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쌍용차 사태

2013.03.04 21:30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유럽 자동차산업이 심상치 않다. 곳곳에서 정리해고와 공장폐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우선 포드가 영국 사우샘프턴과 벨기에 젠크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7000명의 일자리가 날아간다. 벨기에는 GM이 앤트워프의 공장을 폐쇄한 지 2년 만에 또 날벼락을 맞았다. 크라이슬러를 인수한 피아트는 시칠리아 공장에 이어 트럭 자회사 5개 공장을 폐쇄한다.

지난달 28일, 독일 금속노조와 지루한 협상 끝에 GM은 독일의 보쿰 공장 폐쇄를 공식화했다. 3300여명이 일하는 이 공장이 폐쇄되면 납품하는 부품사 4만명의 일자리도 위험해진다. 독일에서 완성차공장이 폐쇄되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니, 이 사건이 주는 정신적 충격은 헤아리기 힘들다.

[경향시평]유럽판 쌍용차 사태

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를 이끄는 프랑스 역시 쑥대밭이다. 푸조-시트로앵이 파리 인근의 오네-수부아 공장을 폐쇄하고 프랑스 전역에서 80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15% 지분을 갖고 있는 르노자동차 역시 75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타이어업체 굿이어는 프랑스 아미앵 공장을 폐쇄하고 1100여명을 길거리로 내쫓을 예정이다.

자본이 거론하는 이유는 예외없이 ‘수요 감소, 과잉생산’이다. 지난해 유럽 자동차 내수판매량은 1995년 이래 최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를 행하는 자본, 특히 미국의 ‘빅3’(GM, 포드,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매년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단지 유럽의 판매가 감소했다는 이유로 수만명의 노동자 생존권을 앗아가려는 것이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파산에 내몰렸던 빅3가 ‘수익성 회복’ 명분 아래 행한 것도 동일했다. GM은 미국의 47개 공장 중 무려 14개를 폐쇄하고 2만1000명을 길거리로 쫓아냈다. 크라이슬러 역시 2만7000명을 정리해고했다. ‘학살’에 가까운 이 작업 역시 ‘과잉생산’이 명분이었다. 빅3는 이제 금융위기 이전의 판매량보다 더 많은 차를 팔고 있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들 중 극히 일부만 다시 공장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노동자의 피를 대가로 원기 회복과 실탄 장전을 마친 빅3는 이제 유럽 노동자들 학살에 나섰다. 탐욕스럽게 이윤을 좇아 공장을 짓다가 과잉생산이 발생하면 무자비하게 생산력과 노동력을 파괴하는 게 자본주의가 공황을 탈출하는 공식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역시 루스벨트의 ‘빅딜’로 극복한 게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포화로 인적·물적 자원을 대량 파괴함으로써 마감한 것 아니던가.

“엄마, 저 사람들 왜 데모해?” “자동차가 안 팔려서 공장 문을 닫는대.” “차가 왜 안 팔려?” “응, 그건 차가 너무 많이 만들어져서 그렇다는구나.” “많이 만들어지는데 왜 우리집엔 차가 없어?” “응, 그건 돈이 없어서….”

회사가 시키는 대로 차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 유럽 노동자들은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벨기에 젠크 공장과 프랑스 아미앵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차량을불태우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푸조-시트로앵이 폐쇄하겠다고 발표한 오네-수부아 공장에서는 1월16일부터 두 달째 공장 점거파업을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판 쌍용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미국, 지금 유럽을 휩쓸고 있는 대규모 생산력·노동력 파괴는 먼 대륙 얘기가 아니다. 한국 자동차 내수시장 역시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유럽에서 학살을 벌이는 GM과 르노가 한국에 진출해 있다. 벌써 한국지엠은 정비·수출포장 부문 외주화를 선포한 상태다.

한국의 조선업도 마찬가지로 생산력 파괴가 벌어진다. 중소 조선소들이 무너지는 통영은 이미 ‘고용재난(!) 지역’으로 선포됐다. “쌍용차 살리려면 국정조사 말고 차 한 대 더 사줘라.” 그럼 조선업은 어떻게 하나? 노동자들이 배 한 척씩 사줄 수도 없고, 한낱 소모품으로 버려지란 말인가? 대체 왜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인지, 있는 놈들이 더하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