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풍자 영상 공유자 “처음엔 황당, 수사받고 나니 공포”

2024.05.03 06:00 입력 2024.05.03 06:03 수정

‘명예훼손 혐의’ 경찰 조사받은 40대 카페 운영자

<b>시민단체, 서울경찰청에 항의</b>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 활동가들이 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대통령 풍자 영상 게시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시민단체, 서울경찰청에 항의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 활동가들이 2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대통령 풍자 영상 게시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인스타 하듯 영상 공유
그냥 올렸다는 말밖에…
아무 말도 안 하는 대통령
공포 심어주려는 듯 보여”

송모씨(40)는 심심풀이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육아·아동, 미술·카페 관련 게시물을 올리곤 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웃긴 영상도 공유했다.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대통(령) 양심고백 연설’이라는 제목의 풍자 영상도 그렇게 올리게 됐다.

송씨는 이 영상을 내려받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단 사실을 잊어버릴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있으니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경찰의 전화였다. 경찰은 국민의힘으로부터 고발장을 접수받아 윤 대통령 풍자 짜깁기 영상을 최초 제작한 50대 남성과 이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9명을 찾아낸 다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중이다. 송씨는 이 9명에 포함됐다. 송씨는 지난 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영상이 재미있어서 공유한 건데 이런 일도 대통령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고 말했다.

송씨는 2일 서울경찰청에 출석해 1시간 남짓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송씨에게 특정인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아는지, 자신의 영상을 누군가가 무단으로 편집해서 올린다면 어떻게 느낄지 등에 대해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송씨는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최근 장사가 잘 안돼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웃기거나, 황당하거나, 어이가 없거나, 귀여운 영상이 보이면 내려받아 올리곤 했다. 송씨는 “윤 대통령 풍자 영상은 언제 공유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 편집을 잘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며 “사람들이 보고 재미있어할 것 같아서 공유했고, ‘가짜 윤석열’이라는 말도 썼다”고 했다. 그는 “인스타를 왜 하나. 그냥 하지 않냐”며 “그냥 올렸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송씨의 감정은 ‘황당함’에서 ‘공포’로 바뀌었다. 송씨는 “대통령이 나 같은 국민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만 해줘도 마음을 내려놓고 살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오히려 공포를 느끼길 원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법원은 명예훼손죄를 판단할 때 ‘사실의 적시’인지 ‘의견의 표명’인지를 우선 따진다. 경찰이 문제 삼는 이번 영상의 경우 허위라는 사실을 밝힌 ‘창작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송씨의 공동 변호인인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송씨도 사람들이 실제 대통령의 연설 영상이라고 믿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고, 퍼나를 때 ‘가짜’라고 명시해 기망할 의도도 없었다”며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창작적 표현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강하게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21조넷)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허하라”며 경찰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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