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위험사회

2016.03.22 21:07 입력 2016.03.22 21:08 수정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교수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참패하면서 인공지능이 장차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관심이 더욱 많아졌다. 한 TV 진행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언급했는데, 필자 역시 그것이 ‘인간의 본질’과 관련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보스 회의에서 내다보았듯이 인공지능이 4차 산업혁명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사회의 문제라고 본다. ‘산업화’가 인간의 역사에 충격을 준 이유는 인간의 본질을 ‘정치’나 ‘도덕’ 또는 ‘예’에서 ‘노동’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에 노동은 노예, 예속농민, 상민, 노비 등 피지배 계급의 굴욕적인 의무였다. 도덕적 논증이나 전쟁·외교의 수행과 같은 ‘인간 본연의’ 활동은 노동의 구차함에서 해방되어야만 가능했다.

[공감] 인공지능과 위험사회

<위험사회>로 사회학계의 스타가 되었던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가 산업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산업사회의 중추가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다면, 위험사회의 중추는 삶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정치’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두 형태의 사회가 역사발전법칙과 같은 것에 의해 순서대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공존하며 갈등관계를 이룬다고 보았다.

벡의 ‘위험사회’는 애초에는 2차 대전 이후의 생화학·핵의 위험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계 금융위기와 9·11을 계기로 ‘기후변화’를 ‘세계위험사회’의 핵심으로 재설정했다. 따라서 ‘세계위험사회’는 ‘위험사회 2.0’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벡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그의 생존 당시에는 자동화와 로봇이 ‘노동’의 변화나 소멸에 더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을 ‘노동’에서 탈피시키는 위험사회의 성격을 이제 인공지능이 한층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알파고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위험사회’의 상위버전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게다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엄청난 전기를 소모하기 때문에 핵위험이나 기후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고, 공자 역시 인간의 본질은 정치이며 그것은 ‘예’에 기초한다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산업화 이전까지는 ‘물질세계’와 직접 닿는 ‘천한’ 노동은 결코 정치나 도덕과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조차 일종의 노동형태(‘직업’)이고, 도덕의 핵심 역시 ‘노동윤리’였다. 이제 ‘위험사회’에서 ‘노동’은 다시 도덕과 분리돼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물질’의 문제로 돌아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대다수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면, 산업화 이전과 달리 인간의 지위는 ‘정치하는 계급’과 ‘노동하는 계급’으로 갈리지 않고 하나의 ‘시민’ 지위로 통일될 것이다. 노동의 운명에서 해방될 수 없는 노예, 귀속농민, 상민, 노비 등의 ‘신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노동으로부터 만인의 해방’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 파괴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고루 파괴되면, 벡의 제안처럼 우리는 ‘정치’나 ‘예술’ 활동을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으로 재정의하여 ‘노동사회’를 ‘정치사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히려 ‘인간 고유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양극화할 가능성이다. 알파고의 다음 도전은 스타크래프트라고 하는데, 스타크래프트는 바둑과 달리 로봇기능과 인공지능의 순간적 조응능력을 요구한다. 이것은 너무 어려운 기술이어서 당분간 인간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응능력을 요구하는 영역은 스타크래프트처럼 ‘창의적’인 분야만이 아니다. 돌봄노동, 청소노동 등 허드렛일로 취급되는 노동들 역시 동일한 조응능력을 요구한다. 만일 인공지능의 시대가 돌봄과 청소 등을 수행하는 또 다른 ‘노동계급’과 ‘창의성’에 기초해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정치적 계급’으로 사회를 양분한다면,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지배’의 실상이 될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