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누가 재난을 폭탄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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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 💣 누가 재난을 폭탄으로 만들었나

6분 2023.08.01

재난 수해 공무원 징계 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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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그늘, 공무원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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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8.01. 화요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8월의 첫날입니다.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김지혜 기자이고요,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기사에 관심이 많아요.

'넌 꿈이 뭐니?' 어릴 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 좀 난감했습니다. 장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 뭐냐 묻는 말인데, '직업=꿈'이라는 게 잘 이해가 안 됐거든요. '꿈'이라는 건 직업보다는 더 소중하고 애틋한 무언가에 더 어울리는 말 같았습니다.

직업을 갖고 나서 오히려 생각이 바뀌었어요. 직업은 꽤나 소중하고 애틋한 것이었습니다. 자아실현이나 사회 기여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맡은 일을 잘 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일상을 떠받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물론 꼭 필요한 생계 수단이기도 하고요.

생뚱맞은 이야기를 오래 했는데요, 사실 오늘 함께 읽을 기사는 반복되는 재난 대응 실패의 원인에 관한 것이에요. 사회부 강은 기자가 재난을 담당하는 공무원 3인을 만나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최근 정부가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청주 오송지하차도 참사에 대한 감찰 결과를 발표했죠. 말 그대로 총체적 부실이었습니다.

참사 당일 23회의 범람·침수 위험 신고가 사전에 접수됐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없었어요. 이에 국무조정실은 경찰·소방·지자체 공무원과 민간인 등 총 36명의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고 지휘 책임이 있는 공무원 63명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참사 상황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공직자가 총 99명에 달한다는 거죠.

99명. 정말 큰 숫자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맡은 일의 책임을 방기하게 된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들 중에서는 어떻게든 일을 제대로 해내려 아등바등한 끝에 결국 '무책임'의 영역으로 물러난 사람도 포함돼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일선의 잘못을 '일벌백계'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재난 대응 실패가 '반복되는' 진짜 이유는 일을 해내고 싶은 사람들까지 일을 해낼 수 없는 환경으로 내몬 리더십과 조직의 문제에 있을 테니까요. 기사를 함께 읽고 대화를 이어가 봐요. 약 3분 분량입니다.

☑️ 재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재난 대응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로 공무 인력의 부족과 그로 인한 ‘번아웃’을 꼽는다.

☑️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791명, 전체 공무원의 0.25%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낮은 연차·직급이 대부분이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 ‘재난 전문가’급이 되기도 전에 높은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퇴직하는 공무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 재난 공무원들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재난 대응 실패는 왜 반복되는가

2023.07.27. 강은 기자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7월25일 오후 충남 청양군 인양리 지천 제방 복구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재안전직 민하승씨

"반복되는 밤샘 근무·민원에 2년 만에 헬부서 탈출 결심"

민하승씨(33·가명)는 영남권의 한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재난 담당 공무원이다. 폭염과 한파에 대비해 시설물을 설치·관리하거나 집중호우가 내릴 때 침수 위험 지역을 살피는 일을 한다. 그는 28일을 끝으로 2년 넘게 몸 담아 온 공직생활을 마무리한다.

주변 동료들은 만류하기보다 ‘부럽다’고 말한다. “곧 따라갈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민씨는 “비상근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졸음운전을 하는 날도 많아지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강해졌다”고 말했다.

대단한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으나 공익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낄 때도 적지 않았다. 직접 설치한 그늘막 아래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볼 때는 특히 그랬다. 민씨는 “그나마 2년이라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라고 했다. 반복되는 밤샘 근무와 쏟아지는 민원,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에 민씨는 갈수록 지쳐갔다고 했다. 언젠가부터는 ‘헬부서 탈출’만이 목표가 돼 있었다.

집중호우나 산사태 등의 재난이 닥칠 때마다 지자체의 대응 역량이 도마에 오른다. 올여름에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숨지는 등 인명피해가 나자 “왜 막지 못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재난 대응 실패는 왜 반복될까. 재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이들은 하나같이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번아웃’을 호소했다. 일선에는 “삶이 더 망가지기 전에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체념이 가득했다.

방재안전직 유준기씨

“30만 공무원 중 791명뿐인데 낮은 직급·연차만 수두룩”

“이제 와서 거창한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방재직 공무원 유준기씨(40·가명)는 27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왜 이 일을 시작했냐’는 물음에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생활을 꾸역꾸역 이어온 지 4년째다. 그는 “이틀에 한 번꼴로 밤을 새우며 일해도 눈앞에 나타나는 성과가 없다”고 했다. “매년 (침수를 막기 위한) 개선 공사를 해도 주민들은 늘 화가 나 있다”고도 했다. 재난의 강도가 커지고 빈도가 잦아지면서 지자체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씨는 ‘재난 전문가’가 양성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했다. 이직률이 높아 숙련을 쌓기 힘들다는 것이다. “방재직렬 공무원이 생긴 게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다들 연차도 낮고 직급도 낮아요. 10년 이상은 근무해야 전문가가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전에 다 갈려서 나가는 거예요. 어떻게 전문가가 만들어질 수 있겠어요.”

10년 전인 2013년 정부는 ‘방재안전직 공무원’을 신설하고 “재난 관리 핵심으로 양성하겠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의 ‘2022년도 지자체 공무원 인사통계’를 보면 방재안전직 공무원은 총 791명(임기제 포함)이다. 30만여명에 달하는 전체 공무원의 0.25% 수준이다. 정부는 2019년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24년까지 방재안전 공무원을 1640명까지 늘리겠다고 했으나 아직 목표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다. 채용 대비 퇴직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반 행정직 권두현씨

“재난 때 선제적 대응 했다가 왜 멋대로 했냐고 질타받아”

재난 공무원들은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자치구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일반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권두현씨(48·가명)는 일선 공무원들이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난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면 주관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요. 재난을 막으려고 어떤 조치를 했는데, 생각보다 재난 피해가 없으면 어떨까요. 다른 불편이 발생한다면 어떨까요. 주민들도, 기관도 ‘왜 멋대로 했어’라고 책임을 묻는 거예요.”

재난 대응에 실패한 공무원을 제대로 처벌하고 징계하라는 목소리는 많지만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자’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언젠가 더 큰 재난이 닥칠 게 두렵다”고 했다. 다시 유씨의 말이다. “앞으로도 재난은 더 강해지고, 더 자주 찾아올 겁니다. 이대로 있으면 내 삶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예요. 제 인생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이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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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 공무원은 10대들의 '꿈'으로 손꼽히는 직업이었습니다. 요즘 들어 공무원의 인기가 좀 시들해졌다 하지만, 며칠 전 실시된 7급 공무원 공채 필기시험 경쟁률은 40.4:1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근무 연수가 적은 젊은 공무원의 이탈이 늘어나고 있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일례로 강원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까지 4년여간 도청과 19개 시·군 '1~10년차 미만 직원' 중 797명이 공직을 떠났다고 해요. 매년 그 수가 증가해, 올해는 반년 만에 벌써 104명의 젊은 공무원들이 사직했다고 합니다.

어렵게 이룬 꿈을 스스로 저버리는 마음은 어떤 걸까요? 기사 속 민하승씨도 바로 그런 케이스죠. "반복되는 밤샘 근무와 쏟아지는 민원, 감당할 수 없는 과중한 업무에 갈수록 지쳐갔"고 "언젠가부터는 ‘헬부서 탈출’만이 목표가 돼 있었다"고 합니다. "공익에 기여한다는 보람"에도 끝내 버틸 수 없었던 이유예요.

이 기사는 방재안전직 공무원의 이야기에 한정해 재난 대응 실패의 원인을 짚고 있지만, 저는 이 문제가 국가의 총체적 위기 상황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재난 대응은 국민 안전·생명과 직결된 국가의 주요 책무인데, 정작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이 일에서 '보람' 아닌 '탈출'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정부와 공직 사회는 재난 대응 부서를 '기피 1순위' '헬부서'로 만들어버렸어요. 연차와 직급이 낮은 조직내 최약자들에게 주어지는 '폭탄' 같은 업무로 치부했고요. 실제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 재난 담당 공무원의 평균 근무기간은 1.1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박용필 기자와 통화한 기초단체 방재담당자 A씨는 이렇게 말해요. “이번 사고가 ‘소극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상황관리요원 한두명 늘리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게 많은 지자체들의 현실이다. 재난담당부서 인력이 3~4명인 곳도 있다. 이들이 봄·가을 산불대응, 여름 호우·태풍 대응, 겨울 폭설 대응에 나선다."

일이 보람 아닌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폭탄이 돼버린 곳에서 개인의 직업윤리와 소명의식만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폭탄을 품어버린 약자들에게 폭탄이 터졌을 때의 책임을 모조리 떠맡기는 조직에서는요. 이곳에는 내 삶을 위해 오랫동안 바라고 원했던, '꿈의 직업'이 없습니다. 권두현씨의 말처럼 "이대로 있으면 내 삶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안타깝습니다. 재난 대응 업무를 폭탄으로 만든 '윗선' 아닌 폭탄을 짊어진 '일선'들만 무거운 책임을 떠안는 악순환이 다시금 반복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반복되는 것도 무섭지만, 한 차례의 처벌과 징계가 지나간 후 누군가 또다시 재난 같은 업무를 떠맡아야만 하는 상황 역시 무섭게 느껴집니다.

중앙은 '지시'만?

박용필 기자는 중앙 정부가 재난대응 방침과 대책, 예산 등을 정해놓고 지방자치단체가 수동적으로 실행하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효과적인 재난 대응이 어렵다는 진단을 내놓습니다. 지자체의 인건비 총액은 행안부가 정하기 때문에 지자체별 재난 대응 인력을 갖추는 것부터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에요.

악성 민원은 학교의 '약한 고리'로

공무원과 함께 10대들의 '꿈의 직업'으로 꼽히던 교사 역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죠. 하지만 학교 안에서도 악성 민원에 한층 취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기간제·특수교사·비정규직인데요. 정규교사가 꺼리는 보직이나 업무가 주로 이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서도 '폭탄 돌리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