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

2013.12.30 20:55
김지숙 소설가

2013년의 마지막 날이다. 다들 특별한 계획이라도 세우셨는지 모르겠다. 일출 보기 좋은 곳을 찾아보는 분도 있겠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해넘이에는 유독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2013년이 나름대로 혹독했기 때문인지, 그토록 긴장한 채 맞이한 서른 살을 살아냈기 때문인지 2014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기만 하다. 서른하나가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니는 회사에 계속 다니고, 없는 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다가 잠들고,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에 “5년 안에 할 거예요”라고 받아치고, 책은 언제 내냐는 질문에는 “10년 안에는 한 권 쓰겠죠” 하고 눙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갈 것이다. 철도 민영화를 걱정하며 파업을 지지하다가도 출퇴근 시간 지하철의 혼잡으로 호흡곤란을 겪을 때는 “누가, 제발, 어떻게, 좀!” 하고 절규할 것이다. 친구들과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번 정권이 몇 개월이나 남았지” 하고 손가락을 꼽아 볼 것이다.

김지숙 소설가

김지숙 소설가

비정규직의 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거나 그조차 구하지 못해 구직 중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게 서른은 특별한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서른은 ‘ㄴ’자가 들어가는 어른의 나이였는데, 아직 밥벌이를 못하는 것에 절망할지도 모른다. 그들 옆에서 직장을 가진 이들은 어디까지 감사해야 하고, 어디까지 불만을 가져도 되는지 몰라 침묵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도 서른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직장에 들어갔지만 격무에 시달려 호시탐탐 그만둘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벌써 지쳐 버렸는데 한창 일할 나이라는 막막함, 결혼과 출산 같은 대소사를 무사히 겪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대자보를 쓰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본 이후, 나도 역시 안녕하지 않다고 응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말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어쩌면 나와 타인의 ‘안녕하지 못함’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감수성마저 사라져버린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난다. 또는, 어차피 세상은 즐겁거나 안녕하길 바라기에는 본래 팍팍한 곳이라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네가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들을 은연 중에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히 ‘안녕들 하시냐’고 질문조차 내뱉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대학 때 들었던 니체 수업을 떠올렸다. 교수님은 수업 중에 “사람이 나락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을 때 올라오려고 애써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추락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니체식으로 하자면, “그대로 떨어져 버려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비로소 최고의 추진력으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바닥에 도달한 누군가가 던진 신호탄과 같다. 소외받는 이웃들의 안부를 묻는 이 단순한 인사가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 바닥에 있던 이들이 그 말을 알아듣고 응답했다. ‘안녕하지 못하다’고, ‘우리는 지금 바닥에 있다’고 말이다.

이제 올라가는 일만 남았기를 바란다. 지금보다 좀 더 떨어져야 할지라도, 다시 올라갈 날이 머지않았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신년계획표 대신 대자보를 써보려 한다. 나의, 내 주변의 안녕하지 못한 것들을 살펴보면서, 그리고 2014년에는 모두가 안녕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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