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진보의 연금정치

2013.02.26 21:40
오건호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몇 년간 잠잠했던 연금 논란이 다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뜨거운 감자가 될 듯하다. 지금까지는 ‘급여’가 핵심 논점이었다면 이젠 ‘재정’이다. 노인이 많아지면 기초연금 재원도 늘어야 하고, 국민연금기금 소진도 이전보다는 절박한 주제가 될 것이다. 현재 가입자들이 지닌 국민연금 불신도 급여 수준보다는 미래 지급가능성에서 비롯된다. 국민연금이 보험료에 비해 후한 급여를 주는 제도임을 알아가고 있지만 문제는 재정 불안이다. 기금이 소진될 수 있다는데, 나중에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국민연금기금 사용에 가입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

누가 이 연금재정 정치를 주도할까? 난 진보쪽을 우려한다. 진보는 두터운 급여를 강조하지만 재정 방안이나 후세대 부담에 대해선 대체로 무심하다. 이번 기초연금 논란에서도 진보진영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국민연금기금 사용에 동조하고 나섰다. 현재 많은 노인이 빈곤한데 대규모 국민연금기금을 쌓아두는 게 이치에 맞지 않으며, 후세대 부담을 강조하는 건 공적연금의 연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란다. 이들은 기금이 소진돼도 자식 세대가 충분이 이를 감당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2050년 즈음에 후세대가 책임져야할 몫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로 계산되는데(특수직역연금 제외한 수치), 이는 지금 유럽 국가들이 연금 지출에 사용하는 규모이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해내고 있는 일을 우리 자식들이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경향논단]고령화시대 진보의 연금정치

나도 후세대가 상당한 부담 능력을 지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이 경제력을 가졌다는 것과 그만큼을 세금이나 보험료로 낸다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이 주장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것은 2050년을 향한 재정 이행방안과 이에 따른 현재 세대의 실천 몫이다. 고령화가 저절로 복지국가를 만들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면 미래 세대가 그만한 책임을 수용하도록 할 수 있을까? 후세대가 우리가 받을 연금 재정을 책임지기 위해 어느 시점에 갑자기 세금을 더 내리라는 건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이는 지금부터 공적 부담을 늘리는 작업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작년 가입자들이 국민연금에 낸 보험료 총액이 28조원, GDP의 2.2%에 달한다. 현재 기초노령연금에 사용되는 세금 몫까지 합하면 GDP의 2.5%이다. 이를 2050년에 10%까지 올리는 이행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020년까지 GDP의 4%, 2030년 6%로 늘려가야 결국 10%에 도달할 수 있다. 서구 복지국가가 걸어온 경로이다.

지금 우리 앞에 기초연금 재정방안 과제가 놓여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엊그제 진보 경향의 사회단체들이 박근혜 정부에 기초연금 공약을 원점에서 재논의하라고 요구했다. 애초 공약대로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한다면 추가로 연 7조원, GDP의 0.5% 재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당장 공적연금을 위해 내야할 몫이 총 GDP의 2.5%에서 3%로 올라가는데, 이를 감당하는 게 바로 이행 프로그램이다. 이를 증세 정공법으로 풀지 않고 일부라도 국민연금기금에 의존하는 순간 그만큼 세대별 재정 몫을 분담하는 이행이 지체되고, 미래 연금 지급 여부를 걱정하는 가입자의 불안이 커지며, 이를 빌미로 시장을 넓혀가려는 민간연금의 공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내 아이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자들에게 세대간 연대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부담 강요이며, 후세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할 수 없는 위험한 실험이기도 하다.

복지재정 논란으로 모처럼 대한민국에서 재정지출 혁신 에너지가 생겨나고 있다. 이 계기를 살려 지속가능한 공적연금을 위한 진보의 재정전략이 나와야 한다. 미래를 불안해하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말이다. 후세대가 연금재정을 책임질 거라 주창하려면 우리가 할 일은 미래 연금지급 준비금인 국민연금기금 사용이 아니라 우리 세대가 져야할 몫을 온전히 책임지는 증세 정치이다. 이제 고령화시대 진보의 연금정치를 진지하게 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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