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고령화 시대 ‘버스 안 풍경’

2013.12.30 20:43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두 달 전,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후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이다. 정문 앞 정류장에는 학교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로 북적거렸고,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승차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타려던 버스가 도착했다. 근처에 종점을 두고 있는 버스라서 꽤 많은 학생들이 좌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 나를 포함해 서너 명만이 선 채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도심으로 향하던 그 버스의 승객 구성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서너 정거장을 통과한 후였다. 내리막 고갯길에 위치한 정거장에서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노인분들이 승차했다. 버스에 올라선 그들은 빈 좌석이 없음을 확인하고선 좌석 앞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고 섰다. 흥미로운 것은 노약자석에 앉은 학생들 중 누구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그로부터 2주일 정도 지났을까? 이번에는 동네 마을버스 안에서 위와는 정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지하철역 옆에서 대기 중이던 마을버스 안은 한가했다. 늦은 오후이긴 했지만 퇴근 시간이 되려면 아직 멀었던 탓에 승객이 많지 않았다. 주부와 학생들, 그리고 할머니 몇 명이 전부였다. 당연히 빈 좌석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약간 선이 굵은 인상의 노인분이 버스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 노인분은 빈 좌석에 앉지 않고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대학생에게 다가서더니 “여긴 노약자석이야, 네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고”라는 말을 큰 소리로 서너 번 반복했다.

좌석에 앉아 있던 학생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빠르게 빈 좌석으로 몸을 옮겼다. 노인분은 노약자석을 차지한 이후에도 혼자 중얼거렸다. “요즘 젊은것들은 위아래가 없어.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모른다니까.” 승객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버스나 지하철의 좌석을 두고 마찰을 빚는 풍경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마찰 양상은 이전보다 더욱 빈번해지고 좀 더 극단으로 흐르는 듯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단 서울의 대중교통이 지닌 독특한 면모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30~50대 중산층 상당수는 개인용 차량으로 이동하는 반면, 20~30대 직장인과 도시 서민 상당수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후자의 대열에 서울 소재 대학생과 노인 이용객이 합류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간의 마찰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의 손자이고 누군가의 할아버지이겠지만, 이전까지 집단적으로 조우할 기회를 거의 가진 적 없는 두 세대가 대중교통의 비좁은 공간에서 아무런 완충재 없이 서로 부대낄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의 상황은 사회경제적 변수까지 이 두 세대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청년 세대는 ‘삼포 세대’로 불리는 와중에도 드높은 취업 장벽을 넘어서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며, 노년 세대는 50%대에 육박하는 최악의 빈곤율을 기록하며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다. 대중교통에 몸을 실은 그들 모두는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그런 그들이 빚어내는 갈등의 두 가지 양상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앞의 사례처럼 젊은 세대가 ‘모두가 한 명의 승객일 뿐’이라는 소비자 의식에 의지해 자기 좌석을 지키고 노년 세대가 ‘장유유서’라는 유교적 관념에 기대 막무가내로 호통 치는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특정 계층 내부에 세대 간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성장 고령화 사회의 가까운 미래 살풍경이 버스와 지하철 안에 이미 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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