄 공동행동’은 이번 성평위 폐지 결정이 대학사회에 만연한 반페미니즘 현상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공동행동 참가자들은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상징하는 장미꽃을 들고 “성평위 폐지는 학생사회의 재난”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학 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구들이 사라지고 있다. 총여학생회가 있던 서울 소재 25개 대학 중 21개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사라졌다. 남아 있는 총여학생회 역시 수년째 집행부가 꾸려지지 않고 있다.

중앙대 성평위 폐지는 지난 9월30일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위원회 폐지 연서명 게시글에서 시작됐다. 이어 10월8일 총학생회 확대운영위원회에 성평위 폐지 안건이 올라왔고, 출석 인원 101명 중 59명의 찬성으로 성평위 폐지가 결정됐다. 회의에서 반성폭력위원회,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등 대안기구 설치가 제안됐지만 모두 부결됐다.

성평위는 독립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내린 회의에서 발언권이 없었다. 중앙대 총학생회장은 성평위 폐지 연서명 진행자인 재학생 A씨의 제안을 낭독했다. 제안에는 “페미니즘 단체 폐지는 범사회적 흐름이다”, “성폭력 문제는 성평위가 아니라 학내 인권센터와 검경 등 행정·사법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연서명을 진행하는 동안 수많은 욕설과 협박을 받았다”는 이유로 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중앙대 마지막 총여학생회 회장을 맡았던 백시진씨는 공동행동에 보낸 연대성명에서 “에브리타임이라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받은 연서명이 마치 대표성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김민지 중앙대 인문대학 인권위원장은 연대성명에서 “왜 중앙대학교 재적생 2만명 중 59명의 의견으로 성평위가 폐지됐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송지현 성평위 위원장은 A씨의 발언에 대해 “젠더 폭력의 주체가 오히려 피해자의 언어를 빼앗았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에 “본교 성평등위원회 폐지를 ‘페미니즘의 백래시’로 규정하지 말라”는 입장문을 게시했다. 총학생회 측은 “성평등위원회 측과 꾸준히 소통을 해왔고 존재를 부정한 적은 없다”면서 “총학에서는 성평위가 진행하고 있던 사업과 정책들을 이어받아 진행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 제휴 사업, 정혈(생리)용품 지급 사업, 성폭력 신고 창구 운영 사업 등 성평위가 담당했던 3개 업무를 총학생회로 이관해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성평등위는 총학생회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지현 위원장은 “총학생회가 성폭력 피해 신고 창구 임시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고 하는데, 성평위로부터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 진지하게 상담 업무를 지속할 의지가 있는 게 아니라 당장 성평위 업무 공백을 무마하려는 것 같다”면서 “공식적으로 성평위는 폐지됐지만 제도권 밖에서 투쟁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