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음의 지킴

2015.07.21 21:26 입력 2015.07.21 21:30 수정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무소불위’라는 말이 있다. 대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다. 그러나 무소불위는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의 뜻만이 아니라 ‘못 할 일이 없이 다 함’의 뜻도 본디 가지고 있다. 맹자는 “하지 않음이 있어야 함이 있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말을 하였다. ‘무언가 하지 않는 것이 있음’의 반대가 무소불위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만은 하지 않는다는 ‘지킴’이 있는가의 문제다.

불이익이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지 않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부끄러움이다.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모를 때 무슨 일이든 거리낌 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사람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고 단언했다.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떳떳함’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출발선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에 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하지 않음의 지킴

류성룡은 고려 유신 길재를 기리는 지주중류비(경북 구미 소재)에 새긴 글에서, 이익과 욕망에 흔들림 없는 본심을 황허의 급류 가운데 우뚝 서있는 바위산인 지주(砥柱)에 비유하였다. 본심이 확립되고 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해도 하지 않을 일이 있고 죽음에 이른다 해도 피하지 않을 것이 있게 된다. 그 하지 않음의 지킴을 몸소 보여준 길재처럼 각자 자신의 지주를 세워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처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든 ‘적어도 이것만은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지킴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더 큰 이들에게 그것이 더 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의 삶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정치가, 헌법 정신에 입각해 공평무사한 판단을 내려야 할 법조인, 말과 삶으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교육자와 성직자, 그리고 국민의 안보를 위해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전권을 부여받은 정보기관 종사자 등에게 더 높은 수위의 ‘지킴’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권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에 빌붙어서 그야말로 못 할 짓이 없는 무소불위를 자행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도 자주 접한다. 맹자는 말했다. “곤궁한 이가 지킴을 잃으면 자신을 잃게 되고 영달한 이가 지킴을 잃으면 많은 이들의 희망이 사라진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