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유감

2013.05.01 21:07 입력 2013.05.01 22:41 수정
김진송 | 목수·문화평론가

전철을 타보면 앞에 앉아 있는 줄의 일곱에 다섯 명은 손에 첨단기기를 쥐고 있다. 그 창의적인 물건을 쥐고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첨단의 과학적 기술을 일상의 쓰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창의적 산물을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다. 한편 물질의 생산과 소비 능력을 높이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제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창의성이야말로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창의적으로 개발된 새로운 생산 능력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온다. 이즈음 누구나 앞다투어 창의성과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창의적 인간이 되기 전에 먼저 소비적 인간이 되어버린다.

낡은 이야기 하나. 남자가 성공하려면 여자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첫째는 어머니, 둘째는 아내 그리고 셋째 내비게이션 아가씨.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달린 차를 처음 몰게 되었을 때, 목적지의 방향과 지형에 대한 이해, 도로의 방향과 차선의 선택에 대한 급작스러운 판단 중지가 일어나고 내비 아가씨의 목소리에 모든 판단을 내맡기게 되는 순간, 비로소 그 유머를 이해했다. 팔과 다리의 부분적인 육체적 기능만 남긴 채 기억과 예측, 판단을 관장하는 나의 모든 뇌의 기능을 내비게이션이 제시하는 단일한 경로로 재편집되는 현상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다.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그건 농담이 아니라 고스란히 실재의 현상이다.

[문화와 삶]창의성 유감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두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외장 두뇌’인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지식과 정보는 무한히 제공된다. 더 이상 지식과 정보는 사회적으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는 얼마든지 퍼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일상의 사소한 내기는 쉽게 결판이 난다. 네 말이 옳으니 내 말이 옳으니 하는 논란은 ‘한번 찾아봐!’ 하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준엄한 판결이 내려진다. 목에 핏줄을 세우고 온갖 논리와 상식을 주워섬기는 고집을 피울 필요가 없어졌으며 미심쩍은 주장이라도 그 자리에서만큼은 끝까지 우길 수 있는 무모함도 사라졌다. 이제 지식의 불명확성은 사라지고 언제든 명쾌하고 단호한 지식이 편재하게 되었다. 거추장스럽게 머릿속에 지식을 넣어 둘 필요가 없어졌고,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게다가 스스로 공들여 입력할 필요도 없는 외장 두뇌를 구입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낡은 두뇌를 새로운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새로운 물건을 구입해도 내 손안의 물건은 금방 구닥다리가 된다. 그만큼 창의적인 기술과 지식이 앞서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그 편차를 끊임없는 구매를 통해 해소해야만 한다. 기술과 일상의 편차는 일상과 일상 간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를 가져오고 우리는 그 간극의 불안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창의적 산물에 재깍재깍 응답해야 하는 어답터가 되었다. 남보다 더 민감하게 그 편차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을 얼리 어답터라고 부른다.

첨단과 일상의 간극은 아무리 메워도 그만큼의 또 다른 편차가 생긴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과 일상의 편차를 좁히도록 고안된 수많은 창의적 산물들은 실제로 그 편차를 극대화하기 위해 창안된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창의성이란 결국 새로운 편차를 만들어내고 그 편차를 극대화할 수 있는, 그리하여 수많은 소비적 인간을 양산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을 말한다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다. 이즈음 누구나 앞세워 말하는 상상력과 창의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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