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0원 뷔페식’ 고시식당 “1년 넘게 적자…더 받을 수도 없고”

2023.11.21 21:27

대학동 고시식당의 고민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한 고시식당에서 지난 20일 학생과 일반 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한 고시식당에서 지난 20일 학생과 일반 손님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김경민 기자

주인들 “폐업 위기” 한목소리
우크라 전쟁에 재료값 50% ↑

“과일·고기 있어야 손님 찾아”
가격·인심 경쟁력 포기 못해
“주인 입장선 애로 사항 천지”

한 끼 6500원. 지난 20일 낮 12시가 되자 식권을 쥔 손님들이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위치한 신풍고시식당을 가득 메웠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 트레이닝복 차림의 학생들, 흙먼지가 묻은 안전화를 착용한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각자 접시에 이날 메뉴인 삼겹살을 수북이 담았다.

대학동 고시식당은 밥, 국, 고기반찬과 각종 반찬, 과일 등이 매일 종류를 달리하며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대학동 ‘고시촌’의 명성은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되며 꺾였다. 한때 10개가 넘던 고시식당도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 일부 식당만 남았다.

그러나 고시식당은 지갑이 얇은 학생과 노동자에게 여전히 반가운 존재다. 감정평가사를 준비 중인 박모씨(28)는 식비를 아끼려고 대학동으로 이사왔다고 했다. 그는 “여기선 뷔페를 6000원에 먹을 수 있다”며 “식권을 한 달치 결제해두고 매일 먹고 있다”고 했다. 박씨가 앉은 자리를 비롯한 40여석은 이날 점심시간 시작 20여분 만에 가득 찼다.

언뜻 호황처럼 보이지만 이날 경향신문이 돌아본 대학동 고시식당에도 고물가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식당 주인들은 “폐업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상승한 재료비·전기료·가스비 탓에 올해 들어 가격을 인상했거나 가격 인상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5년째 고시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한 뒤 1년 반 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다. 안 오르는 것이 없어 재료값이 거의 50% 올랐다”고 말했다. 김씨는 식당이 적자인 지 1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3만원이던 식용유도 6만~7만원까지 갔다가 최근에야 가격이 떨어졌다”며 “튀김 한 번 하면 식용유 한 통을 다 쓰는데 이렇게 비싸면 어떻게 하냐”고 탄식했다.

대학동의 한 고시식당 사장 A씨는 지난 8월 한 끼 가격을 65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렸다. A씨는 “그나마 시골에서 먹거리를 직접 재배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지만, 손님도 줄고 물가도 올라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한 카페에서 바닐라라테 한 잔이 6100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커피값에 우리 집에선 뷔페를 먹을 수 있으니 학생들이 찾아오는 거구나 싶더라”고 했다.

식당 주인들은 고시식당의 차별점이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인심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 고민이라고 했다. 신풍고시식당 사장 유모씨는 “그래도 예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과일도 주고 고기도 주고 해야 손님이 찾아온다”며 “한데 물가에 가스요금도 오르니 주인 입장에서는 애로사항 천지”라고 했다.

고시식당은 영양을 고루 갖춘 식사를 비교적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동 인근에서 거주하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은채씨(25)는 “사실 6500원도 부담이 적지 않다”며 “다른 데보다는 저렴하니 확실히 식비를 줄이는 데 고시식당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6500원 뷔페식’ 고시식당 “1년 넘게 적자…더 받을 수도 없고”

식당 주인들은 적자를 셈하다가도 이들의 사정을 알기에 마냥 가격을 올려기도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주 고객이 학생이었는데 경기가 좋지 않으니 형편 어려운 일반인들도 최근엔 많이 온다”며 “그래도 장사는 반토막이니 이대로 가면 진짜 그만두는 수밖에 없나 싶다”고 했다.

유씨는 “우선은 재료비를 알뜰히 아끼는 수밖에 없다”면서 “학생들에게 계속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 오늘 적자니까 내일 당장 때려치자 이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유씨의 주방에서는 점심 내내 돼지고기를 볶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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