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김우중 대우 회장 사퇴

2013.08.01 21:43 입력 2013.08.01 21:59 수정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989년에 펴낸 자서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에는 ‘생각대로 되는 세상’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세계경영’이란 기치를 내걸고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써왔던 그는 외환위기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전까지 글 제목처럼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1999년 11월2일자 1면에는 ‘김우중 대우 회장 사퇴’ 기사가 실렸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김우중 대우회장이 그룹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물러난다”고 보도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주)대우,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김 전 회장의 퇴진은 개발연대가 이뤄낸 ‘성장신화의 종언(終焉)’을 의미했다. 1960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성실업에서 6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김 전 회장은 1967년 서울 충무로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원단 수출회사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성공가도를 질주했던 그는 1971년 대미 섬유수출의 40%를 독식하며 업계를 평정했다. 그 이후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와 옥포조선,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대우그룹을 재계 2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경향으로 보는 ‘그때’]1999년 11월 김우중 대우 회장 사퇴

하지만 김 전 회장을 파멸로 몰아간 것은 다름아닌 ‘세계경영’이었다. 1990년대 들어 막대한 부채를 끌어들여 해외사업을 확장하던 그는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11월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하고, 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하지만 검찰이 지금까지 김 전 회장에게 추징한 금액은 0.5%에도 못 미치는 887억원에 불과하다.

한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김 전 회장이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인터넷매체 ‘뉴스타파’는 지난달 25일 김 전 회장의 셋째 아들 선용씨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600억원대의 골프장 ‘반 트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77세인 김 전 회장은 아직도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추천기사

기사 읽으면 전시회 초대권을 드려요!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