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성장론’ 어디 갔나

2016.01.20 20:35 입력 2016.01.20 20:45 수정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20대 총선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여권은 내부에서 샅바 싸움이 치열하고, 야권은 아예 당이 쪼개지는 지각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은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초유의 방식까지 동원하며 정치권 전체에 화살을 던지고 있다. 성장지표는 계속 침체를 보이고 있고 연말 연초의 시장 분위기는 유난히 싸늘했다. 중국과 중동에서 밀려오는 불안 요소도 심상치 않고 북한의 4차 핵실험 소식도 들려왔다. 모두들 위기가 닥쳐올까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1997년과 2008년 경제위기 때와도 다른 것은 현직 대통령이 앞장서서 ‘위기’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와 세상]‘균형성장론’ 어디 갔나

박 대통령은 반복해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등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정치권 전체를 압박했다.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위기를 맞은 비상상황임을 강조하면서 국회에 노동 관련 법안의 처리를 요청하는 담화를 내는가 하면 급기야는 가두서명에 참여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상식적인 의문이 떠오른다. 박 대통령이 말하는 4대 개혁으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가? 법안 몇 개를 통과시키면 경제가 좋아지는가?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위기를 함부로 말하면, 없던 위기도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여권에서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20대 총선의 경제 의제를 4대 개혁과 경제활성화 관련 법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조차 그 목표와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위기의 본질과 대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체계적이고 정교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 개혁에서는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임금피크제 정도가 거론될 뿐이고, 교육개혁은 엉뚱하게도 국정교과서 파동이나 교육부가 돈과 칼을 휘두르는 대학정책을 연상하게 한다. 금융개혁으로 인터넷 은행 등을 거론하면 일반 국민들은 그게 무슨 개혁인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연말부터 박 대통령이 여러 경로로 강조한 것은 소위 ‘경제활성화’ 관련 법이었다. 그러나 이들 법은 낮은 수준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이미 제출된 ‘서비스발전기본법’으로는 서비스 쪽에서 대대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일거리가 창출된다는 목표를 감당할 수 없다. 보건·의료 분야 규제를 대폭 완화해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라면 높은 수준의 정치·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기업들이 인수·합병 등 사업 재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의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도 기업들이 사업 재편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이 법의 경제활성화 효과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중 쟁점이 되었던 것은 기간제와 파견 고용에 관한 것이었다. 기간제 사용 연한을 연장하고 파견 업종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여 노동 유연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것이다. 그런데 노동요소 분배율 악화를 막는 근본적 조치가 없으면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유연화는 사용자 측의 노동수요 독점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결국 청와대가 주도하는 ‘경제활성화’ 법안은 경제 위기에 관한 본질적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재 직면한 위기는 저성장, 불평등, 불안정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총선전략으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불균형 성장전략을 ‘경제활성화’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한 것이다. 그러나 불균형 성장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현재 위기의 본질이다. 당장의 불안정 요소를 진정시킨다는 차원에서도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하는 신호를 내외에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야권은 분열 때문에 민생의 선거 프레임을 적극 앞세우지 못하고 있다. 선거를 자신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면 힘을 모아야 하는데, 패권 또는 주도권 다툼의 정도가 너무 심했다. 결과와 책임은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당장 민생과 경제가 문제다. 야권연대에는 시간, 제1야당의 양보, 공통의 공약이 필요하지만(강남훈 교수), 골이 너무 넓고 깊어졌다. 그럼에도 총선의 경제 프레임을 균형성장론으로 전환하는 노력은 함께할 수 있고, 해야 할 필요도 있다. 야권 지도자와 지지자들은 분열과 적대를 위한 비방을 삼가고 균형성장을 목표로 한 협력적 경쟁의 틀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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