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멍
세계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얼마나 덜 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더 멀리 가버리는 새처럼
세계지도처럼 당당하게
비행기는 날고
구름이 피해가고
볕은 사람을 비추었다
숫자처럼 엉켜 있어
만져지는 허공을
해석되지 않는
세계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풍경에서는 세계가 틀림없이
멈춰서고
그래 그런 삶도 있겠지 싶은 골목으로
바람이 걸어 나갔다
- 유이우(1988~)
△ 설명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해보겠다는 과감한 선언이나 용기, 집착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혁명의 입구 앞에 서 있다.
유이우의 시가 그렇다. 통쾌하게 말하지 못함으로써 통쾌해져버리는 ‘없는 육체’를 갖게 되기 때문에, 그 없음에 대해 매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라는 관념태를 주체로 설정한 이 시는 재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아를 호출한다. 여기서 세계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까. 세계는 자아의 다른 명명일 수도 있고, 바람 혹은 새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만큼 온 것인지도 모를 때, 다만 멀리 왔다는 아득한 예감만으로 가득할 때, 그런 어리둥절하고 불안함 같은 곳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장소도 명명할 수 없고 나의 위치조차 분명히 해결되지 않을 때, 내 안에서 나를 불렀으되 내가 이미 바깥처럼 느껴질 때! 뭐라 쉽사리 형용할 수 없는 모든 마음의 진통을 우리는 이렇게 ‘구멍’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도무지 해결되지 않은 세계 앞에서 다시, 세계가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나를 바라본다. 지도나 질서 따위로 측량할 수 없는 바깥들에게, 그런 미래들에게 스스로를 투신하는 환한 구멍이 있다. 다른 세계의 입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