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최후의 날

2013.12.27 20:38
이건범 | 작가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로마, 폼페이, 나폴리, 피렌체, 피사, 밀라노, 베네치아 등을 짧은 시간에 달리기하듯 바삐 구경한 여행이었다. 수박 겉핥기였지만, 2000년 전 로마의 영광과 15세기 르네상스, 근세 대형 상가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은 제쳐 놓더라도 어느 하나 그 규모와 역사가 뿜어내는 멋만으로도 입을 벌리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여러 도시 가운데 단연코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운 곳은 폼페이였다. 기원전 89년부터 로마에 편입된 이곳은 그리스 쪽에서 넘어온 헬레니즘 문화의 기반 위에 로마의 황금기 문화를 얹은 도시다. 흔히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라고 부르는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에 근처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 때문에 화산재로 뒤덮여 사라졌다. 그러다 16세기에 수로 공사 도중 유적이 발견되어 그 이후 지금까지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와 삶]폼페이 최후의 날

듬성듬성 남아 있는 거대한 유적들이 한눈에도 관광도시라는 인상을 주는 21세기 로마와 달리, 폼페이는 방금까지 누군가가 살다가 어디로 단체여행을 떠나 비어 있는 마을에 몰래 들어왔다는 느낌을 준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매력이다. 거리는 모두 포장되어 있었고, 차도와 인도가 나뉘어 있는 시내 거리에는 차도로 다니는 마차 바퀴가 빠져 나갈 수 있는 징검다리 건널목이 눈길을 끈다. 매우 섬세한 문명의 손길이 체온 그대로 남아 있어서 혹시 당시에 전기도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황당한 상상을 하게 만들 정도다.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남동부의 항구도시였던 폼페이는 농업과 상업이 성한 인구 2만의 도시였고,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다. 상점과 술집 등이 늘어서 있는 중심 거리에는 매춘을 제공하는 공창 건물이 있고, 근처에는 사창 표시를 한 집과 윤락가 위치를 안내하는 길바닥 표지까지 버젓이 새겨져 있다. 100억t에 이르는 화산재와 화산암이 쏟아져내려 무려 5m 넘게 쌓였다니 이를 치우고 도시를 재건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도시의 전성기였음을 증명하듯이 경기장과 극장, 공동 우물과 상수로, 공중 목욕탕 등이 모두 그리 오래지 않은 시대의 시설 같은데 2000년 전의 문명이라는 사실에 섬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시설은 폼페이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도시 서쪽의 공회장이다. 신전과 동상, 시청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광장. 그리스에서 아고라라 부르고 로마에서는 포럼이라고 불렀다는 그 광장에서 시민들이 모여 정치집회를 열었을 광경을 떠올리니, 과연 이게 2000년 전의 사람살이인가 싶어 가슴이 서늘해졌다.

라틴어에 ‘화산’이라는 낱말이 없었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에 자취를 감춘 도시, 폼페이. 비록 그곳이 당시 로마의 문화가 만들어낸 향락과 방탕의 극단이었다한들 어찌 폼페이의 모든 것이 퇴폐 일색이었겠는가. 당연히 광장에 모여 도시 운영을 토론하는 시민들도 있었을 것이고, 쾌락의 수렁에 빠진 도시를 걱정하는 시민도 있었으리라. 나는 그 광장 한복판에 서서 불통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의 한국을 떠올렸다. ‘안녕들 하십니까’ 하며 나태와 이기심과 두려움과 안락에 부끄러워하는 시민들이 어느 광장에서 이런 마음들을 털어놓고 있을지 아득한 심경이었다. 우리의 광장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다시 대학가 벽보 민주주의로 후퇴한단 말인가.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자연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높디높은 벽이다. 그래서 하늘의 노여움이라고 불렀으리라. 만일 우리 사회가 폼페이처럼 어떤 재앙을 당한다면 그 재앙의 원인은 무어라 설명될까. 부패와 불통, 정치인과 시민들의 뻔뻔함, 오로지 돈과 권력만을 좇는 이기심의 만연. 나는 이런 사회 현상들이 자연재해에 비상하게 대처하는 현대의 과학기술을 무색하게 만들면서 우리 사회를 타락과 퇴보로 몰아넣지 않으려나 걱정하며 폼페이 광장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