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넘겨받는 시기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제 넘겨받을지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비현실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설정해 전작권 전환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전작권 전환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백지화’한 것이며, 더 나아가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전작권 전환을 할 수 없도록 ‘대못질’을 한 것이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 조건으로 안정적인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한·미 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군사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 등을 내세우고 있다. 뻔뻔하고 무책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안보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나라가 추구해온 국방 목표다. 안보 환경은 항상 변한다. 불안정에 대비하는 것이 군의 임무다. 바로 그 때문에 전작권이 필요하다. 전작권이란, 말 그대로 안보를 위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주권이다. 안보 환경이 안정될 때까지 전작권을 미국에 맡겨두겠다는 것은 전쟁이 필요 없는 태평성대를 미국이 만들어 주면 그때 가서야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겠다는 말과 같다.
이 조건이 비현실적이어서 사실상 무기연기나 다름없다는 지적에 대해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 가관이다. 그는 “갑자기 통일이 된다거나 (북한의) 비핵화가 된다든지 하면 전작권 전환을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통일이나 북한의 비핵화가 언제 이뤄질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나라 국방장관은 적어도 그때까지는 전작권을 갖고 오지 않을 심산인가 보다. 또 전작권도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붕괴되는 급박한 상황을 맞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응 능력을 갖춰야 전작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은 ‘영원히 안 갖고 오겠다’는 말의 동의어다. 미국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 전작권을 맡겨놔도 이 문제는 완벽히 해결할 수 없다. 미사일방어 체계는 만들어놓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미사일 개발에 맞춰 지속적으로 보완·개발해 나가는 끝없는 군비 경쟁의 시작이다. 미사일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 대응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간단하다. 미국도 냉전시대부터 미사일방어 체계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고 있지만 아직 신뢰할 만한 방어체계는 갖추지 못했다.
이 나라 정부 인사들과 보수층이 한사코 전작권을 마다하면서 내세우는 첫번째 핑계는 안보 불안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전작권 전환은) 국가안위라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전작권을 갖게 되면 국가 안위가 위태롭다는 정부의 처절한 자기 고백이다. 북한보다 30배 이상 많은 국방비를 쓰고 미국의 핵 억지력과 방위 공약을 제공받으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자신이 없는 정부라면 정권을 반납해야 마땅하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능력이 없다고 자기 비하를 하고 동맹국의 선의에 안보를 위탁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못난 국가를 존중해줄 나라는 없다. 이미 한국은 이를 경험하고 있다. 남북 간에도 핵문제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부가 아무리 주장해도 북한은 남측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미국만 찾는다. 만일 북·미가 핵문제나 정전협정 등을 놓고 군사회담을 갖는다 해도 한국은 테이블에 앉지 못하고 물 주전자나 들고 왔다 갔다 해야 할 판이다. 중국은 한국을 미국에 군사적으로 종속된 국가로 간주한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적극 지지하는 미국이 미심쩍고 못마땅하면서도 한·미·일 안보협의에서는 미국을 따라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게 한국의 처지다. 이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단추가 전작권 전환이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당장 미국과 전작권 전환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전작권 전환을 위한 조건의 첫머리에는 군 개혁과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올려져야 한다. 무능하고 비겁한 군 체질을 개선하고 부정부패와 사기행각에 물든 ‘군피아’를 척결하는 동시에 군이 안보 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이것은 국가다운 국가에서 살기를 열망하는 국민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