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해야 할 일, 용서해야 할 일

2014.01.06 20:37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어릴 적 기억이다. 1980년 극장에서 개봉한 <똘이장군>(아! 장군이라니. 일단 이 작명은 21세기 북한에서 훨씬 익숙하다)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만화로도 출간되었다. 북한 주민들은 모두 사람이고 인민군은 늑대로 묘사되었다. 참 선명하고 고민할 필요 없는 상징, 아니 그 시대의 상식이었다. 평화로운 마을에 늑대들이 나타나 똘이 아버지를 잡아가고,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는다. 어머니는 죽어가며 아들 똘이에게 말한다. “이 원수를 꼭… 꼭… (갚아달라).” 동물들과 함께 산에서 사는 똘이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출전’한다. “달려가자 당당하게 가자/ 우리는 용감무쌍한 대한의 어린이/ 서라 물러서라 우린 출전한다/ 원수를 찾아서 우린 달려간다.” <똘이장군> 만화에 나오는 노래다. <똘이장군>의 여러 장면 중 늑대가 집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이 유독 기억난다. 정확한 기억인지 조작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엿듣고 고발하기 시퀀스’는 왜 그리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북한, 아니 당시 표현으로 북괴는 ‘5호 담당제’가 있어서 서로를 감시하고, 부모님을 자식들이 고발하는 천하의 ‘불쌍놈’들이라는 배움 때문에 그랬으리라.

[별별시선]고발해야 할 일, 용서해야 할 일

연말연시에 유키마사 리카의 <저녁 7시, 나의 집밥>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연말연시용 따뜻한 책으로 선정해 읽게 된 에피소드 ‘서로 용서하는 계절’을 소개한다. 어느 추운 겨울밤 저자는 저자의 엄마와 함께 긴자의 라면집을 갔다. 라면을 맛있게 먹던 저자는 음식 안에서 작은 벌레 한마리를 발견한다. 당연히 놀라서 젓가락질을 멈추었더니, 엄마가 “리카, 소란 피우지 마라. 이런 작은 가게에서 그런 별것 아닌 일로 소란 피우면 손님이 들지 않을 거야. 그냥 건져버리면 그만이잖니”라고 말한다. 당연히 저자는 더 이상 먹을 수 없었고(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이미 먹을 기력을 상실”해서), 엄마는 자신이 먹던 돈부리(일본식 덮밥)를 건네주었지만 저녁 식사는 그걸로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에 선 엄마는 작은 소리로 점원에게 “라면에 작은 벌레가 들어 있었어요”라고 귀띔하고 가게를 나섰다. 물론 점원이 돌려주려는 음식값으로 지불한 돈은 받지 않은 채로.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신경을 잘 쓴다고 해도 음식에 어쩔 수 없이 벌레가 들어갈 때도 있는 법입니다. 작은 실수는 누구라도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큰일이라면 소란을 떨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그냥 넘어가거나 용서해주는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연말 손편지와 함께 선물받은 책에서 이 에피소드를 발견하자마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따뜻한 울림이 퍼져갔다. 2013년 우리 주변에는 늘 크고 작은 고발이 존재했다. 종편에서는 매주 유명 PD를 내세워 음식점이나 식품공장에 몰래 들어가 그 음식에 얼마나 많은 MSG가 들어갔는지, 주방은 얼마나 지저분한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깨끗한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정당하게 유통되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매주 TV 채널에서 고발장면을 봐야 하는 건 참 곤혹스럽다. 악의적인 이들도 있겠지만, 어쩌면 용서받을 수 있는 작은 실수일 수도 있다. 악의적인 부분은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사회의 제도를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자기와 의견이 다른 이들의 논문을 대조해 인용 누락 등을 발견하고 고발했다. 큰소리로 상대방에게 ‘표절’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도 음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코레일 노조가 파업을 하자 국토교통부는 승객 15명에 역무원 17명의 역이 있다고 고발했다. 이 자료를 들고 토론회에 나와 방만경영이라 노조를 몰아붙였다. 알고보니 그 역은 태백선 쌍용역으로 석탄이나 시멘트 같은 화물이 오고가는 화물역이다.

종편의 고발 프로그램, 표절 고발 퍼레이드, 그리고 국토교통부의 왜곡된 수치를 활용한 고발. 어디 그뿐이랴. 작은 실수가 나오면 그걸 크게 고발하고, 일부러 왜곡해서 고발하는 건 우리 주변에서 아주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고발이건, 표절에 대한 고발이건 몰래 들어가 뭔가를 밝혀내고 그걸 채널이나 온라인에 폭로하는 고발보다는 제도에 의해 잘못이 지적되고, 이를 바로잡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실수나 욕심 같은 작은 잘못들이 고발이라는 이름으로 까발려지고, 여기 벌레가 들어갔어요! 사람들은 우루루 몰려가 그를 두들겨 팬다. 그렇게 재기할 수 없을 때까지 그들을 몰아붙이고 나면 우리 공동체에 남는 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고발 만능 사회는 결코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세상이 아니다. 고발을 통해 딱지를 붙이고, 특정인을 재기불능 상태로 몰아가고, 딱지를 붙인 채 조롱하고 놀려대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어봐야 결국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1㎜도 더 좋아지지 못한다. <저녁 7시, 나의 집밥>의 저자 유키마사 리카는 말한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