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대 로또

2012.12.18 21:20
남재일 | 경북대 교수·언론학

18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판세는 누가 이기든 초박빙이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선거보다 정파의 결집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유권자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의 투표율은 63%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63점이면 D학점, 70점 이상이면 C학점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이보단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70%를 넘어설진 미지수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민들의 참여지수는 C와 D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일찌감치 투표율이 관건이란 전망이 나왔고, 시간이 갈수록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면서 20대의 투표율이 태풍의 눈이 될 것이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젊은층의 투표율은 낮다. 17대 대선의 경우 50대의 투표율이 70.6%인데 20대 후반은 42.9%에 불과했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사람들보다 자기 지분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의 권리주장이 약하다는 얘기다. 부자보다 서민들의 투표율이 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이런 역전이 가능할까?

[경향논단]투표 대 로또

많이 가진 사람들은 정치변동에 따른 이해가 즉각적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부자감세를 통해 부자들이 얻은 금전적 이익은 충분히 체감될 정도로 크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화두가 된 복지정책이 서민들에게 체감될 정도로 구체적인 이익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청년실업을 완화하기 위한 일자리 창출 공약도 마찬가지다. 정책이 약속대로 지켜지기도 쉽지 않고, 지켜진다 해도 다수의 수혜는 체감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숱한 정치적 공약에 속아 기대와 좌절의 반복되는 감정노동에 지치면 정치 자체에 대한 불신과 체념의 감정에 빠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투표는 내 삶과 무관하다’는 체념의 배후에는 이런 마음사태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투표를 위해 불과 한두 시간 노동한다. 그것도 객관식 한 문제를 푸는 단순노동이다. 평소 그 정도 노동을 하면 품삯으로 얼마나 받을까? 대리운전이 직업이라면 1만~2만원 사이, 대학생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면 5000~1만원 정도다. 비정규직 축소나 반값 등록금 공약에 열 번 투표해서 아홉 번 허탕치고 한 번 맞춰도 남는 장사 아닌가. 매주 800만분의 1 확률의 로또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다. 투자에 비해 기대가치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투표다. 하지만 투자의 약소함을 생각하지 않고 기대가치에 집착하면 좌절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종종 그 함정에 빠진다.

정치에 대한 과잉기대는 투표 이외에 정치에 참여할 길이 차단돼 있는 제도적 조건과 한 번의 투표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사행심이 맞물릴 때 증폭된다. 물론 과잉기대는 깊은 실망으로 돌아온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치적 투자’를 늘려야 한다. 투표는 정치적 참여의 전부가 아니다. 요즘은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시민적 실천이 가능하다. 인터넷과 SNS 같은 미디어와 시민사회운동을 통해 지속적인 정치적 실천이 가능하다. 정치인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의 일부를 유권자가 직접 하면 정치에 대한 기대는 현실화되고 실망은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정치와 내 삶은 호의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요컨대 지속적으로 투표하고, 투표를 독려하고,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일상적인 정치적 실천을 체화하는 민주적 시민이 많아져야 정치가 내 삶에 호의적이 된다.

지금의 20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정에서 과보호받고 가장 사회에서 학대받는 세대다. 가장 똑똑하지만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세대, 가장 돈을 많이 썼지만 가장 돈을 못 버는 세대다. 이런 사정은 그들 탓이 아니라 그들이 놓인 사회지형 탓이다. 하지만 해결은 그들 스스로가 해야 한다. 386세대는 불가피하게 정치적이 됐지만, 이들은 스스로 정치적이 돼야 하는 세대다. 이번 대선이 80%가 대학교육을 받은 이 세대가 자신들의 사회적 지분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투자자로 출발하는 사건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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