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보장 말하며 “교통 소통” 빗장…쪼그라든 광장의 자유

2023.05.09 21:24

경찰, ‘관저 인근 금지’ 법원 제동에 ‘집시법 12조’ 들어 막아

용산서, 지난해 집회 신고의 4.41% 금지해 서울 관내서 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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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앞으로도 집회의 자유는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공정하게 법 집행을 해나갈 방침이다.”

지난 2월28일 건설노조의 도심 집회, 3월25일 민주노총 등 주말 집회, 5월1일 양대노총의 노동절 도심 집회 등 대규모 집회를 앞두고 경찰이 내놓은 집회 대응방안 자료는 매번 이렇게 끝맺었다. 헌법이 규정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되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는 엄격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 자유’의 예외 지역이 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이다. ‘용산 시대’가 개막하자 경찰은 집시법 제11조에 명시된 ‘대통령 관저’ 표현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연이어 금지했다. 대통령실 인근 서빙고로 등을 ‘주요 도로’로 지정하는 내용의 집시법 제12조 시행령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주요 도로’로 지정되면 관할 경찰서장이 ‘교통 소통’을 위해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실 앞 집회를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인권단체연대체 공권력감시대응팀이 서울 관내 경찰서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용산 대통령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 등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에는 2022년 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총 3919건의 집회 신고가 접수됐다. 용산서는 이 중 173건(4.41%)에 대해 집회 금지 통고를 했다. 남대문경찰서 1.86%, 종로경찰서 1.69%, 서대문서 1.60%, 영등포경찰서 0.46%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b>‘아무튼 집회금지’</b> 경찰이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등 11개 도로를 추가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9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근무 중인 경찰들 뒤로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아무튼 집회금지’ 경찰이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에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 등 11개 도로를 추가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9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근무 중인 경찰들 뒤로 차량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용산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 약 3주가 지난 2022년 4월10일, 그해 처음으로 집회에 금지 통고 결정을 내렸다. 집시법 11조3항 ‘대통령 관저’ 인근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사유로 들었다.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에 포함되므로 인근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약 한 달 반 동안 집시법 11조를 근거로 한 집회 금지 통고는 19차례 반복됐다. 기조가 변한 건 그해 6월부터다. 법원이 집회 금지 집행정지 사건에서 ‘대통령 관저’와 ‘대통령 집무실’은 별개이고,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집회는 금지할 수 없다며 5월에만 3차례 시민단체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6월부터 집시법 12조(교통 소통)를 근거로 한 집회 금지 통고가 급증했다. 윤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2023년 1월까지 용산서의 집회 금지 사유는 집시법 12조가 132건으로 가장 많았고, 8조(장소 경합·사생활 평온) 42건, 11조(금지 장소) 31건 순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집시법 12조가 서울 시내 집회 금지의 주요 근거로 활용된 것은 경찰청이 집계한 통계에도 나타난다. 9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집시법 12조에 따른 집회 금지는 지난해 1월 1건, 2~5월 0건에 불과했다. 그러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인 6월 30건으로 급증했다. 이후 7월 6건, 8월 8건, 9월 27건, 10월 14건, 11월 46건, 12월 39건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집회와 관련한 경찰의 소송전도 진행형이다. 경찰은 집회 금지 통고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패소하자 상급심의 판단을 받겠다며 항소해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랑희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는 권력기관을 성역화하려는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전 정부에서 경찰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집회·시위 권리 보장에 대한 논의가 진전됐으나, 지난 1년 사이 이러한 논의는 사라졌고 과거로 빠르게 회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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