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부들부들’과 부동산 투기

2016.01.21 20:38 입력 2016.02.02 18:42 수정

이렇게도 부총리 자리에 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인선 이후를 보며 든 생각이다. 그는 4건의 부동산 투기와 자녀의 국적 포기 논란, 세금 미납 등에도 ‘무탈하게’ 지난 7일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2002년 사상 첫 여성 총리로 박탈됐지만 결국 중도 낙마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부터 부동산 투기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가장 큰 결격 사유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기상천외한 해명을 내놓을 정도로 부동산 투기에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부들부들 청년][로그인]‘부들부들’과 부동산 투기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서민들의 애환을 고려하지 못해 송구하다”는 ‘면피용 멘트’조차 중국 증시 폭락과 북한 핵실험 소식에 묻혀버렸다. 기왕지사를 다시 들춘 이유는 부동산 투기가 이제 체념 수준에 이른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투기가 용인된다면 다음 수순은 사회적 불평등의 체념일 수밖에 없다는 게 두려움의 요체다. 그것은 21세기 등장한 ‘관제 서명운동’으로 표출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만큼 심각한 퇴행이다.

이 부총리의 부동산 투기는 단순한 투기를 넘어 ‘반서민적’이었다. 치솟는 전셋값을 이용한 ‘무피투자’ 방식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전셋값에 서민들은 대출을 알아보느라, 좀 더 싼 집을 찾느라 은행으로 도시 외곽으로 발품을 팔 때 이 부총리는 차근차근 부동산을 늘려나갔다. 게다가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 중 1채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132만원에 달한다. 사활적 논쟁을 거쳐 겨우 올려 놓은 올해 최저임금이 시급 기준으로 6030원, 월급으로 치면 126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부총리는 이보다 많은 임대료를 서민들에게서 벌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는 전형적인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은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 모든 갈등의 원천인 불평등을 유발한다. 헬조선이니, 금수저·흙수저 등 청년들의 분노에는 하늘이 감동할 정도의 ‘노오력’에도 바뀌지 않는 불평등에 대한 울분이 스며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 ‘부들부들 청년’의 취재 뒷얘기를 다룬 팟캐스트에도 부동산 임대업자에 대한 분노가 넘친다. 입사 5년차에 월급을 꼬박꼬박 모아도 청년들은 제 몸을 누일 방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물 받는 ‘다라이’가 필요없는 세면대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지만 그 희망을 못 이룰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다. 집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청년들의 꿈은 이 부총리 같은 부동산 재테크 달인의 편안한 노후에 배신당하고 있다.

불평등은 지금 세습되고 있다. 이 부총리 차녀가 해외 유학을 떠날 때 동수저·흙수저를 문 청년들은 토익점수를 높이면, 자격증을 따면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에 시달렸다. 취업에 성공해도 회사는 ‘사축장(社畜場)’이 됐다. 야근과 주말근무와 자기발전을 꿈꿀 수 없는 회사의 부속품으로 소비되면서 ‘찍퇴(찍어서 퇴직)’의 대상까지 되고 있다. 자신의 진로를 위해 국적을 포기할 수 있는 금수저의 자녀가 아닌 청년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이생망)”며 우리 사회의 붕괴와 리셋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 ‘부들부들 청년’ 시리즈에서도 다루겠지만 청년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과 빈부갈등은 세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청년문제에 농축돼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새로운 신분사회, 계급사회로 퇴행하고 있는 사실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됐다. 그 증거가 이 부총리의 ‘무난한’ 취임이었다. 지난 20일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 및 맞춤형 복지’라는 주제로 대통령 업무보고를 했다. 청년문제는 일자리문제로 국한됐다. 정부 계획이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스럽지만, 그 대책의 수장이 이 부총리라는 아이러니를 청년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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